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하기 좋은 대구 만들기 .6·끝] 미리 그려보는 ‘대구형 예술인 지원제도’

  • 최미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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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10-31 07:57  |  수정 2018-10-31 08:48  |  발행일 2018-10-31 제23면
“모든 분야 예술가 모일 공간 있어야 시너지효과…관객과 연결도 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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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예술인들은 예술인 지원에 대해 “단발적인 작품 제작 지원보다는 창작하는 과정에 대한 지원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지난 4월 열린 대구문화재단의 지역문화예술지원사업 정산설명회 모습. <대구문화재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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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와 지자체가 문화예술 관련 하드웨어가 아닌 예술인을 위한 창작 기반을 마련하는 데 눈을 돌리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문화체육관광부는 비정기적으로 일을 하는 예술인을 위한 고용보험제도를 추진하고 있다. 프랑스의 ‘앙테르미탕’이 문체부에서 마련하고자 하는 예술인 고용보험의 모델이다. 지난 7월31일 고용보험위원회에서는 예술인에게 고용보험을 적용하는 방안이 의결되기도 했다. 전국의 각 지자체들도 예술인 복지 증진 조례를 제정하는 등 예술인의 안정적인 창작을 위한 제도를 마련하고 있다. 대구시는 지역 예술인의 창작 기반 조성과 시민들의 문화 접근성 높이기를 목표로 조례를 개정하거나 제정할 예정이다. 대구 예술인의 상황에 맞는 ‘대구형 예술인 지원제도’는 어떻게 만들어져야 할까. 현재 활동 중인 예술인들로부터 의견을 들어봤다.

정부차원 공연기획홍보단체 만들어
작품과 대중을 만나도록 지원해줘야

순수예술분야 전문적 강의 더욱 확대
멘토에게 배울 수 있는 기회 제공해야

창작작업 투자자 찾아주는 제도 필요
미술분야는 공동작업실 형태도 절실
“충분한 조사로 현실반영 제도 마련”


◆하고 싶은 창작만 할 수 없는 현실

어느 지역이든 당연한 상황이지만 지역 예술인들 또한 하고 싶은 창작 활동만 집중하지 못하는 여건에 놓여 있다. 정기적으로 수입이 없다보니 자신이 활동 중인 분야와 관련이 없는 아르바이트 등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21년 정도 무용분야에서 활동 중인 노진환 노진환댄스프로젝트 대표는 “나의 경우 집에서 도움을 받아가면서 활동했기에 또래 친구들보다는 편하게 창작활동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주변 친구 중에는 현실적으로 많이 어려워 포기하거나 아르바이트 때문에 하고 싶은 공연을 하기에는 시간이 맞지 않는 상황이 반복돼 꿈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8년 정도 활동한 박지수 극단 에테르의 꿈 대표도 “안정적인 수익이 창출되면 좋지만 그럴 수 없는 상황이다보니 여러 일을 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창작 작업에 지장이 가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지원사업을 받기 위해 정작 하고 싶은 창작을 하지 못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스트리트 댄스팀 아트지의 박혜진 실장은 “지원사업을 받으려고 하다보면 그 조건에 맞추기 위해 창작 방향을 조정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개인적인 창작 욕구를 해소하기 위한 활동만 하는 건 수익을 창출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작품에 대한 홍보와 인큐베이팅 시스템

지역 예술인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 중 하나는 작품에 대한 홍보와 마케팅이었다. 대구문화재단의 지원사업이 있기는 하지만 더 중요한 건 작품과 대중을 만나게 하는 것에 대한 지원이라는 것이다. 열악한 지역 예술단체의 여건상 예술가들이 창작활동을 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작품을 알리는 것도 직접 해야 하지만 사실상 이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하는 것은 쉽지 않다.

