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서 우리 지켜준 얇은 문풍지처럼…작은 것에도 소중한 가치”

  • 글·사진=양은주 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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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12-04   |  발행일 2019-12-04 제16면   |  수정 2019-12-04
은광스님의 청도 운문사 이야기
“일연선사 삼국유사 집필지로 유명
170여명 비구니 경전공부에 매진
모두 대들보 역할 하려 하면 안돼
일상 소소한 것들도 세상엔 중요”
“태풍서 우리 지켜준 얇은 문풍지처럼…작은 것에도 소중한 가치”
은행나무 잎이 곱게 물들어 아름다운 산사 풍경을 연출하고 있는 운문사. 작은 사진은 승가대학 교수 은광스님.

늦가을, 은행나무를 촬영하고 싶다는 마음에 지인과 함께 찾아간 청도 운문사(雲門寺).

거의 30년 만에 다시 찾은 절이지만, 자주 와 본 곳처럼 절 입구의 소나무 숲은 좋은 기운을 반갑게 뿜어내 주는 듯했고 절 마당은 엄마 품처럼 편안하고 따뜻한 느낌을 주었다.

절에 들어서자 공양을 마칠 때가 됐으니 식사부터 하라는 스님 말씀에 목례만 나눈 채 점심을 먹고, 운문사의 다실(茶室)을 찾았다. 농기구 등을 보관하던 창고를 최근 리모델링해 만든 다실은 한 벽면을 가득 채운 통유리를 통해 운문사의 뒷산이 보이고 계곡의 물 흐르는 소리까지 잔잔히 들리는 정갈한 분위기였다. 그곳에서 따뜻한 차 한잔과 마주앉은 운문사 승가대학 교수인 은광 스님<사진>은 조금 전 식사를 챙겨주시던 분이다.

“스님, 이렇게 표현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참 곱고 단아하십니다”라는 조심스러운 첫인사에 스님은 환하게 웃었다. 운문사 이야기를 들려 달라는 부탁에 “뭐 특별할 것이 있겠습니까. 사람 사는 거 다 비슷비슷하지요”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은광 스님은 “운문사는 신라 시대에 지어졌고, 1277년 일연 선사가 이곳에 머물면서 삼국유사를 집필했던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1954년 이후 불교 정화 운동으로 대처승이 물러나고 비구니가 수행하는 현재의 비구니 도량으로 변모하였습니다. 근대 한국 불교사 최초 비구니 전문 강원인 이곳에서 저는 승가 교육을 맡고 있습니다”라고 했다.

은광 스님은 “시대가 변하면서 스님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현실입니다만, 이곳에는 170여 분의 비구스님들이 함께 생활하고 계십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하루 대부분 경전 공부에 매진합니다. 예전에는 우리가 먹을 농사일도 함께 하곤 했으나, 지금은 인력이 충분치 않아서 봉사자들의 도움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큰 태풍이 있었던 밤입니다. 한 방에서 함께 잠을 자려고 누워있던 우리들은 밖에서 휘몰아치는 거센 비바람에 이구동성으로 ‘저 문풍지가 없었으면 우린 지금 어쩌고 있을까’라며 서로를 지켜주었습니다. 그때 또 깨달았지요. 아, 얇다고 얕보지 말자. 단단한 벽돌과 굵은 대들보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세상 모두 벽돌이 되고 대들보만 되려고 한다면 어떻게 돌아가겠는가? 중요하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고, 가치 없는 건 하나도 없습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은 그 존재가치가 반드시 있고,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라고 했다.

은광 스님 이야기를 들으며 그동안 잊고 살아왔던 소소한 일상의 소중한 것들에 대한 깨우침과 뉘우침이 교차했다.

은광 스님은 “염색을 해 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자신이 원하는 고운 빛깔로 색을 내려고 한다면, 본래 가지고 있던 색깔을 먼저 온전히 빼내야 합니다. 그 다음에 다시 채울 수 있습니다. 비우지 않으면 채울 수 없습니다. 채우려고 할수록 빼내야 합니다. 내 안의 것을 빼내면 마음이 가벼워지고 상대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고, 비로소 배려가 나옵니다. 이것은 절대 쉽지 않기 때문에 끊임없이 자기 노력이 필요합니다. 저희도 그런 과정에 있는 사람들입니다”라고 했다.

다실을 나와 스님과 함께 유명한 운문사 은행나무를 둘러보고 곳곳에 있는 보물들로 이야기꽃을 피웠다.

운문사에는 대웅보전(보물 제835호)과 삼층석탑(보물 제678호) 등 8개의 보물과 천연기념물 제180호인 500살 된 처진소나무도 자랑거리이며, 다수의 경전과 목판들이 소장돼 있다고 한다.

늦가을 운치를 만끽하며 “이 세상 모든 것은 소중한 가치가 있는 존재들입니다”라는 스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운문사를 나오는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졌음을 느꼈다.

글·사진=양은주 시민기자 yej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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