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형 공유경제를 찾다] <4> 독일 ‘우파 파브릭’

  • 노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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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8-14   |  발행일 2018-08-14 제6면   |  수정 2018-08-14
폐쇄된 영화 제작소, 시민 후원으로‘복합 생태문화공간’탈바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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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파 파브릭 내공동체자립센터(NUSZ)에서 한 주민이 상담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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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파 파브릭은 옥상에 녹지를 조성함으로써 여름철 건물의 온도를 낮추고 곤충과 함께 살 수 있는 친환경 공간을 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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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파 파브릭은 자체적으로 키운 식재료를 활용해 식당과 유기농 빵집을 운영, 수입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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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파 파브릭 내 대안학교.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공동체 생활의 기본과 지속적인 환경 보호, 문화 등 우파 파브릭의 목표를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도록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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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베를린 중심가에서 차로 20여분 떨어진 거리의 템펠호프 지역은 분단 시절 서베를린의 유일한 관문이었던 옛 템펠호프 공항이 있던 곳이다. 2008년 템펠호프 공항은 폐쇄됐지만 건물이나 활주로, 관제탑 등을 남겨 시민 공원으로 새롭게 단장했다. 당시 공항 후적지 개발을 위해 다양한 논의가 있었으나 시민의 요구로 공원이 조성된 것이다. 이 공원과 1㎞ 정도 떨어진 곳에 ‘우파 파브릭(ufa fabrik)’이 위치하고 있다. 이곳은 시민의, 시민에 의한, 시민을 위한 복합 생태문화공간이다. 1920년대 우니베르줌 영화사(UFA·Universum Flim Aktien Gesellschaft)의 공장(fabrik)이었던 이곳은 필름산업이 사양길로 접어들면서 1965년 폐쇄, 방치돼왔다. 1979년, 처음으로 뜻을 같이하는 주민 100여명이 모여 이곳을 문화와 생태 공간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을 지금까지 이어왔다. 현재 우파 파브릭은 공연장과 게스트하우스, 대안학교, 식당, 빵집 등을 두루 갖춘 자생적인 공간으로 우뚝 섰으며, 그 공간을 지역 주민과 함께 공유하며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


도심 공동체마을…年20만명 발길
공연장·카페·대안학교 등 자리
10년 전 김덕수놀이패 공연하기도
체육관에선 무술·격투기 등 수업
옥상 녹지공간은 꽃·채소도 재배
거주 주민, 설립 초부터 재산 공유
市에 내는 세금도 공동으로 납부


◆주민이 직접 참여하고 가꾸는 마을

지그리트 니머 국제문화센터장<사진>은 우파 파브릭의 초기 멤버로 지금까지 활동해오고 있다. 그는 “영화사가 있던 당시 이곳에서 나치 시대에 선동을 위한 홍보물, 선전물 등을 제작하기도 했다. 1㎞ 인근에 템펠호프 공항이 있어 바로 뿌릴 수 있었기 때문”이라며 “2차대전이 끝나고 다시 사람들이 모여들어 필름을 만들었지만 미디어 산업이 발달하면서 사양산업으로 접어들었고, 사람들이 하나둘 떠나면서 건물을 무너뜨리자는 얘기까지 나왔었다”고 옛날을 회상했다.

니머 센터장은 “당시 베를린시 소유였던 부지와 건물을 임차하기로 했는데, 후원금을 모아 임차료를 지불했다. 당시 자금을 모으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지속적인 노력을 해왔기에 지금의 우파 파브릭이 만들어졌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20~30대였던 젊은이들이 버려져있던 이곳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하면서부터 이 프로젝트는 시작됐다”며 “2차대전 이후 모든 것이 너무나도 빠르게 복귀되고 발전하는 속에서 뭔가 부족함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우파 파브릭은 매년 20만명이 찾는 명소가 됐다. 니머 국제문화센터장을 따라 둘러본 우파 파브릭은 도심 속 하나의 공동체 마을이었다. 1만8천㎡ 규모에 공연장과 극장, 카페, 학교 등의 건물이 자리 잡고 있다.

500석 규모의 외부 무대에서는 10여년 전 김덕수 사물놀이패의 공연이 펼쳐진 적이 있고, 체육관에서는 남녀노소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동양 무술, 격투기 수업이 진행된다. 필름 보관장소도 그대로 남아있는데, 벽이 두꺼워 큰 소리가 새나가지 않는다는 장점을 살려 춤 연습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니머 센터장은 “이곳에서는 관객이 예술가로, 예술가가 관객으로 참여하고 표현할 수 있다”며 “더 큰 의미로는 남녀노소 모두가 화합할 수 있는 공간”이라고 말했다.

