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가슴의 씨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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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1-22 07:57  |  수정 2019-01-22 09:03  |  발행일 2019-01-22 제25면
20190122
박현주<달성문화재단 문화사업팀장>

‘국기에 대한 맹세’가 바뀐 지 오래다. 그러나 맹세할 일이 잘 없어서인지 개정된 내용은 아직 어색하고 입에도 잘 붙지 않는다. 이제 와 생각해보면 몸뿐 아니라 마음까지 바친다는 지난 맹세는 상당히 부담스럽다. 시대가 변했다. 내가 변한 탓도 있겠지만 되돌아보면 생경한 풍경들이 참 많았다. 국민학교 시절, 아이들은 운동장에 모여 ‘좌향좌, 우향우, 앞으로 가! 왼발, 왼발’하는 구령에 맞춰 힘차게 행진을 해댔다. 그러다 긴장해 왼발과 왼손이 같이 나가는 이단아가 생기면 아이들은 배꼽을 잡으며 웃곤 했다. 반공교육용 비디오를 시청하며 6·25 남침에 대해 열변을 토하는 선생님의 심각한 분위기에 압도돼 주눅이 들기도 했다. 또 교련시간에는 붕대질을 배웠다. 전쟁이 나더라도 내 솜씨로는 한 명도 살릴 수 없겠단 두려움과 함께.

지금은 찾을 수 없는 풍경일뿐더러 그러한 기미도 있으면 안 될 일이다. 이쯤 되면 살기 참 좋아진 것 같아도 꼭 그렇진 않다. 지금도 뉴스만 보면 세상은 곧 망할 것 같고, ‘신냉전’이란 말도 심심찮게 들려온다. 그래도 긴장감이 팽팽했던 예전이 더 엄중했다 싶겠지만, 개인적인 체감으로는 현재의 무게가 더 크다. 이 사회를 책임질 나이가 되었기 때문이다. ‘아니, 아직 난 청춘이야’라며 발 빼고 싶지만, 세상 탓만 할 수 없는 세대가 된 것을 인정해야 한다.

나는 운 좋게도 아주 모범적인 모습으로 세상에 책임을 다하던 분을 만난 적 있다. 중학교 때 선생님으로, 불우한 환경 속 가출을 일삼던 한 탈선 청소년을 위해 온 몸을 던진 분이었다. 다른 선생님들은 그 학생에게 관심이 없었지만, 그분은 방학을 반납하고 가출한 아이를 찾기 위해 전국을 헤맸다. 한 번도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아이들이 생명과 환경에 관심을 가지며 자라도록 응원해주셨다. 그러나 몇 년 후 온 정성을 다해 구하려 했던, 바로 그 아이가 일으킨 불미스러운 사건에 휘말려 학교에서 더는 뵐 수 없게 되었다.

사람이 가슴에 남긴 씨앗은 느릿하지만, 평생에 걸쳐 영향을 끼친다. 보는 것만으로 훌륭한 교육이었던 그분의 모습은 내게도 씨앗을 남겼다. 그러나 십여 년간 씨앗은 존재를 드러내지 않았다. 원인을 찾아보니 이유가 있었다. 세상을 다각적으로 이해할 마음의 품이 필요했던 것이다. 먼저 결실을 맺은 문·사·철의 씨앗들이 숙성된 후 거름으로 토양을 만들고서야 비로소 발아가 시작됐다. 나도 어느덧 당시의 선생님 나이가 되었다. 같은 상황에서 선생님처럼 행동할 자신감은 아직 없다. 그렇지만 그분 덕분에 ‘좀 더 나은 인간이 되어야겠다’는 자신을 돌아보는 힘을 얻었다. 영웅은 난세에 난다고 했던가. 아니다. 사실은 근처에,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살아 숨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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