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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미역과 절묘하게 어울리는 이 계절 영덕 최고의 별미인 미주구리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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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게 메뉴 퓨전화의 선두주자로 남녀노소에게 인기가 좋은 대게치즈버터구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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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산의 메인 메뉴인 미주구리찌개. 고추장보다 집된장으로 맛을 잡은 게 특징이다. |
동해안의 지세를 보면 태백산맥의 지맥이 영덕해안으로 길게 뻗어 있다. 화강암 지대에서 침식된 마사토가 장구한 세월 동안 빗물에 실려 동해로 흘러들어 영양분이 풍부한 사니질을 형성했다. 대게에겐 천혜의 생육 공간이었다. 울진과 영덕 사이 해역에 남북 길게 뻗은 수중 해산처럼 생긴 ‘왕돌초’. 토박이들은 ‘왕돌짬’이라 한다. 초는 ‘암초’를 의미하고 짬은 튀어나온 돌을 지칭한다. 일제강점기에도 등장하지 않다가 1990년에 비로소 왕돌초란 이름으로 등재된다. 그 전에는 ‘동해의 이어도’와 같은 곳이었다. ‘왕돌’이란 사람이 발견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그런데 왕돌초 구역에서만 대게가 잡히는 줄 아는데 그건 아니다. 오히려 그 주변에서 더 많이 잡힌다. 차유마을에선 해안으로부터 12~13㎞ 나가서 수심 280~400m 바닥에서 대게를 잡아온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자망 선주한테 청천벽력 같은 배가 등장했다. 바로 포항 구룡포권에서 발진한 ‘통발어선’이다. 자망어선에 통발어선은 서해안에 출몰하는 중국배와 다를 바가 없다. 현재 해안에서 420m 안으로는 통발어선이 못 들어오도록 돼 있다. 연안 자망 선주를 보호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통발어선은 이를 무시한다. 그 구역 안으로 들어와 암컷대게(빵게)까지 모두 쓸어가고 있다. 10여년 전부터 이런 일이 벌어졌다. 대게 수요가 폭증한 탓이다. 자연 자망어선한테 가야 될 대게가 격감될 수밖에. 영덕 자망선주들이 시위농성을 벌였지만 효과가 없다.
동림호 김시대 선장이 1985년 시절을 알려준다. 당시엔 활어차가 없었다. 경정2리로 이어지는 연결 도로도 없었다. 강구항엔 이렇다 할 만한 대게집도 없었다. 그냥 횟집만 있었다. 살아 있는 대게 유통은 언감생심. 다들 선어 상태로 현재 영덕 북부수협이 된 축산수협에 위판했다. 고가의 박달대게는 삶아서 진공포장해서 팔았다. 타지에서 주문하는 일도 없어서 주민끼리 나눠먹던 게 대게였다.
세월이 많이 달라졌다. 이제 차유마을에선 강구수협에 위판하지 않는다. 자가 소비해 버린다. 강구수협에서 위판되는 건 근해 자망 어선이 잡아온 고가의 박달대게. 그 박달대게에만 흑산도 홍어처럼 이름표를 붙여준다. 가장 비쌌을 땐 2㎏ 박달대게가 23만원에 위판됐다. 그걸 매입한 대게집에선 손님의 사정을 봐가면서 50만원 이상에도 판다. 상가에선 정해진 가격이 없다.
차유마을에 오면 식당마다 식당주 소유의 배 이름이 간판처럼 걸려 있다. 선주들은 민박형 횟집을 경영한다. 횟집·민박집·택배업체·어부를 겸한 멀티플레이어다. 강구항 대게상가는 워낙 고가라서 상당수 상대적으로 저렴한 ‘선장대게’를 사먹으러 온다. 대게 철이 되면 택배주문 전화가 빗발친다. 어황이 좋을 땐 다른 고기를 잡지 않아도 한철 벌어 1년을 버틸 수 있었다. 그런데 호시절은 갔다. 통발어선이 그 악역을 하고 있다.
원조 차유마을, 민박형 횟집 선주들
대게상가 보다 저렴‘선장대게’판매
누른 빛 영덕대게 황장, 어획량 격감
6∼10월 금어기…수입산 대체 영업
날로먹는 홋게, 얼음물 꽃 대게회 정착
울진 홍게, 게딱지 가시로 대게와 구별
치즈버터구이·튀김·찜 코스식 메뉴
방송·파워블로거 퓨전스타일 입소문
물곰해장국·집된장 간 미주구리찌개
물미역·쪽파·깨 넣고 비빈 미주구리회
◆흥미로운 대게인문학
구룡포가 과메기 특수를 누릴 때 ‘청어과메기’로 짭짤한 재미를 보는 마을이 바로 영덕읍 창포리 창포마을이다. 거기로 가서 3t 연안 자망 시원호를 몰고 있는 젊은 박기현 선장(50)을 만났다. 그는 객지를 돌며 건설업자로 살다가 7년전 귀향했다. 부부는 시원수산을 겸해 창포활어대게횟집을 경영한다. 4년전부터 그도 청어과메기를 만든다. 현재 인동수산, 풍차횟집, 영덕건어물 등 모두 4곳에서 청어과메기를 생산한다.
