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딜리저트' 오너셰프 이기훈...대구 버전 '홍콩 와플' 달콤한 유혹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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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2-07   |  발행일 2020-02-07 제41면   |  수정 2021-07-06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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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거리에서 유행하는 토핑 없는 플레인 와플에 커스터드크림류를 토핑으로 올려 대구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홍콩와플'.
대구 중구 삼덕교회 옆 골목 초입에 자리 잡고 있는 디저트 전문카페 '딜리저트(Delissert)'. 딜리저트는 '맛있는 디저트'란 의미. 평일 오후인데도 젊은 단골이 줄을 잇는다. 두 사내가 주방과 홀서빙을 공유하고 있다. 모두 훈남 스타일. 오너셰프 이기훈(35). 그의 눈망울에서 훈훈한 기운이 스며 나온다. 패션모델, 아니 영화배우를 해도 괜찮을 것 같다. 어떤 고강도 일이라도 다 커버할 것 같은 체격을 갖고 있다.

실내의 주조색은 아이보리, 벽 한 편에 20여 종의 메뉴를 부착해 놓았다. 왼쪽은 길쭉한 테이블, 맞은편에는 다른 손님끼리 합석할 수 있게 셰어테이블을 놓았다. 손님 10명 중 9명은 여성이다. 요즘 여성들은 정말 달달한 걸 좋아하는 모양이다. 원형의 맛보다는 변형의 맛에 더 길들어 있는 것 같다. 여성들은 텔레토비처럼 수시로 깔깔대며 웃는다. 그 웃음 때문에 카페는 더욱 화기애애하다. 웃음과 웃음 사이, 조금이라도 무료할 것 같으면 자기 일상을 일일이 휴대폰으로 찍어 다른 이들과 공유하길 좋아한다. 맛보다는 사진 찍는 게 더 소중한 것처럼 보인다.

그 광경을 물끄러미 보고 있던 이 사장. 인터뷰 중간중간 주문받은 메뉴를 주방에 들어가서 부리나케 만들어주고 다시 인터뷰 자리로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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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과 호주 워킹홀리데이의 경험을 통해 신개념 디저트 카페의 신지평을 열고자 대구 중구 삼덕교회 옆 골목에서 '딜리저트'란 카페를 연 이기훈 오너셰프.
◆워킹홀리데이에서 셰프본능 길러

대구 출신인 그는 계성고 졸업 후 영남대 화학공학과에 들어간다. 아르바이트에 의존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만만한 게 식당이었다. 하지만 요리에 대한 기본기를 쌓기 위해 요리학원에 가서 자격증 공부부터 하지 않았다. 언젠가부터 요리학원은 요리사를 위한 관문이라기보다 그냥 자격증을 따기 위한 통과의례로 전락한 것도 사실이다. 학비를 스스로 챙겨야 하는 나날이었다.

생애 첫 아르바이트를 위해 패밀리 레스토랑인 티지아이프라이데이(TGI FRIDAY)에 들어간다. 그가 거기서 가장 놀란 건 완벽에 가까운 운영시스템이었다. 요리의 '요' 자를 몰랐지만 그 시스템 덕분에 주방 멤버로 현장에 바로 투입될 수 있었다. 매뉴얼대로 하면 메뉴가 완성됐다. 조리라기보다 '조립'이랄 수 있었다. 튀김을 할 때도 타이머 시간만 준수하면 됐다.


유명 패밀리 레스토랑·지역 커피 브랜드 아르바이트
英 연수하며 본 당당하고 문화적 일상 카페에 녹아
디저트 천국 홍콩, 서민 입맛 최적화된 스타일 경험
대구 돌아와 벤치마킹…현지 방식 만으로는 한계
육각형 와플 둥글게 말고 커스터드크림 토핑 올려
SNS 인스타 감성 아이보리 색감 아늑한 인테리어
홍콩스럽게 치장한 요거트케이크·빙수도 인기 메뉴



"손님 응대하는 법을 배웠어요. 주문받을 때 '퍼피독' 자세를 취해야 했어요. 무릎 꿇고 눈높이를 맞춰 주문을 챙기는 거죠. 서빙할 때 목소리 톤까지 지정해줬어요. 음성은 너무 낮아도 너무 높아도 안 됩니다. 솔(G) 음정을 유지해야 됩니다. 기존 목소리 톤보다 더 맑아지자 손님의 반응도 달라지더군요."

