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50년 대구 토박이’ 이정우 한국장학재단 이사장

  • 박종문,이현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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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8-27 07:42  |  수정 2018-08-27 09:19  |  발행일 2018-08-27 제12면
“가난한 학생 평균 0.2점 모자라 장학금 놓친 30년 전 사연 못잊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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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우 한국장학재단 이사장이 집무실에서 장학재단의 주요 업무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현덕기자 lhd@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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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우 이사장이 경북대 부교수 시절 장학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한 기고. <경북대 제공>

이정우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명예교수가 지난 13일 한국장학재단 이사장에 취임했다. 이 이사장은 1950년 대구 출생으로 경북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경제학과에서 학·석사를 받았으며, 미국 하버드대 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77~2015년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교수를 지냈다. 2003년 대통령 정책실장, 2004~2005년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장, 2004~2006년 대통령 정책특보, 2005년 한국경제발전학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노무현재단 대구경북위원회 공동대표와 학교법인 영광학원(대구대) 이사장직을 맡고 있다. 대구지역 대표적 진보학자로 평가받는다. 그는 서울과 미국 유학시절을 제외하고는 ‘50년 대구 토박이’라며 대구시민으로서의 자긍심을 내비쳤다.

선진국, 형편 어려운 학생에게 장학금
한국은 ‘성적순 제도’ 오랜기간 운영
제도 즉시 바꾸진 못했지만 점차 개선

재단 年 대학생장학금 4兆·학자금 2兆
연합기숙사 지어 학생 주거문제도 해결
기숙사 5호까지 만들어 5천명 혜택 목표

사업 범위 중·고등학교까지 확대 계획
이전공공기관, 지역학생 채용 노력해야
공동 취업지원 프로그램 운영 협의 예정

▶경북대 교수 퇴임 3년 만에 준정부기관인 한국장학재단 이사장직을 맡게 됐다. 특별한 각오가 있는가.

“한국장학재단을 감히 맡아보자고 마음먹게 된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장학이라는 사업이 워낙 중요하고, 가난한 학생에게 희망을 주는 일이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이 이상 더 중요한 일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중요하고 보람 있는 일이다. 또 하나는 한국장학재단이 공공기관 이전 방침에 따라 3년 전에 대구로 이사를 왔는데 재단이 대구에 있는 이상 한번쯤은 대구사람이 맡는 게 보기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

▶학자로서 걸어온 길과 한국장학재단 이사장직이 매우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전공이 ‘불평등의 경제학’이다.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을 도와주는 것이다. 그 분야를 평생 공부해 온 사람이라서 딱 맞는 일이라 할 수 있다. 게다가 개인적으로 30년 전 특별한 경험이 있다. 1989년 39세 때 부교수로 경북대 경상대학의 학생과장을 맡고 있었는데 주된 일이 학생 데모를 막는 일, 데모하다 잡혀간 학생들을 구해 오는 일, 그리고 학생들의 취직과 장학금 지급이었다. 당시 참 착하고 똑똑했지만 워낙 가난해 장학금이 꼭 필요한 한 학생이 있었다. 장학금 규정상 평균학점이 B(80점) 이상 돼야 하지만 이 학생 성적은 79.8점이었다. 딱 0.2점이 부족해 내가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결국은 장학금을 주지 못했다. 규정의 벽을 넘을 수 없었다. 그래서 내가 경북대신문에 ‘성적 위주의 장학금제도, 과연 옳은가?’라는 장문의 글을 기고했다.(경북대신문 1989년 3월6일자(지령 1027호) 5면 전면 게재. 사진 참조) 장학금은 성적순이 아니라 가난한 학생에게 줘야 한다는 내용이다. 제도를 당장 바꾸지는 못했지만 그 뒤 학과 교수들이 뜻을 모아 가난한 학생에게 장학금을 주는 방향으로 운영하려고 노력했다. 선진국은 가난한 학생에게 주는 게 장학금인데 우리나라는 이상하게도 공부 잘하는 학생에게 주는 걸로 돼 있다. 왜 그런지 모르겠다. 잘못된 제도를 오래 운영해 온 것이다. 그런데 30년 전 내 생각이 점차 실현돼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장학재단도 생기고 가난한 학생이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고 있다.”

