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환의 뮤직톡톡] 눈물 젖은 두만강

  • 뉴미디어부
  • |
  • 입력 2018-11-09   |  발행일 2018-11-09 제39면   |  수정 2018-11-09
옛가요 동호회인 유정천리에서 만든 김정구 탄생 100주년 걸작집.
[김명환의 뮤직톡톡] 눈물 젖은 두만강

한국인이 좋아하는 애창곡을 한 손에 꼽으라 한다면 ‘번지 없는 주막’ ‘나그네 설움’과 함께 반드시 등장하는 김정구가 부른 국민가요 ‘눈물 젖은 두만강’이 있다.

그는 1916년 강원도 원산에서 태어났다.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자라 어릴 적부터 찬송가와 친숙했다. 형제 모두 클래식을 전공한 덕분에 자연스레 형의 지도 아래 바이올린을 배웠고 그 또한 클래식 음악가를 동경하며 성장했다. 성가대 일원이었던 그는 1935년 금강산 입구에 있는 온정리 교회에서 찬송가를 불러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박수갈채를 받았다. 그때 현장에 있던 음반 제작자로부터 가수 제의를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클래식의 꿈을 키우던 그에게는 ‘유행가 가수’라는 게 어색하기만 했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성악가인 그의 형과 목소리가 비슷하다는 이유와 형과 누이의 권유로 가수의 길을 걷게 된다.

그는 코믹한 가사와 동작이 곁들어진 ‘만요 가수’가 된다. 그가 노래한 대표적인 만요 곡 중 하나가 1938년에 발매된 ‘왕서방 연서’다. 젊은 독자들은 생소한 제목일 수도 있겠지만 ‘비단이 장사 왕서방 명월이 한테 반해서…’로 시작되는 그 노래 때문에 전국은 후렴구 소절인 ‘띵호와 돌풍’이 분다. 심지어 노래할 때 이빨 하나를 까맣게 칠해서 이가 빠진 중국인 왕서방으로 분장하고 코믹한 몸짓과 함께 불렀다고 한다.

[김명환의 뮤직톡톡] 눈물 젖은 두만강

그 후 일본 공연을 갔을 때 일본 언론도 ‘나는 새도 떨어뜨리는 김정구’라며 격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대표작은 누가 뭐라 해도 ‘눈물 젖은 두만강’이다. 이 노래가 만들어지게 된 사연을 들어보면 비극소설보다 더 서글프고 안타까운 사연이 아닐 수 없다. 이 노래의 작사·작곡가는 악극단 예원좌의 단원인 젊은 음악가 이시우다. 그날 예원좌 악극단은 만주 일대 공연을 마치고 두만강 유역 투먼이라는 곳에서 하룻밤을 보내기 위해 여관에 투숙하게 되었다. 모두 피곤한 탓에 일찍 잠이 들었다. 그런데 고즈넉한 밤에 그의 옆방에서 젊은 여성의 울음소리가 들려 눈을 떴다. 그 울음소리가 하도 서글퍼 밤을 꼬박 새우고 말았다. 이시우는 여관 종업원에게 그 여인의 사연을 전해 듣게 된다. 그녀의 남편이 독립군에 참가해 활동하던 중 일본군에게 잡혔다는 소식을 듣고 두만강까지 한걸음에 달려왔으나 그는 이미 일본군에게 죽임을 당해 저렇게 오열한 것이다. 또 그날은 전사한 남편의 생일이었다. 그래서 집주인에게 약간의 술과 음식을 차리게 하고 여관방에 홀로 앉았으니 어찌 서럽지 않았겠는가. 그 울음소리가 벽을 울리고 방바닥을 울리니 옆방에 있는 그 누구라도 같이 슬퍼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다음날 두만강 물결을 보며 생각에 잠겨 있다가 문뜩 떠오른 가사가 ‘두만강 푸른물에~’ 라는 가사였다. 반나절 만에 곡을 완성시켰다. 그날 밤 공연 막간을 이용해 소녀가수 장성월이 처음 부르게 된다. 그 노래와 사연을 들은 관객들은 눈물과 환호로 몇 번이나 앙코르를 외쳤다고 한다. 그렇게 슬피 울던 그 여인은 다음날 두만강에 몸을 던져 먼저 떠난 남편을 따라 갔다고 한다.

서울에 도착한 이시우는 곧바로 음반 제작을 위해 김정구를 만났다. 작곡가 박시춘에게 편곡을 맡겼다. 1939년 2월에 발매하였으나 1943년 조선총독부로터 발매 금지처분을 받고 잊혀지게 되었다. 그 후 김정구는 6·25전쟁으로 부산 판잣집에서 아내와 어머니를 모시고 지게꾼으로 연명했다고 한다. 세월이 흘러 이 노래가 전 국민의 노래가 된 계기는 1960년대 반공 라디오 드라마 ‘김삿갓 북한 방랑기’의 테마곡으로 발탁되면서부터. 그렇게 전국에 퍼지게 되었고 김정구는 가는 곳마다 이 노래를 열창하게 된다. 1975년 가수 최초로 TV를 통해 회갑 기념쇼를 가진 그는 1980년 가수 최초로 문화훈장을 받았다. 어릴 적 가요무대에서 가끔 보였던 그는 1998년 미국에서 세상을 떠났다.

재즈드러머 sorikongan@hanmail.net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위클리포유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