우파 파브릭 내에는 잘 가꿔진 녹지 공간들이 유독 눈에 띈다. 꽃을 많이 심고 호박, 오이, 토마토, 허브 등은 직접 재배해 먹는다. 태양광을 사용해 전기도 생산하는데 생산되는 전기량이 우파 파브릭 내에서 소비되는 양보다 많아 남는 전기를 팔아 수익을 얻기도 한다. 옥상에 꾸민 녹지는 여름철 건물의 온도를 낮추고 곤충과 함께 살 수 있는 친환경 공간이 되기도 한다. 영화제작소 시절부터 남아있던 빗물 모음통에 빗물을 모아 화장실이나 세탁용, 조경용 등에 사용해 한 해 200만ℓ에 이르는 물을 절약하고 있다.

공동체자립센터(NUSZ)는 청소년, 청년, 노년층 등 다양한 계층의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상담 프로그램이나 아프리카 악기, 벨리댄스, 플라멩코 등 다양한 강의를 운영하고 있다. 구직 등 일반 상담부터 금전적인 어려움을 겪을 때 법적 상담도 할 수 있다.

지금의 우파 파브릭이 조성되기 전 시사회 등을 진행했던 공연장도 눈길을 끈다. 200여명을 수용할 수 있으며, 당시에는 연 방문객이 30만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지금도 연극이나 오케스트라 공연이 펼쳐지며 지역 내 학생들을 위해 다양한 문화체험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다.

우파 파브릭 내 초등 과정의 대안학교는 시험도, 정해진 수업도 없다. 자신이 수업을 정하고 그만큼 스스로 책임지는 법을 배운다. 학교 뒤편에 조성된 운동장과 농장은 어린이들과 주민들에게도 활짝 열려있는 공간이다. 조랑말과 토끼, 돼지, 닭, 거위 등 동물과 함께 어울리며 성장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니머 센터장은 운동장 한편에 우뚝 선 흙집을 가리키며 “최근 재활용품만을 사용한 친환경 집을 만드는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며 “시멘트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볏짚이나 대나무, 흙, 낡은 타이어 등을 사용해 뚝딱 지어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실험적인 활동들이 주민들에게 더 나은 삶을 줄 것이라고 생각하면 행복하다”고 말했다.

◆지속적인 발전을 위한 공유

우파 파브릭 내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개인 재산이 없다. 재산도 공유하는 형태인데, 이는 설립 초기부터 이어지고 있다.

공간이나 재료 등을 공동 재산에서 내어 같이 쓰고, 개인 용돈이 필요하면 얘기를 하고 본부로부터 얻어서 쓴다. 때문에 우파 파브릭은 서커스나 거리 공연, 카페, 유기농 빵집 운영 등 수익을 낼 수 있는 사업을 점차 늘려가고 있다.

니머 센터장은 “베를린시에 내는 세금도 우파 파브릭이라는 공동의 이름으로 모아서 낸다”며 “처음에는 내부적으로, 또 베를린시와 갈등이 있기도 했지만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이제는 정상적인 구조가 자리 잡게 됐다”고 말했다.

우파 파브릭은 일과 가정의 양립을 큰 목표로 환경적인 지속성, 사회적 참여, 문화성 등 크게 세 가지 방향성을 가진다.

1979년 설립 당시 정한 방향성을 39년간 지켜오고 있는 것이다. 빠르게 변하는 세태 속에서 느림을 추구하는 것인데, 초기에는 지금과 달리 소비 중심으로 세상이 흘러갔고, 사람들의 지지를 받지 못했다.

니머 센터장은 ‘나서서 먼저 하지 않는 이상, 더 좋은 건 없다’는 독일 속담을 소개했다. 바라는 것이 있다면 스스로 만들어가고, 현실화해야 한다는 것. 그는 “우파 파브릭을 이끌어가는 것은 시간이 많이 걸리고, 쉽지 않은 작업의 연속이다. 갈등도 있고 굉장히 인내가 필요하다”며 “하지만 앞으로 좀 더 젊은 사람들과 소통해 더 나은 구조를 만들어가려 한다. 모두가 함께 공유하는 공간인 만큼 공동체의 의견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글·사진=노인호기자 sun@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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