박지수 극단 에테르의 꿈 대표는 “관객이 없는 것만큼 예술인들을 위협하는 건 없다. 창작활동과 관객과의 연결이 중요하다.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정부 차원의 공연기획홍보단체를 만들어 예술단체들의 공연을 홍보해주고 관객을 끌어다주는 것도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예술인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이 강화돼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노진환 노진환댄스프로젝트 대표는 “순수예술과 생활예술의 경계가 모호해졌는데, 생활예술의 비중이 더 커지고 있는 것 같다. 순수예술이 더 발전하려면 각 분야의 전문가라 할 수 있는 멘토를 만나고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아지고 관련 프로그램이 개발돼야 한다”고 했다. 김민주 미술작가도 “서울에는 대안공간이 많다보니 젊은 작가들이 처음 전시를 시작하고 홍보하고 자리잡을 수 있는 인큐베이팅 시스템이 구축되는데, 대구에는 많지 않아 아쉬울 때가 많다. 지역 문화시설에는 시민을 대상으로 하는 강의는 많지만 전문인을 위한 강의가 드문데 좀 더 많아지면 좋을 것 같다”고 의견을 냈다.

◆창작 공간 마련·지역 사회와의 연계도 필요

예술인들은 꾸준히 창작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특히 미술 분야의 경우 작업을 하다보면 점점 작품의 규모가 커지고 작업공간도 점점 넓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김민주 작가는 “또래 작가나 동기들을 보면 대구 작업실이 비싸다보니 경기도나 대구 외곽으로 작업실을 옮기는 경우가 많다. 작업공간도 필요하지만 작품을 보관할 만한 창고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작가들을 대상으로 수요를 조사해서 공동작업실 형태라도 제공하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과 영국을 오가며 활동 중인 전시기획자 송요비 10AAA 대표는 “오래된 건물이나 행정적 처리 기간이 오래 걸려 비게 된 중심가의 빈 건물을 예술가에게만 입주 기회를 주는 식으로 분양해 월 20만~30만원의 임대료를 받고 대구시나 대구예술재단 혹은 다른 기관이 대행하는 것도 필요할 것 같다. 경북도청이 조만간 비게 될 것이라는 소식도 들었는데, 음악·미술·연극 등 모든 분야의 예술가들이 한 건물에 모인다면 엄청난 시너지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예술인과 지역 사회를 이어줄 수 있는 사업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박지수 극단 에테르의 꿈 대표는 “지역 중소기업 중 성공한 기업이나 대기업과의 연계를 통해 창작작업의 투자자를 찾아주는 제도가 많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인건비 책정 등 기존 지원사업 보완

기존의 예술인 지원제도를 보완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낸 예술인들도 있었다. 안민열 연극저항집단 백치들 상임연출가는 “연극의 경우를 보면 공급에 비해 수요가 적다보니 상품은 팔리긴하지만 사장되고 있다. 지원정책의 대부분이 공연 제작 지원이 대부분인데, 이때 공연에 참여하는 구성원에 일회성으로 임금을 지급하면 배우, 스태프, 나아가 창작하는 이들은 그때만 창작하고 손을 놓아야 하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예술인에 대한 인건비 지급 등 주로 실제 활동한 이들에 대한 보상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송요비 10AAA 대표는 “네덜란드는 예술 프로젝트에 대한 지원금에 월 인건비가 책정 된다. 우리나라의 예술지원금의 경우 인건비 책정 없이 사업을 해야 해서 지원금을 받을 경우 사비를 써가면서 활동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예술인들은 새로운 정부의 지원 제도가 예술인들의 현실을 반영한 결과가 되어야 하는데 의견을 모았다. 안 연출가는 “다른 국가들의 사례를 참고하되 결정적인 수혜자인 한국의 예술가들에게 적용 가능한 최선의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며 “그 정책들은 실행에 옮기기까지 충분한 자료를 조사하고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해 반영해야 한다. 각 분야에서 활동하는 분들의 경험과 의견을 가장 많이 수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미애기자 miaechoi21@yeongnam.com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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