그는 대게의 맛이 남북 해역별로 어떻게 다른지 알려준다.
“북으로 갈수록 살은 좋은데 껍질은 단단해집니다. 게장의 빛깔도 검은 ‘먹장’. 자갈층에서 먹이활동을 한 놈일수록 먹장으로 변해요. 그래서 맛이 덜하죠. 남쪽으로 갈수록 장은 좋은데 껍질이 약합니다. 영덕대게는 누른빛이 감도는 ‘황장’입니다. 대체적으로 북쪽보다 남쪽 대게가 맛이 더 난다고 볼 수 있죠.”
그에 따르면 4년전부터 대게 어획량이 너무 격감했단다. 한 번 나가면 100여마리를 잡았는데 이젠 몇 마리 못 잡는다.
대게는 일생 동안 여러 이름을 갖는다.
평생 15~17번 허물을 벗는다. 탈피하기 직전 대게를 ‘홋게’라 한다. 홋게는 워낙 귀해 선원들이 갑판에서 후딱 날로 먹어치운다. 이게 발전해 얼음물에서 꽃을 피운 대게회로 정착된다. 관광객은 홋게를 맛볼 수 없다. 씨월드 이춘국 사장은 인터뷰를 요청한 기자를 위해 수족관에 있는 홋게를 보여준다. 그는 6시간 동안 대게 탈피과정을 동영상으로 담을 정도로 ‘대게광’이다. 이 홋게가 탈피하고 난 직후 잡힌 대게를 ‘물렁게(물게·찔찔이)’라고 한다. 이런 물렁게가 헐값으로 도심지를 파고든다. 홋게에 살이 꽉 차면 비로소 ‘박달대게’가 된다. 대게 속살이 박달나무처럼 꽉 차고 단단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런데 울진 대표주자인 붉은대게는 ‘홍게’로 불린다. 둘 다 증기로 찌면 붉은색이라 혼동하기 쉽다. 구별하려면 가시를 찾으면 된다. 홍게는 게딱지 좌우 양쪽에 작은 가시가 있으나 대게는 없다. 껍데기를 확인해 보면 홍게는 단단하지만 대게는 부드럽다고 한다. 홍게는 대게보다 훨씬 심해에 산다.
현재 대게는 게딱지 체장(지름) 9㎝ 이상만 잡을 수 있다. 홍게 금어기는 7~8월. 대게는 6~10월. 비수기엔 관광객이 반 이상 준다. 하지만 대게상가는 연중무휴로 돌아간다. 수입 대게가 있기 때문이다. 대게 다리는 성한 게 없다. 1개 정도 없어도 정상품으로 거래된다. 2개가 없으면 하등품으로 분류된다. 홍게와 대게 가격은 평균 3배 차이를 보인다. 홍게는 대게보다 개체수가 훨씬 많다. 주로 가공공장으로 팔려나간다.
◆대게메뉴의 퓨전화
대게 요리는 특별한 게 없었다. 거의 쪄서 먹었다. 1998년 다크호스로 등장한 ‘이가대게’. 이소미 대표는 부산 출신인데 아버지의 사업이 망하는 바람에 영덕으로 와서 살게 된다. 1981년 강구항 풍물거리에서 대게집 미락을 경영하다가 나중에 규모를 키워 오픈했다. 그녀는 메뉴 다원화에 불을 댕겼다. 치즈버터구이, 회, 튀김, 찜, 탕 등을 코스식으로 낸다. 현재 남녀노소 모두에게 사랑받는 건 ‘치즈버터구이’. 대게 다리를 15초간 뜨거운 물에 담그면 빨간 속껍질까지 붙어서 살점이 통째로 쏙 빠져나온다. 거기에 체다치즈, 버터소스, 레몬, 마늘 등을 첨가해 오븐에서 2분간 익혀 낸다.
대게회를 만들 때는 속살을 잘 빼내야 하는데 일단 뜨거운 물에 7초간 넣으면 신기하게 속껍질을 분리해 빼낼 수 있다. 살점을 갖고 꽃을 피우려고 하면 얼음물에 넣어야 하는데 이때 식초를 조금 넣어야 더 잘 핀다.
대게튀김은 더 고난도의 기술이 동원된다. 속살 상태로 기름에 튀기면 질겨진다. 반드시 얼음물에서 꽃을 피운 뒤 빵가루를 묻혀 튀겨야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하게 된다. 대게찜도 처음에는 솔잎을 깔아 쪄냈는데 일부 손님이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켜 지금은 솔잎을 깔지 않는다. 대게탕은 칼칼하면서 깔끔하다. 집된장과 기본 육수만으로 끓인다.
