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사진으로 만든 세계

  • 이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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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2-19 07:55  |  수정 2020-02-19 08:00  |  발행일 2020-02-19 제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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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그램 속 세상은 아름답다. 초록빛 조명이 신비로운 풀빌라 속 칵테일 파티, 산딸기 마들렌과 다쿠아즈가 먹음직스러운 브런치 카페, 멋진 옷을 차려입고 걷는 파리의 샹젤리제. 네모 반듯한 사진은 늘 밝고 따뜻한 이미지들로 채워져 있다. 그것들은 세상을 잘 정돈된 모델 하우스처럼 보이게 만든다. 내가 살고 있는 세계가 응당 그래야 할 것처럼. 나도 그 단정한 세계에 속해야 할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은가. 신문과 책에서 '청년'들은 언제나 절망이나 우울 같은 키워드로 설명된다. 청년 담론은 그들이 높은 실업률과 낮은 월급으로 힘겨워하며, 연애와 결혼을 포기한 채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SNS 속 청년들은 이상할 만큼 행복하다. 해외여행을 다니고, 예쁜 소품을 고르며, 파인다이닝을 즐긴다. 왁자지껄한 모임 사진에 서로를 태그하는 모습들을 보면 무미건조한 인생을 사는 것은 나뿐인가 싶다.

그런 와중에 한 책이 눈길을 잡아끌었다.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라는 제목의 신간 도서다. 젊은 평론가가 쓴 이 책은 SNS의 '상향평준화된 이미지'에 대해 고찰하고 있다. 소비와 문화의 정점에 있는 인플루언서들이 화려한 이미지를 제공하고, 그들에게서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이를 재생산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미지와 자신을 동일시하며 그것을 좇는다. 하지만 사실 사진 속 모습들은 연출된 한 순간에 불과하다. 저자는 현실과 이미지의 간극이 청년세대의 절망을 더 극적으로 만든다고 말한다.

개인적으로 나는 SNS를 즐기지 않는 편이다. 시시콜콜한 일상을 노출하기 싫어하는 성격 때문이기도 하지만, 남들과 공유할 만큼 흥미로운 삶을 살고 있지 않기도 하다. 글 쓰는 사람 특유의 밤낮이 바뀐 생활, 밀린 원고, 편집자 외에는 연락을 받지 않아 점점 좁아지는 인간관계 속에서 무슨 SNS 소재가 있겠는가. 하지만 이런 나도 여행지에서는 '인스타 맛집'을 찾는다. 취향에 맞고 편한 곳보다 프레임 속에서 빛나는 곳, 해시태그하기 좋은 곳을 고른다.

예쁜 사진을 공유하는 게 나쁘지만은 않다. 남들도 덩달아 우울해지는 이야기보다 긍정적인 기운이 담긴 콘텐츠가 아무래도 나을 것 같다. 또 요즘 같은 '셀프 셀링' 시대에 자기 전시는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일에서 내가 주체가 되고 있는지는 한 번쯤 생각해볼 필요가 있겠다. 이미지의 노예가 될 수는 없으니까.

김세연<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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