▶한국장학재단 업무가 생각보다 많은 것 같다. 단순히 장학금 지급만 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그렇다. 연간 대학생 장학금 지급이 약 4조원, 학자금 대출이 약 2조원이다. 한국장학재단 양대 사업이라 할 수 있지만 다른 사업도 있다. 예를 들면 연합기숙사를 지어 학생 주거문제 해결을 돕고 있다. 현재 경기도 고양시에 1호 연합기숙사가 건립돼 1천명의 학생이 생활하고 있다. 생활비는 월 15만원으로 아주 저렴하다. 서울 성동구에 추진 중인 2호 연합기숙사는 부지와 건축예산이 다 확보돼 있는데 일부 주민의 반대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1천명을 수용하는 연합기숙사 하나 짓는 데 부지는 유휴 국공유지를 활용하고 건축비는 외부 기부에 의존하고 있다. 1호 기숙사 건축비는 전국은행연합회 기부로 지었고, 2호는 한수원(한국수력원자력)과 원전이 있는 4개 지자체에서 기부해줬다. 앞으로 5천명까지 생활할 수 있도록 5호까지 지을 계획이다. 연합기숙사는 여러 대학 학생이 같이 생활해 친구 사귀기도 좋다. 1호 기숙사에는 약 50개 대학 남녀 각각 500명이 생활하고 있다. 또 멘토링 사업도 하고 있다. 각계에서 성공한 분의 경험과 지혜를 대학생에게 들려주고자 마련한 정책이다. 올해는 전국에서 약 320명의 멘토가 2천700명의 대학생을 지도해주고 있다. 멘토 한 명이 대학생 8명을 한 달에 한 번 정도 만나 인생상담에서부터 여러 이야기를 하며 지도해 준다. 연인원으로 따지면 그동안 2천500명의 멘토가 2만명의 대학생을 지도하고 있다. 또 올해 추경사업으로 고졸 취업자가 대학 진학 때 장학금을 주는 사업과 중소기업 취업 조건으로 고교 3학년에게 장학금을 주는 사업을 새로 시작한다. 새 정부 최대 현안인 일자리 만들기 정책에 일조하려는 시범사업이다. 실행계획을 잘 설계해 당면한 최대 과제인 청년실업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할 생각이다.”

▶한국장학재단의 장기발전 계획이 있다면.

“장학재단이 처음 생길 때 법률상 설립근거와 목적에 ‘고등교육’의 공평한 기회 부여가 명시돼 있다. 그러다보니 형편이 어려운 중·고생이 많은데도 도와주기가 어렵다. 고교 (교육비) 경우 대학등록금보다는 낮지만 그래도 꽤 비싸다. 우리나라는 고교 의무교육을 하지 않는 유일한 OECD국가다. 저소득층에는 고교 등록금이 상당한 부담이다. 그리고 고교에는 장학제도가 거의 없다. 장학재단의 사업 범위를 중·고교로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이 문제는 시간을 두고 추진해 나가겠다.”

▶대구혁신도시 입주 공공기관과 지역사회와의 교류가 중요하다.

“대구로 이전한 공공기관은 12개다. 지역균형발전이라는 대의를 위해 공공기관이 이전했다. (지방 이전으로) 균형발전의 1단계 목표는 완수했다고 본다. 2단계는 이전 공공기관이 그 지역에 동화되고 일체가 돼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12개 기관의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이들 기관이 협의해 ‘지역 대학생 채용할당제’ 같은 것도 했으면 좋겠다. 예를 들어 공동으로 대학생의 취업을 돕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면 어떨까 한다. 직원들이 직접 직장 소개도 하고, 면접요령이나 직장생활 등을 들려주면 대학생의 취업에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이들 기관의 첫 모임이 9월 초에 예정돼 있는데 잘 협의하겠다.”

▶대학생과 청년이 많이 힘들어 한다. 구조적인 문제로 고통받고 있는 것 같다.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우리 세대가 대학에 다닐 때는 취직 걱정하지 않고, 여유있게 학교를 다녔다. 그에 비해 요즘 청년은 취업도 어렵고, 결혼도 어렵고, 출산도 어려운 소위 3포세대라 불린다. 안쓰럽고 미안한 생각마저 든다. 취업이 너무 어렵다 보니 학생이 취업 위주의 공부만 하고, 일반 교양이나 고전 읽기를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어 안타깝다. 현실이 아무리 어렵더라도 좀 더 멀리 보고 기초를 튼튼히 닦는 공부를 해주면 좋겠다. 뭐니뭐니 해도 기본 교양과 고전은 인생을 받쳐주는 초석이다. 회사에서 사람을 뽑을 때도 지식의 암기보다는 인간으로서의 기본 소양과 인성을 중시하고 있다. 아무리 현실이 어렵더라도 젊은이는 왜소한 인간이 되지 말고, 멀리 보고 큰뜻을 품으라고 권하고 싶다.”


  박종문기자 kpj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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