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 칼은 눈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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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10-21   |  발행일 2019-10-21 제30면   |  수정 2020-09-08
진짜로 용감무쌍한 사람은
녹슨 정의의 칼을 흔들거나
악플로 인간존엄 파괴 않아
칼에는 눈이 없어 잘못쓰면
자기를 찌른다는 사실 알아야
[아침을 열며] 칼은 눈이 없다

조선조에 임금이 사는 궁궐에는 꽃장식이 푼푼했다. 꽃병에는 생화 대신 화장들이 밀랍, 노루털, 비단 등으로 만든 가짜 꽃 채화(彩花)를 꽂았다. 궁궐의 혼사나 외국 사신이 오면 보통 6만~8만송이 정도의 꽃을 바꾸는데 꽃의 종류가 매우 다양했다. 아름답고 향기 나는 생화를 꽂지 않는 까닭은 바로 어여쁜 꽃은 백성을 뜻하고 절대 권력자라도 백성을 꺾으면 안 된다는 의미라고 한다. 절대권력 시절에도 백성을 하늘처럼 섬겼다는 걸 알 수 있다.

기사마다 어김없이 도드라지는 어떤 이름 때문에 사람들이 맑은 물로 눈과 귀를 씻고 싶었을지 모른다. 궁핍하게 살 수밖에 없었던 백성들은 쓰지 못하고 놀지 못하고 일에 매달려 GNP 3만달러를 돌파하여 30~50클럽에 세계에서 7번째로 이름을 올렸다. 앞선 6개 나라는 식민지를 거느렸거나 강대국들이며, 세계는 한국을 기적을 일군 나라라고 칭송하고 질투도 했다. 그렇게 우리는 기적을 일구었으나 기쁨을 잃어버렸는지 모른다. 그 기쁨을 누가 도둑질 했는지 따져 묻지 않을 수 없다.

어떤 기자가 “왜 소설이 안 팔리는가”라고 물었을 때 나는 “날마다 터지는 사건사고가 소설보다 백배나 재미있는데 누가 소설을 읽겠느냐”고 대답하며 씁쓸하게 웃었다. 대형 사건사고의 주인공은 대체로 정치지도자 아니면 사회명사들이다. 그들은 말로는 도덕, 정의, 공정을 내세우지만 실제 행동은 사리사욕에 빠졌다는 게 들통 나곤 했다. 사물놀이패의 흥겨운 가락과 몸짓을 보면서 우리 민족은 흥을 돋우어주면 못해내는 게 없을 만큼 자신감을 갖지만 한이 맺히면 자신감을 잃어버리는 것 같다.

요즘 백성들은 한이 맺혀 이민설명회가 문전성시를 이루는 게 아닌가 싶다. 설마 그럴 리가 있겠냐마는 특권과 반칙이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며 ‘특권과 반칙 면허증’을 가진 것 같은 4류 정치판에 신물이 나고 쥔 자들의 횡포 탓에 고국을 등지려는 백성이 많아진 것 같다. 이민을 준비하는 지인에게 굳이 이민 가려는 까닭을 물었더니 대뜸 “당신 같으면 이런 나라에서 살고 싶으냐”고 되물었다. 사연을 물었더니 ‘불안한 한국의 미래’ 때문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누가 불안한 한국을 만들었는지 또 따져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름을 굳이 거론하지 않아도 떠오르는 얼굴들이 있을 것이다. 예로부터 백성을 이기려하지 말고 고개를 숙이면 부딪치는 법이 없다고 했다. 백성 앞에 고개를 뻣뻣하게 세운 자들은 역사가 매를 든다는 걸 정말 모를까? 모른다면 혼암한 자요, 알면서 그랬다면 파렴치한 것이다.

얼마 전에 미국에서 거물 친일파로 낙인찍힌 자의 자손을 우연찮게 만났다. 스스로 지은 죄가 아닌데도 이 땅에서 살지 못하는 가슴앓이를 하며 산다고 했다. 부모가 지은 과보에 시달리는 걸 보고 자신은 물론 자손을 생각해서라도 나라와 국민에게 죄짓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세상에서 가장 존귀하고 사랑스러운 것은 자기 이름이다. 이름을 더럽히지 말고 남들이 내 이름 부르는 게 기쁨이 되게 살라고 했다. 정치라는 단어에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국민의 상처를 정치인은 알아차려야 한다. 백성을 위해 정치가 존재하는 것이지 정치인을 위해 백성이 존재하는 게 아니라는 걸 왜 모를까.

갖가지 사건사고와 다양한 시위 군중과 갈등 현장을 바라보는 외국인들이 한국에는 용감한 사람만 사는 것 같다고 농담을 했다. 강대국이 쳐들어와도 용감하게 물리칠 것 같다는 말도 덧붙였다. 정치판은 더욱 용감무쌍한 자들이 판을 치고 있다는 걸 세계인들이 인정하고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진짜 용감한 사람은 백성을 멸시하지도, 힘없는 사람을 건들지도, 억지 명분으로 잘난 체하지도, 욕심으로 배를 채우지도 않는다. 영달을 위해 거짓을 일삼고 남을 중상모략하고 녹슨 정의의 칼날을 흔들고 진실의 검은탈을 쓰고 바른 소리한 사람을 갖가지 방법으로 힐난하고 나와 다르면 악플로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하지 않는다.

마음이 불편하고 미래가 불안하며 삶의 걱정이 태산 같아서 불면증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천사를 요구하는 게 아니라 천사의 가면을 쓰고 백성을 괴롭히지 말라는 것이다. 칼엔 눈이 없어서 잘못 쓰면 자기를 찌르는 법이다. 요즘 자기를 찌르는 사람이 왜 이리 많은지 가슴이 시리다.

김홍신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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