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뇌연구원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극복 가능성 열었다

  • 노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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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2-11  |  수정 2020-02-11 07:48  |  발행일 2020-02-11 제20면
■ 구자욱·이석원 박사 연구팀

공포기억 관여 뇌영역 세계 첫 규명

국제학술지 '분자 뇌' 2월호에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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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초로 대뇌 후두정 피질이 새로운 환경에서 공포기억을 떠올리게 하는데 관여한다는 것을 밝혀낸 구자욱 책임연구원, 주빛나 학생연구원, 이석원 선임연구원(왼쪽부터)이 환하게 웃고 있다. 이들은 이런 연구결과를 통해 각종 재난 등 대형 사고를 겪은 이들의 외상후스트레스 치료에 도움이 되길 기대하고 있다. 〈한국뇌연구원 제공〉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렸다. 대뇌 후두정피질이 새로운 환경에서 공포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데 관여한다는 것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대형 사고를 겪은 이들이 겪는 외상 후 스트레스 극복 가능성도 그만큼 높아진 것이다.

◆공포기억 재발, 후두정피질이 관여

한국뇌연구원은 10일 구자욱·이석원 박사 연구팀이 새로운 환경에서의 공포기억 재발에 대뇌 후두정피질이 관여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고 공개했다. 이렇게 또 다른 장소에서의 공포기억이 재발하는 데 후두정피질이 관여한다는 사실을 밝혀낸 것은 한국뇌연구원 연구팀이 세계 최초다. 후두정피질은 뇌의 뒤쪽 정수리에 있는 두정엽의 일부로, 공간적 추론이나 의사결정 판단 등 고위뇌인지 기능에 관여한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는 심각한 사고, 폭력 등을 경험한 이후에도 반복적인 고통을 느끼는 증상이다. 환자들은 처음 사건발생 장소와 비슷한 곳에만 가더라도 트라우마가 재발하기 때문에 만성적인 고통을 겪게 된다.

세월호 참사, 대구 지하철 화재 등 국가적 재난을 겪은 생존자들이 새로운 배를 타지 못하거나 다른 지역의 지하철조차 타기를 꺼리게 되는 것 등이 그 예이다.

한국뇌연구원에 따르면, 청각 공포조건화 기억은 소리(조건 자극)와 전기충격(무조건 자극)을 함께 경험하도록 해 소리에 대한 공포를 형성시키는 연구방법이다. 또 학습을 통해 형성된 청각 공포기억은 기억 소거 훈련을 통해 약화 또는 제거시킬 수 있다. 문제는 기억 소거 훈련을 받은 뒤에도 처음에 공포기억이 형성된 장소나 이전에 경험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장소에서 소리(조건 자극)를 들으면 공포기억이 되살아나는 현상(공포기억 재발)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새로운 장소에 대한 공포는 제어

연구팀은 실험용 쥐에게 특정 소리를 들려준 뒤 전기충격을 함께 줌으로써 청각공포기억을 형성한 후, 새로운 환경에서도 같은 소리를 들려주는 방식으로 실험을 진행했다. 즉 외상후 스트레스가 생길 상황을 만들어 준 뒤 환경을 바꿔 그 기억에 반응하는지를 확인한 것.

이번 연구에서의 공포기억은 청각자극과 전기충격을 동시에 줌으로써 생성된 연합기억으로, 종소리를 들려주며 음식을 같이 주었던 '파블로프의 개'와 같은 조건화학습 기억이다. 그 결과, 아무런 처리를 하지 않은 쥐는 두 장소 모두에서 똑같은 공포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약물을 처리하거나 빛을 쬐어 후두정피질의 활성을 억제한 쥐는 새로운 환경에서 공포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이런 과정을 거쳐 낯선 환경에서 공포기억이 재발하는 데에는 후두정피질의 활성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구자욱·이석원 박사 연구팀이 밝혀낸 것이다. 이는 지각·생각·기억 등 고등 인지기능을 수행하는 대뇌피질 중에서도 후두정피질 영역이 공간추론 및 판단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연구팀은 설명했다. 단 처음 공포기억이 형성되었던 장소에서의 공포기억 재발과 일반적인 기억 발현 등은 억제할 수 없었다.

한국뇌연구원 구자욱·이석원 박사는 "그동안 충분히 밝혀지지 않았던 후두정피질의 역할을 새롭게 규명했다"며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나 공포증(phobia) 환자의 치료가 어려운 이유 중 한 가지가 공포기억의 재발이었다. 그런 만큼 이번 연구에서 밝힌 후두정피질의 역할에 대한 연구가 이러한 공포기억 재발을 억제하는 약물 또는 기술 개발에 있어서 기초 데이터로 활용, 치료전략을 개발하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 연구결과는 국제 학술지 'Molecular Brain' 2월호에 게재됐다.

한편, 한국뇌연구원은 2016년 대뇌피질융합사업연구단을 발족해 대뇌 후두정피질 연구에 본격적으로 착수했다. 사회성 및 인지행동과 관련된 동물모델 연구를 지속, 2026년까지 후두정피질 중심의 '행동~활성 뇌지도'를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노인호기자 sun@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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