이가대게 퓨전 대게요리는 방송과 파워블로거 사이에 알려지면서 당초 외면하던 손님들도 퓨전스타일에 점차 익숙해진다. 맛칼럼니스트 황교익은 2016년 ‘죽기 전에 먹어야 될 101가지 음식’에도 이 메뉴를 소개한다. 반응이 좋자 현재 10여 업소가 퓨전 메뉴를 취급한다.
◆영덕의 미주구리 이야기
강구항 근처에 몇몇 맛집이 있다. 특히 영화배우 신성일이 좋아하는 식당은 ‘탐라식당’. 여긴 미주구리회도 좋지만 기본 육수 없이 맹물에 끓여주는 대구탕은 여전히 바다의 기운을 갖고 있다. 물곰해장국으로 유명한 ‘황포식당’은 강구농협 근처에 있다. 주당들의 속풀이국으로 입소문이 나 있다. 터미널 옆에는 홍게 살을 갈아넣은 ‘대게빵’도 판다.
강구축협 바로 옆에는 밥식해로 유명한 ‘김갑출원조밥식해’가 있다. 대게 못지않게 전국구 반찬으로 팔려나가고 있다. 강구축협은 2003년부터 지역의 전통음식인 밥식해를 상품화했다. 기술자는 김갑출씨(68). 오징어, 가자미 등으로도 식해를 만드는데 가장 유명해진 건 횟대(홍치)로 만든 식해다. 횟대의 정식 명칭은 햇대기와 홀떼기로도 불리는 ‘대구횟대’. 둑중개과 어류로 몸은 갈색 원통 모양이고 머리에 가시가 있고 입이 크다. 겨울철에 가장 맛이 좋다. 쌀·고춧가루·생강·마늘로 버무린 후 5~6일간 발효시키면 된다.
이 계절 영덕은 온통 미주구리판. 미주구리를 ‘물가자미’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은데 표준명은 ‘기름가자미’. 정말 진물이 온몸에 가득하다.
일단 20여년 구력의 미주구리찌개 전문점 ‘나비산’으로 갔다. 나비산은 강구항 언저리를 지켜주는 산이기도 하다.
여사장 최분옥씨는 얼음에 파묻어둔 선어 상태의 미주구리를 다듬고 있다. 어른 손바닥만 한 건 횟감용, 그보다 더 큰 건 찌개용. 그걸 구분해 낼 줄 알아야 된다. 처음부터 미주구리찌개를 낸 건 아니다. 도루묵찌개부터 팔았다. 그런데 품귀현상을 일으키는 바람에 미주구리로 어종을 바꾼다. 지금은 미주구리가 도루묵보다 더 비싸다. 마리당 3천~5천원.
미주구리찌개 요리 때 비린내는 반드시 제거해야 되지만 바다의 내음만은 그대로 살려야 된다. 그게 승부처. 고추장과 고춧가루에 별로 의존하지 않는다. 집된장으로 간을 맞춘다. 가당과 가염도 않는다. 먹어보면 어창 어부들이 좋아할 법한, 조금은 페로몬 내음이 묻어나는 찌개로 보인다. 이 집 찌개가 너무 달다는 토박이도 있지만 난 괜찮아 보인다.
강원도권에서는 지느러미를 제거하는데 영덕에선 그대로 놔둔다. 영덕에선 미주구리를 회·조림용으로 먹었는데 나비산이 찌개를 대중화시켰다.
마지막엔 미주구리회가 먹고 싶어 강구항 바로 맞은편에 있는 강구전통시장 안으로 들어갔다. 현재 현이수산 등 6집이 미주구리를 취급한다. 10년전 문을 연 현이수산 권영삼 사장(49). 한때 대형트럭을 몰고 정비공장을 운영하다가 이 길로 들어왔다. 최불암이 ‘식객’ 촬영 때 이 집에서 식사를 하고 갔다. 물미역과 고추, 쪽파, 그리고 회 위에 흩뿌려놓은 깨. 초고추장을 적당량 부어 비빈 뒤 수북하게 입안으로 넣는다. 그리고 눈을 지그시 감고 고기에서 스며나온 육즙과 채즙이 침과 황금비율을 이룰 때까지 오래 씹어준다. 영덕은 포항물회 스타일의 미주구리물회를 꺼린다. 무침회 같은 미주구리회라야 눈길을 준다. 그 옆엔 미역국이 따라다닌다. 7~8월엔 오십천을 끼고 있는 화림산가든이 은어요리로 주목받고 가을로 접어들면 영덕송이가 대게시즌에 앞서 영덕을 송이향으로 뒤덮는다.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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