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의 그림편지] 백미혜 작 ‘Grid Poetic- 아버지의 명태’

  • 김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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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12-28   |  발행일 2018-12-28 제40면   |  수정 2018-12-28
화가 아버지의 열정적 삶과 작품, 딸이 그 위에 그려낸 가족 사랑
[김수영의 그림편지] 백미혜 작 ‘Grid Poetic- 아버지의 명태’

일거양득(一擧兩得). 살짝 속물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이 말을 좋아합니다. 바쁜 세상에 한 가지 일로 두 가지 이익을 얻을 수 있으니 좋아할 수밖에요. ‘김수영의 그림편지’ 취재를 위해 백미혜 화가를 만나기로 약속한 날의 그 며칠 전에 그의 아버지인 백태호 선생(1923~88)의 전시를 봤습니다. 대구문화예술회관이 기획전으로 연 ‘김우조, 백태호 그리고 격동기의 예술가’란 전시였습니다. 예전부터 백태호 선생의 불타오르는 듯한 명태 그림에 빠져있었던 터라 그 전시를 본 뒤 백미혜 화가를 만나니 이것저것 할 말이 많았습니다.

백 작가는 10년 전부터 ‘Grid Poetic’이란 연작을 통해 그의 삶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그리드는 가로·세로 선으로 엮여진 격자 형식의 무늬를 의미합니다. 그는 가로·세로의 테이핑작업을 통해 작품을 완성해 나가는데 그 그리드 안에 그의 삶의 이야기들이 녹아있습니다.

그는 화가이자 시인입니다. 첫 시집 ‘토마토 씨앗을 심은 후부터’를 시작으로 ‘에로스의 반지’ ‘별의 집’ ‘대지의 기침은 씨앗 안에 있다’ 등의 시집을 펴냈습니다. 그의 시집과 미술작품은 선순환의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미술작업으로 ‘땅따먹기’ ‘미궁의 시간’ ‘꽃피는 시간’ ‘별의 집’ 연작 등을 선보인 그는 미술작품에서 영감을 얻어 시를 적는가하면 시에서 자극을 받아 미술작업을 하기도 합니다. 이런 측면에서 그의 작업은 시와 미술이라는 전혀 다른 장르를 병행하는 듯하지만 하나의 모습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가 그동안 다양하게 선보여온 문학·미술작품은 자신의 삶, 나아가 인간의 삶을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Grid Poetic’이라는 작품에서 씨줄과 날줄은 다양한 삶의 형상들입니다. 여러 사건이 이리저리 얽히고 차곡차곡 쌓이는 과정이 우리의 삶인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이 작업은 화가와 시인인 그의 두 가지 직업을 동시에 드러냅니다. 그가 펴낸 시집의 시구들을 오려서 작품에 접목시켰습니다. 캔버스 위에 그의 시구들이 올라가고 여기에 물감, 테이핑작업이 가미됩니다.

최근에는 그의 시는 물론 인형 등의 애장품, 그와 교류하고 있는 이하석·장옥관·박소유 등 지역 시인의 시집이나 그들의 애장품 등을 오브제로 사용해 훨씬 풍성한 이야기를 간직한 ‘Grid Poetic’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김수영의 그림편지] 백미혜 작 ‘Grid Poetic- 아버지의 명태’
주말섹션부장 sykim@yeongnam.com

점점 진화하고 있는 ‘Grid Poetic’ 연작 가운데 눈길을 끄는 것이 바로 ‘Grid Poetic- 아버지의 명태’입니다. 그의 아버지 백태호 선생의 그림을 바탕에 깔고 그 위에 다양한 색상의 테이핑작업을 통해 백태호와 백미혜라는 부녀 화가의 작품을 한꺼번에 보여주고 있습니다.

백태호 선생은 굴곡진 삶을 살았던 화가였습니다. 일본 도쿄예술대학에 입학했으나 일제의 징집으로 1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와 부산상업고에 재직했습니다. 이때 첫 개인전을 열었으나 붉은색을 많이 썼다는 이유로 고문을 받기도 했습니다. 1978년에는 고혈압으로 쓰러져 몸이 마비되었습니다. 작업에 대한 열정이 꺾이는 과정을 여러 차례 겪었던 것입니다. 재활을 통해 1980년대 마른 명태를 소재로한 작품을 보여주는데, 이 말년작들에는 붉은 색깔이 풍성합니다. 붉은색으로 인해 고통받았던 과거의 기억을 응축한 작품이라 보입니다.

‘Grid Poetic- 아버지의 명태’에는 두 작가의 삶이 잘 스며 있습니다. 아버지의 삶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이가 바로 딸 백미혜 화가였기에 그는 아버지에 대한 사랑을 이 작품을 통해 보여주려 했는지 모릅니다.

연말, 유난히 가족이 그리워지는 때입니다. 이 작품을 보면서 부모님과의 추억, 사랑을 다시 한번 되새겨보는 기회를 가졌으면 합니다.

주말섹션부장 sykim@yeongnam.com

#백미혜 화가는 대구가톨릭대 회화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으며 독일 뒤셀도르프 국립미술학교를 수료했다. 그동안 30여회 개인전을 열었으며 500여회 단체전에 참여했다. 그의 작품은 과천국립현대미술관, 대구문화예술회관, 대구은행 등에 소장돼 있다. 대구가톨릭대 조형예술학부 교수를 지냈으며 현재 대구가톨릭대 CU갤러리 관장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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