그는 베이커리커피숍, 2000년부터 본격화되는 디저트 카페 투썸플레이스의 동향을 보면서 영국 런던으로 7개월간 어학연수를 떠난다. 캐나다워터라는 곳에 짐을 풀었다. 그는 거기서 영국의 퍼브(Pub) 문화가 한국의 카페 문화와 상당히 다르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유럽 사람들의 일상은 참 당당하고 문화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문화적인 것 같은데 사실은 소비적이고, 뭐랄까. 아직 트라우마에 휘둘려 뭔가 폼을 잡는 것 같았어요. 티내기 문화랄 수 있죠. 허영과 허세 같은 욕망이 국내 카페문화에 잔뜩 묻어 있었는데 유럽에선 그런 게 거의 감지되지 않았습니다."

다시 호주 시드니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난다. 데이비드존슨 백화점 내 한 스시바에 들어간다. 영어를 공부할 수 있는 여건이 안돼 다시 피시앤칩스 전문점인 '시카우(Seacow)'에 들어간다. 거기서 숱한 생선을 튀겨냈다. 하루에 아르바이트 두 개를 뛰었다. 낮에는 브런치 카페인 '카페카페', 밤엔 시카우에서 일했다.

"여기 사람들은 곁눈질을 하지 않고 외적인 멋보다 내면의 여유로움이 충실했어요."

그는 빡빡한 나날이었지만 진정한 자유를 느끼기 위해 시드니에서 동쪽 해안을 타고 케언스까지 훑었다. "보여주기 위해 사는 게 아니라 영혼적으로 자유로운 상태에 도달하기 위해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을 선택하는 게 소중하다고 느꼈어요. 국내에선 느낄 수 없는 마이웨이에 대한 성찰의 시간이 됐어요."

◆나만의 디저트 공부

귀국한 뒤 구미의 한 배터리 공장 품질관리팀에 입사를 한다. 하지만 호주에서 만끽했던 그 자유로움 탓인지 그는 회사생활에 제대로 적응을 하지 못한다. 미래가 불투명해 보였다. 1년6개월 정도 일하다가 퇴사를 한다. 그 순간 오너셰프에 대한 욕망이 그의 전신을 사로잡는다. '일단 저질러 보자'고 독백했다.

다시 홍콩으로 갔다. 호주 생활 중 만난 친구(윌슨)가 운영하는 괜찮은 디저트 카페 '히쉬잇(He she eat)'에서 자기 삶의 향배를 결정짓는 일을 배우게 된다. 홍콩은 디저트 천국이었다. 당시 국내 디저트 문화는 걸음마 수준이었다. 그 가게는 홍콩 현지 서민의 입맛에 최적화된 프렌치 스타일의 디저트 하우스였다. 그는 페이스트리 파트를 맡았다.

"유럽도 케이크 문화가 강할 것 같은데 아닙니다. 케이크류는 일본이 강하죠. 유럽은 의외로 쿠키류가 강해요. 그리고 빵은 디저트류에 포함되지 않죠. 미국은 베이글류가 강합니다." 거기는 크레페, 와플, 파나코타, 퐁당쇼콜라, 몽블랑, 수플레 등 플레이팅 디저트가 주종이었다.

그는 이미 디저트 카페로 결심한 상태. 그래서 홍콩에서 대충 배워 귀국할 수는 없었다. 배수진을 쳤다. 하루 15시간 이상 공부를 했다. 더 일찍 나오고 더 늦게 퇴근했다. 친구가 그의 성실함에 반해 매니저 자리를 준다. 그의 닉네임은 'LK'였다. 경영, 재고관리, 요리 등을 동시에 핸들링했다. 음식과 문화가 매출과 어떻게 연결되는가를 관찰했다.

