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준의 스토리 오브 스토리 .5] 역사의 상처를 헤집는 폭력의 언어를 거두라

  • 최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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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2-28   |  발행일 2019-02-28 제22면   |  수정 2019-03-14
정략적 목적에 눈 먼 자들, 폭언과 망언으로 역사 더럽혀
20190228
일러스트=최은지기자 jji1224@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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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과 치유, 언어의 두 갈래를 생각하는 나날이다.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말, 죽은 자를 다시 욕보이는 말과 구천을 떠도는 원혼을 위무하는 말을 생각한다. 말은 그냥 말이 아니다. 공론장을 채우는 말은 더욱 그렇다. 의도를 담으면서 모든 말은 정치적이 되고 소통되면서 말은 세력을 얻는다. 말의 정치적인 세력화는 말 이전에도 작용한다. 말을 하는 자와 말문이 막힌 자가 따로 존재할 때 말의 정치적인 성격이 극대화된다. 이야말로 불행한 상황이다.

우리나라 현대사에서 이러한 불행이 가장 두드러진 경우는 무엇일까. 1980년 5월 저 먼 남녘의 땅 광주에서 벌어진 비극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짧지 않은 세월 동안 우리는 ‘광주 사태’라 규정된 그 비극에 대해 말할 수 없었다. 광주에 대한 말문이 막혀 있었다. 그 대신 ‘폭도’나 ‘빨갱이’와 같은 위협적인 말로 치장한 군사정권의 말만이 횡행했다. 새로 들어선 군사독재의 금압 아래서 광주는 그렇게 왜곡된 채 지워져 있었다.

이 어둠에 빛을 밝힌 것이 황석영의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풀빛, 1985)였고, 5·18의 진실을 밝히고자 하는 민주화 운동의 노력은 1987년의 민주 항쟁으로 이어졌다. 이후 변화된 지형 속에서 광주에 대한 말문이 트였다. 청문회가 열렸고, 각종 조사가 행해졌으며, 문학작품들이 발표되었다.

최윤의 ‘저기 소리 없이 한 점 꽃잎이 지고’(문학과지성사, 1992)나 정찬의 ‘완전한 영혼’(문학과지성사, 1992), ‘슬픔의 노래’(동인문학상 수상작, 1995) 등이 광주 희생자의 상처를 보듬었다. 1997년에 다섯 권으로 나온 임철우의 ‘봄날’(문학과지성사)은 “단지 소설로서만이 아니라 비교적 사실에 충실한 하나의 기록물로서도 남을 수 있기를”(1권 14쪽) 바란 작가가 10년간 혼신의 힘을 기울인 노작이다. 광주에 대한 진실이 국가 차원에서 규명되어 ‘광주 민주화 운동’이 역사의 한 장이 된 이후에도 그 슬픔에 대한 위무의 문학은 끊이지 않았다. 권여선의 ‘레가토’(창비, 2012)나 이해경의 ‘사슴 사냥꾼의 당겨지지 않은 방아쇠’(문학동네, 2013), 한강의 ‘소년이 온다’(창비, 2014) 같은 근래의 작품에 이르기까지, 광주의 문학화는 계속되고 있다.


아물지 않은 ‘광주의 상처’ 또 헤집어
국민이 말문 막기 전에 깊이 사죄해야

의도 담긴 모든 말 ‘정치적 세력’ 얻어
공론장 채우는 말은 신중하게 내뱉길



너무 큰 아픔은 짧은 기간에 치유되지 않는다. 우리 모두가 긴 시간을 두고 슬픔을 나눌 때, 그렇게 나뉘는 만큼 조금씩 옅어지면서 차차 치유될 뿐이다. 이때 치유되는 것은 희생자들만이 아니다. 그들을 버려두고 외면한 우리들의 부끄러움, 당시에는 몰랐어도 진상이 밝혀지면서 생겨나는 죄의식,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우리 모두가 안게 되는 부채의식도 함께 치유된다. 사정이 이러해서, 역사의 비극들은 계속 노래되어 왔으며 앞으로도 노래되어야 한다. 홀로코스트를 두고 그래 왔듯이 일본군 성노예 문제와 세월호, 광주의 비극도 앞으로 한동안 달래져야 한다. 이러한 비가의 재생산이야말로 우리 공동체가 건강해지는 길이다.

불행히도 2019년 오늘, 온전히 아물지 않은 광주의 상처를 헤집고 뒤트는 일이 행해지고 있다. 폭력의 언어가 다시 꿈틀대고 있다. 자신의 정략적인 목적에 눈이 먼 자들이 광주 민주화 운동에 대한 폄훼로 공론장을 더럽히고 있다. 군사반란과 내란을 일으킨 세력에 맞서 민주주의의 수호를 외친 시민들, 무려 166명의 사망자를 낼 정도로 신군부에 의해 철저히 짓밟힌 저 광주 시민들의 염원과 희생을, 국가도 국민도 돌아보지 않는 정치모리배들이 욕보이고 있다.

