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희의 그림 에세이] 장승업의 ‘홍백매도(紅白梅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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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2-22   |  발행일 2019-02-22 제39면   |  수정 2019-03-20
베토벤의 ‘합창’처럼 눈으로 듣고 귀로 보는 매화꽃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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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승업, ‘홍백매도’, 종이에 담채, 90X433.5㎝, 조선말기,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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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의 교향곡 9번 ‘합창’이 가슴을 울린다. 웅장한 ‘합창’을 듣고 있으면, 오원(吾園) 장승업(張承業, 1843~1897)의 ‘홍백매도(紅白梅圖)’가 눈앞에 펼쳐진다. 마치 파도가 거칠게 휘몰아쳐 다시 잔잔해지는 바다 같다.

대학교 4학년 때, 한 고등학교에 교생실습을 나간 적이 있다. 시간표에 맞춰 생활하다보니 숨이 멎을 것만 같았다. 그때마다 음악실에서 흘러나오는 교생들의 바이올린이나 피아노 연주가 숨통을 틔워주었다. 음악은 공기청정기였고 약이었다. 그 후 음악은 인생의 동반자가 되었다.

추운 겨울을 이겨낸 붉은 동백과 희고 붉은 매화가 개화의 질주를 시작했다. 신문이나 TV에 앞다투어 장식하는 봄꽃이, 그러나 장승업의 ‘홍백매도’만하랴. 아름드리나무에서 매화꽃이 수백발의 폭죽처럼 터졌다. 만개한 매화꽃이 장관을 이룬다. 눈으로 듣고 귀로 보는, ‘꽃들의 합창’이 현실마저 잊게 한다.

조선시대 말기는 개화사상이 싹트고, 역관과 의원 같은 기술직 중인계층과 하급관리로 구성된 여항문인들의 활동이 두드러진다. 그들은 재력과 학식을 바탕으로 서화(書畵)를 수집하고 시회(詩會)를 갖는 등 유행을 선도해갔다. 화가들은 중인계층의 기호에 맞춰 청나라에서 유입된 서양화법을 사용하여, 개성이 강한 이색적인 화풍으로 인기를 모았다. 그 중 남종화풍을 독창적으로 구사한 장승업의 그림은 베스트셀러였다. 하지만 오원 장승업에 관한 기록은 적고, 그마저도 확실하지 않다. 언론인 장지연(張志淵, 1864~1921)이 쓴 ‘일사유사(逸士遺事)’에는 “장승업은 일찍 부모를 잃고 의지할 곳이 없어 떠돌다가 수포교에 있는 이응헌의 집에 머슴으로 들어간다. 일자무식이었으나 천성이 총명하여 주인집 아이들의 글 읽는 것을 들으며 글을 익혔다. 역관인 이응헌은 명화 수집가여서 중국 대가의 명작과 진귀한 물품을 많이 소장하고 있었다. 이를 먼발치서 본 장승업은 명작을 그대로 모방하기에 이른다. 장승업의 그림을 본 이응헌은 그의 재능을 알아보고 후원자가 되었다. 장승업의 화명이 세상에 알려지자 사방에서 그림을 청하는 이가 줄을 이었고, 수레와 말이 골목을 메웠다”고 전한다. 위창(葦滄) 오세창(吳世昌, 1864~1953)은 ‘근역서화징(槿域書畵徵)’에 “장승업은 ‘신운(神韻)이 핑핑 도는’ 그림의 대가로, 기억력이 뛰어나서 한번 본 그림은 세월이 지나도 그대로 재현하는 재능이 뛰어난 화가”라고 평했다. 그런가 하면 미술평론가 근원(近園) 김용준(金瑢俊, 1904~67)은 ‘근원수필’에서 “장승업의 ‘기명절지도’는 근대 서화계에 유행시킨 화목으로, 장식적이며 환상적이어서 서화 애호가들에게 호사취미로 확산시켰다”고 했다.

장승업이 그림으로 개화기를 이끌 수 있던 것은 역관들의 후원 덕분이었다. 역관의 세거지인 광통교 주변이 장승업의 활동 무대였던 만큼 역관집안 출신인 화가 유숙(劉淑, 1827~1873)에게 그림을 배웠다고 전해진다. 장승업의 초기작품에는 유숙의 영향이 나타나지만 이후 중국 원대의 그림 방작(倣作, 본떠서 그린 작품)을 통해 기교적이고 신운이 감도는 ‘오원 양식’을 형성하였다. 청나라 말기, 상해지역에서 유행한 서화문화를 적극 수용하기도 한 그는 산수, 인물, 신선도, 영모화조, 기명절지 등에 뛰어난 기량을 보였다.

‘홍백매도’는 10폭 병풍이다. 고목인 매화나무의 줄기가 화면을 압도한다. 화면에 꽉 차게 클로즈업시킨 듯한 나무줄기와 가지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포즈를 잡았다. 거미줄처럼 뻗은 가지마다 희고 붉은 매화꽃이 점점이 피고 진다. 큰 나무는 영욕의 세월을 보낸 후 작은 나뭇가지에 자리를 내주었다. 옅은 먹색을 입은 나무는 화면의 배경으로 자리 잡았다. 짙은 먹으로 그린, 앞쪽의 가지는 휘어져 큰 줄기를 감싸 안는다. 먹의 농담을 달리한, 크고 작은 나뭇가지가 공간에 변화를 준다.

장승업은 주색을 밝히고 격식에 얽매이지 않았던 자유분방한 성격이었다. 그런 그가 고종의 눈에 띄어 화사(畵師)로 임명되었지만 궁궐은 감옥과 다를 바 없었다. 시간과 장소에 매여서 하는 작업은 엄청난 스트레스였다. 장승업은 궁궐을 빠져나왔다가 다시 잡혀서 붓을 들기를 거듭했다. 결국은 소리 소문 없이 자취를 감추었다. 장승업의 화풍은 그의 제자 심전(心田) 안중식(安中植, 1861~1919)과 소림(小琳) 조석진(趙錫晋, 1853~1920)에게 계승되어 근대화단의 맥을 이었다.

베토벤의 ‘합창’은 말년 작으로, 연주자들의 화음이 조화를 이룬 걸작이다. 그림에서도 조화는 필수다. 각 요소는 다른 요소와의 관계 속에서 각자의 톤을 조절한다. 장승업의 ‘홍백매도’도 줄기와 가지, 가지와 꽃, 형상과 여백 등이 서로 조화롭게 화합하는 가운데 마침내 거대한 합창을 완성했다. 화합은 서로의 빈 곳을 채워주며 함께하는 상생(相生)의 길이다. 우리는 그 길을 따라 서로에게 빛이 되는 꽃이었으면 좋겠다.

화가 2572ki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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