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발 바람에 내리막길 vs 근대골목 포함돼 불야성

  • 정우태,이현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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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11-11 07:14  |  수정 2019-11-11 08:51  |  발행일 2019-11-11 제6면
봉리단길과 종로, 엇갈린 명암
20191111
몇해 전 젠트리피케이션이 가장 심한 거리였던 대구 중구 대봉동 봉리단길(위쪽). 7일 저녁 지나다니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한산하다. 대구의 새로운 핫플레이스로 떠오른 종로 일대가 8일 방문객들로 붐비고 있다. 이현덕기자 lhd@yeongnam.com


2010년대 중반 명소 꼽힌 대봉로
 임대료 급상승에 상인떠나‘한산’
 인근 공사장으로 변해 활로 막막

 70년대 화교정착으로 형성된 종로
 지역특성 살린‘먹거리골목’각광
 官추진 각종사업들 시너지효과도

 전문가“지역내 상생이 가장 중요”


지난 7일 오후 7시쯤 찾은 대구 중구 대봉로, 저녁식사 시간임에도 거리는 지나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한산한 모습이었다. 희미한 가로등 아래 불이 꺼진 점포들, 한쪽 구역을 가로막은 공사장 펜스까지 삭막함이 느껴질 정도였다. 대봉네거리에서 대봉치안센터까지 600m가 채 안 되는 거리에 붙은 임대 현수막은 13개. 한 가게 앞에 쌓인 고지서 더미는 오래 전부터 이곳이 비워진 점포였음을 짐작하게 했다. 그나마 영업 중인 식당 역시 빈 테이블이 눈에 띄게 많았고, 아직 마수걸이도 하지 못한 점주들은 TV를 보며 한숨을 쉬고 있었다. ‘봉리단길’은 서울 이태원 ‘경리단길’에 빗대어 자연스럽게 붙여진 이름이다. 2010년대 중반부터 급부상한 이 곳에는 분위기 있는 식당과 카페가 모여들었고, 한때는 대구에서 손꼽히는 명소로 이름을 떨쳤다.

그러나 최근 봉리단길은 침체일로를 걷고 있다. 나빠진 경기 탓도 있겠지만 재개발 영향으로 거리 분위기가 이전과는 달리 삭막해진 탓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2017년 중구청과 계명대 산학협력단이 공동으로 시행한 용역에 따르면, 봉리단길은 건물 임대료가 급격히 오르는 이른바 ‘젠트리피케이션’이 가장 심한 거리로 선정되기도 했다. 현재도 임대료가 높게 형성돼 있지만 수익이 예전에 못 미쳐 상인들이 하나둘 떠나고 있는 상황이다.

이 거리에서 20년 넘게 점포를 운영하고 있는 천모씨(59)는 “임대료는 시내 중심가 못지않게 높은 데 비해 거리가 활성화되지 않아 더이상 못 버티고 떠나는 상인들이 늘고 있다"면서 “더욱이 인근 공사 현장으로 인해 거리 전체가 중장비, 덤프트럭이 오가는 공사판이 돼 버렸다. 완공까지 3년은 걸릴 텐데 막막하다"고 하소연했다.

봉리단길 상인회는 거리 이름을 ‘대로수길’로 바꾸고 변화를 모색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송남수 대로수길 상인회 부회장은 “거리가 너무 어두워서 개인적으로 조명을 내걸었다. 한때 여기도 80여개 업체가 있던 곳인데 지금은 절반도 안 된다. 하루가 다르게 거리가 죽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말했다.

8일 오후 6시쯤 찾은 중구 종로(남일동 일대). 거리를 수놓은 화려한 조명에 말 그대로 불야성이었다. 이른 주말을 즐기기 위해 나온 인파로 거리는 붐볐고, 이곳에 들어선 자동차들은 앞으로 나가는 데 한참이 걸릴 정도였다. 도시철도 1호선 중앙로역 1번 출구에서 종로로 들어서는 길목. 가게들 앞에는 ‘웨이팅’ 행렬까지 등장했다. 가게 앞에 마련된 의자가 모자라 서서 기다리는 손님들은 메뉴판을 들고 미리 주문을 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만난 김은지씨(여·29)는 “종로에 오면 맛집도 많아서 고민하지 않고 오는 편이다. 예전에는 이쪽으로 오려고 하지 않았는데, 지난 몇 년간 가장 번화한 거리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봉리단길의 상황과 반대로 종로는 떠오르는 먹거리 골목이 됐다. 19세기 말 화교들이 하나둘 정착하면서 형성된 이 거리에는 1970년대까지 중국풍 상점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후 화교들이 다른 곳으로 이주하면서 종로는 가구, 도자기 등 전통문화거리로 변모했다. 종로가 활기를 되찾기 시작은 것은 2010년대쯤. 대구시가 자랑하는 관광자원인 근대골목의 한 코스로 종로가 포함되면서부터다. 대구시와 중구청은 진골목, 화교협회와 인접해 있다는 이점을 활용해 거리에 조형물을 설치하는 등 분위기를 바꿨다. 특색있는 술집, 음식점이 하나둘 들어섰고 낮에는 전통문화거리로, 밤이면 붐비는 번화가가 됐다. 중구청은 먹거리 골목 활성화 사업의 하나로 ‘종로 먹거리 축제’를 지원했고, 올해로 13회째를 맞은 ‘대구화교중화문화축제’에도 꾸준히 관광객을 끌고 있다. 또 지난 5월에는 ‘골목경제권 조성사업’에 시범 대상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김선진 종로맛집상가번영회 회장은 “종로가 많은 발전을 이루고 있다"면서 “추진 중인 골목경제권 조성사업을 통해 중장기적으로 더 발전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사람들이 계속 찾고 싶은 먹거리 골목을 만들기 위해 다같이 노력하겠다"고 했다.

이처럼 골목이 흥하고 망하는 것은 단순히 시대의 트렌드로만 판단하기 어렵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다만 거리 활성화에는 해당지역 내의 상생이 그 무엇보다 중요한 만큼 이 부분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임현철 대구가톨릭대 교수(외식산업과)는 “상권이 흥하고 쇠퇴하는 원인을 하나로 단정짓기는 힘들다. 다만 종로는 위치가 중심가인 반월당과 인접해 있고 관에서 추진하는 여러 사업이 시너지 효과를 낸 것으로 보인다. 봉리단길의 경우 김광석길이 뜨면서 함께 성장한 거리인데 가파른 성장세가 꺾이는 데다, 재개발 영향도 받은 것으로 생각된다"고 분석했다.

이어 임 교수는 “거리를 다시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행정기관의 지원도 형식적으로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상생하는 자세가 요구된다. 나름의 사정은 있겠지만 건물주 등은 힘든 기간 임대료 상승은 배려해주면 좋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정우태기자 wtae@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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