광주 민주화 운동은 무엇인가. 유신 체제의 붕괴 이후 펼쳐진 ‘서울의 봄’을 억누르며 등장한 전두환, 노태우의 신군부 세력에 맞서 민주주의의 수호를 외친 광주 시민들의 항쟁이다. 달리 보자면, 1980년 5월18일에서 27일까지 열흘간 광주의 시민들이 군대에 의해 잔인하게 억압되고 살해된 우리 현대사의 비극이다. 한동안 ‘광주 사태’로 불리면서 진상이 은폐되었던 이 비극이 역사에 자리 매겨진 과정은 다음과 같다.

1987년 6월의 민주 항쟁이 열어준 새로운 정치 상황에서, 1988년 광주 학살 진상 규명 청문회를 거쳐 그 정황이 어느 정도 밝혀졌다. 1995년에는 김영삼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5·18 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어, 12·12사건, 5·18사건, 비자금 사건의 공판이 시작되었다. 1996년 12월16일 항소심 결과, 전두환에게는 무기징역과 벌금 2천205억 원, 노태우에게는 징역 15년과 벌금 2천626억 원이 선고되었다. 1997년 4월17일 상고심에서 위의 형량이 확정되었으며, 12·12사건은 ‘군사반란’으로, 5·17사건과 5·18사건은 ‘내란 및 내란 목적의 살인행위’로 규정되었다. 이후 광주 민주화 운동은 1997년 5월 법정기념일로 제정되었고, 2011년 5월에는 5·18 광주 민주화 운동 관련 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었다.

수차례에 걸친 국가 차원의 조사와 사법부의 판단에 의해 광주 민주화 운동은 이렇게 역사의 한 장이 되어 있다. 유신독재를 행하던 박정희의 죽음 이후 군사반란을 일으킨 신군부가 내란을 기획하고 전국에 계엄령을 내린 뒤 이에 항의하는 광주 시민들을 군대를 동원하여 진압하면서 166명의 민간인을 살해한 것이 이 슬픈 역사의 실체다.

가장 슬픈 것은, 이것이 다일까 하는 의문을 지울 수 없다는 사실이다. 희생자가 더 있는 것은 아닌지, 시민에 대한 발포를 누가 명령했는지, 헬기의 사격이 있었는지와 같은 아직 풀리지 않은 의문들이 남아 있다. 이러한 의문들을 파헤쳐 광주 민주화 운동의 실체적 진실을 복원하고자, 2018년 2월에 ‘5·18 민주화운동 진상 규명을 위한 특별법안’이 만들어져 국회를 통과했으며 9월14일 시행되었다. 이 법의 취지는 인권 유린에 대한 조사와 5·18과 관련해서 왜곡되거나 은폐된 진실을 규명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진상 규명의 범위가 민간인 학살, 발포 책임자 및 헬기 사격 명령자, 진실 왜곡·조작 의혹, 집단 학살지와 암매장지의 소재, 행방불명자의 규모 및 소재, 북한군 개입 여부 및 북한군 침투 조작 사건으로 정해졌다.

마지막 항목은 특별법의 제정을 반대하던 자유한국당의 요구에 따른 것인데, 바로 이 항목 하나에 집중해서 공청회를 열어 거짓 주장을 확대재생산해 낸 것이 최근 사태의 본질이다. 지난 2월8일 자유한국당의 김진태·이종명·김순례 의원이 ‘5·18 진상규명 대국민 공청회’라는 것을 열면서 북한군 개입설을 주장해 온 지만원에게 발제를 맡기고는 그에 동조하는 망언을 쏟아냈다. 지만원의 주장이란 북한군 특수부대 600명이 광주로 침투해서 사태를 주동했다는 것이다. 전국에 계엄령이 내려진 상황에서 북한군 600명이 저 남도의 광주에까지 진입했다니 소가 웃을 이야기인데, 이 터무니없는 주장이 국회 의원회관에서 반복되었다.

지만원의 주장은 전두환 본인이 2016년 6월 ‘신동아’와의 인터뷰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일축한 것이고, 2013년 5월 서울중앙지법, 같은 해 11월 대법원 판결에서 사자명예훼손이자 허위사실이라고 결론이 난 망언이다. 대표적인 보수 논객인 조갑제 또한 불가능한 일이라며 부정한 바 있다. 저들이 애면글면 모시는 박근혜나 이명박 전 대통령 또한 5·18을 민주화 운동으로 평가하였다.

이러한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두고, 북한군 개입 운운의 헛소리를 재생산한 저들은 국회의원의 자격을 스스로 저버린 것이다. 사법부의 최종적인 판단과 역대 정부들의 판단, 국민 대다수의 판단을 역행하는 국회의원이란 국가 기관일 수 없는 까닭이다. 이들에 대한 자유한국당의 제재가 미온적이고 자유한국당의 5·18 진상규명조사위원 상임위원 추천 내역이 편파적인 것까지 더하면, 자유한국당 자체가 스스로 파멸의 길을 걷는 듯싶다. 역사의 상처를 보듬어 온 국민에 의해 말문이 막히기 전에, 폭력의 언어를 거두고 깊이 사죄할 일이다.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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