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천 수도암 碑文, 김생이 808년 쓴 글씨”

  • 송종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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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6-05 07:16  |  수정 2019-06-05 07:16  |  발행일 2019-06-05 제9면
김생서·원화삼년·비로자나불 등
기존 22자 이외에 21자 추가 판독
“김천 수도암 碑文, 김생이 808년 쓴 글씨”
박홍국 위덕대 박물관장이 박방룡 신라문화유산연구원장·이영호 경북대 교수와 함께 김천 수도암비를 조사해 추가로 글자를 판독했다. 왼쪽부터 김생서(金生書), 원화삼년(元和三年),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이다. ‘원(元)’에서 붉은색 부분은 후대에 새긴 글씨로 인해 사라졌다. <위덕대박물관 제공>
“김천 수도암 碑文, 김생이 808년 쓴 글씨”
김천 수도암비 <오세윤 작가 제공>

[경주] 신라 명필 김생이 쓴 것으로 추정되는 명문(銘文)이 확인(영남일보 5월17일자 2면 보도)된 김천 수도암 ‘도선국사비’(이하 수도암비)가 김생이 808년(원화삼년)에 쓴 글씨를 새긴 비석이라는 추가 판독 결과가 나왔다. 박홍국 위덕대 박물관장은 박방룡 신라문화유산연구원장·이영호 경북대 교수와 함께 수도암비를 조사해 기존 읽은 글자 22자 외에 김생서(金生書)·원화삼년(元和三年)·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 등 21자를 더 판독했다고 4일 밝혔다.

수도암비는 화강암으로 청암사 부속 암자인 수도암 약광전 앞에 있다. 크기는 높이 177㎝·너비 60~61㎝·두께 42∼44㎝다. 일제강점기에 판 것으로 짐작되는 ‘창주도선국사’라는 커다란 글자 때문에 잘 보이지 않지만, 본래 세로 길이 4~5.5㎝인 글자를 8행에 26자씩 새겼다.

박 관장은 “비석 끝부분 8행에서 흐리지만 다른 글자보다 조금 작게 새긴 ‘김생서(金生書)’라는 세 글자를 찾았다”면서 “‘원화삼년’이라는 연호는 6행 중간에 있는데, 후대에 판 도(道)자에 의해 원(元)자가 가로로 절단됐으나 일부 획이 남아 있어 판독이 가능했다”고 설명했다. 박 관장은 또 “비석을 세운 목적은 박방룡 원장이 제1행에서 판독한 ‘비로자나불’을 통해 가닥을 잡았다”며 “수도암비는 신라 말기에 조성된 청암사 수도암 석조비로자나불좌상(보물 제307호)의 정확한 제작 연도를 알려주는 자료”라고 강조했다.

앞서 박 관장은 지난달 초 이영호 교수·정현숙 원광대 서예문화연구소 연구위원과 함께 수도암비를 조사한 뒤 김생 사후인 954년에 승려 단목이 집자(集字)해 만든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봉화 태자사 낭공대사탑비’(보물 제1877호)와 필체가 매우 흡사하다는 점을 근거로 김생 진적(眞蹟·실제 필적)이라는 견해를 내놨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김생은 미천한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어려서부터 글씨를 잘 썼고, 여든을 넘어서도 붓을 놓지 않아 입신(立神)의 경지에 이르렀다.

송종욱기자 sjw@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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