해외 현지의 디저트 문화는 우리와 많이 달랐다. 우리는 커피를 마실 때 당연히 빵 등 디저트를 먹지만 현지는 그렇지 않았다. 빵은 빵, 디저트는 디저트로 따로 놀았다. 식사를 하고 나면 얌차 등 필수적으로 디저트를 먹었다.

"우리는 케이크 하나 시켜놓고 여럿이 포크 질을 하면서 나눠먹지만 현지는 그렇지 않아요. 개인별로 하나씩 따로 주문하는 게 예의입니다. 얼마나 디저트를 좋아하는지 자정 무렵에도 가게로 들어오는 단골이 있어요. 그래서 새벽 2시에 문을 닫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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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뉴 벽면 아래 테이블에 깔린 '딜리저트' 내 여러 종류의 디저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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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디저트'란 의미를 담고 있는 중국말 '메이메이 더 티엔 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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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 대나무 찜기를 용기로 사용한 '요거트케이크'.
◆청운의 꿈 품고 대구로 귀향

2014년 겨울, 청운의 꿈을 품고 대구로 왔다. 중앙도서관 근처에 있는 태국요리 전문점 '하이타이'에서 잠시 일을 하다가 현재 카페를 오픈한다. 하이타이 성주형 사장은 친구이면서 호주 워킹홀리데이 도반이기도 하다. 거기서는 영어가 자연스럽게 소통돼 외국인들이 많이 찾았다.

2015년 8월 딜리저트가 문을 연다. 기존 예단집을 리모델링 해서 오픈했는데, 장사가 너무 안됐다. 홍콩에서 익힌 7가지 메뉴를 벤치마킹하듯 깔았는데 도무지 반응이 오지 않았다.

"생각해 보니 저는 그동안 디저트만 알았지 식당 경영의 본질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었어요. 홍콩에는 맞아도 대구에는 절대 안 맞을 수 있다는 걸 생각하지 못했어요. 정말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했어요."

원점에서 다시 시작했다. 장사가 뭔지 새로 탐색해야만 했다. 2년간 장사는 최악이었다. 적자가 억대로 폭증했다. 그때 주변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세상은 바야흐로 SNS 마케팅이 외식업계를 쥐락펴락하고 있었다. 포토존 거리, 인스타 감성이 뭔가를 깨달았다. 처음 실내 주조색은 검정이었다. 그건 당시 정서에 반했다. 재즈바 같은 남성 이미지를 활성화했던 건데 대다수에게 먹혀들지 않았다. 혼자 좋다는 분위기였다. 다시 블랙을 지웠다. 현재의 밝은 톤으로 오기 위해 두 번 인테리어를 수정한다. 커튼, 스탠드, 아늑한 조도 등을 찾았다.

메뉴도 꽤 수정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게 지금 인기 절정인 홍콩와플, 요거트케이크, 홍콩빙수 등이다. 홍콩와플은 홍콩 현지 스타일을 변형시킨 것이다. 홍콩 거리의 와플은 토핑이 없다. 프레시 와플에 덧칠을 해서 대구버전으로 개조했다. 기존 프렌치스타일을 대구 정서를 반영시켜 다시 홍콩스타일로 했다. 육각형 와플을 둥글게 말았다. 그리고 노랑색깔의 커스터드크림을 토핑으로 올렸다.

요거트케이크도 홍콩스럽게 치장했다. 둥그런 로션통 같은 미니 대나무만두찜기에 담아서 내주는데 하루 전에 미리 만들어 냉장보관했다가 주문과 함께 내준다. 초창기에는 자기 용기에 담아줬는데 지금 것으로 교체를 한다. 홍콩와플은 1만3천원. 요거트케이크는 7천원, 홍콩빙수는 1만원. 이밖에 바닐라라테, 홍콩밀크티 등은 병에 담아 내준다. 삼덕동 매주 화요일 휴무. 송현점, 영남대점은 휴무 없음. 중구 공평로 26-9 1층 (053)218-1393

글·사진=이춘호 전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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