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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이지만 우리의 교통문화는 아직 수준미달이다. 음주 운전에 대한 벌칙이 꾸준히 강화됐지만 음주로 인한 교통사고는 줄어들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 교통사고 사망률이 OECD국가 중 최상위로 알려지고 있다. 하루 평균 500건 이상의 교통사고가 발생하여 20여명의 아까운 생명을 앗아가고 있다. 대부분 사고가 운전자의 취기 때문이다.
필자의 지인인 한 엘리트 공무원은 만취상태의 음주운전 차량에 치여 불구자가 돼 10여년 동안 병원 생활을 하고 있다. 수차례 삶을 포기하려 했지만 이마저도 여의치 못했다. 길거리에 전동휠체어를 몰고 다니는 이들 가운데는 음주운전에 의한 희생자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음주 운전으로 인한 폐해가 심각해지자 급기야 대통령까지 나서 “음주운전 사고는 실수가 아니라 살인행위가 되기도 하고 또 다른 사람의 삶을 영원히 무너뜨리는 행위가 되기도 한다”며 처벌을 강화하는 등 대책을 마련할 것을 지시했다. 때 늦은 감은 있으나 시민의 불안을 없애 주는 매우 바람직한 조치라 하겠다.
세계 각 나라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우리나라는 음주단속에 대한 처벌 정도가 극히 낮은 편이다. 싱가포르에 다녀온 관광객들은 이구동성으로 그 나라의 거리질서를 부러워하고 있다. 그런데 그 나라는 숱한 시행착오를 거쳤고 음주 운전자에 대한 강력한 극약처방으로 정착시킨 것이다. 처음 적발 시 징역 6월이나 600만원의 벌금을 부과하고, 재범일 경우 3년의 징역이나 벌금 2천600만원을 부과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 음주운전자나 술을 권하거나 술을 준 사람도 함께 벌금형에 처한다. 태국은 음주운전 사고 발생률이 높은 국가 중 하나다. 적발되면 운전자에게 가혹한 벌을 준다. 영안실 봉사명령을 내린다. 시신 닦기와 옮기는 일을 하게 한다. 말레이시아에서는 적발 시 곧바로 감옥으로 간다.
이들 나라에 비하면 한국의 음주자 처벌은 극히 가벼운 셈이다. 음주운전 근절을 위해서는 운전자뿐만 아니라 시민 모두가 동참하는 의식을 가져야 하겠다. 독일에 있었던 실례 하나를 든다. 한 회사의 사원이 친한 동료와 술을 마시고 자정 무렵에 승용차로 귀가했는데 아침에 출근하자 경찰로부터 ‘음주운전’으로 출두하라는 통지서가 날아왔다. 본 사람이 아무도 없었는데 알고 보니 고발한 사람은 다름 아닌 함께 술을 마셨던 동료였다는 것이다. 얼핏 생각하면 그 고발한 자가 몰인정하고 야비한 동료로 여겨질지 모르겠으나 직장 동료에 대한 묵시적인 바람직한 충고로 받아들여야 될 일이다.
철학자이며 교육학자인 존듀이는 ‘문명은 질서’라고 하였다. 강제규범에 얽매이는 타율적인 질서와 스스로의 힘으로 지키는 자율적인 질서가 있다면 문화인은 당연히 자율적인 질서를 우선으로 여겨야 할 것이다. 범칙금을 무겁게 하고 징역살이를 시킴으로 떨어진 국민의식을 되찾으려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오늘날의 우리사회 음주운전 현상으로 봐서는 별다른 방도를 찾을 수 없어 보인다.
‘법’이란 강제규범으로 중병을 앓고 있는 질서사범들의 의식을 바로 잡아 귀중한 시민의 생명을 보호해야 한다. 녹색 신호등이 들어올 때 한 손을 높이 든 귀여운 어린이들이 해맑은 웃음으로 마음 놓고 횡단보도를 건널 수 있는 그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김 한 기 (민주평통구미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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