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라인: 밤의 일기....엘리트 출신 노동자가 공장서 피워낸 '서사시'

  • 노진실
  • |
  • 입력 2020-02-22   |  발행일 2020-02-22 제16면   |  수정 2020-02-22
마흔에 데뷔한 佛작가의 자전적 소설
매일 고단한 육체노동의 반복 속에서
'자신을 잃지 않으려'詩처럼 써내려가

AS6A2118
최근 자전적 소설 '라인: 밤의 일기'를 선보여 주목받은 프랑스의 작가 조제프 퐁튀스. 〈Gwenael Saliou 제공〉
라인_표1B
조제프 퐁튀스 지음/ 장소미 옮김/ 엘리/ 352쪽/ 1만5천500원

"전 세계의 노동자들에게, 그들과 함께 내가 많이도 배우고 웃고 고통받고 일했던 '문맹자들'과 '가난뱅이'들에게, 그의 노래가 없었다면 내가 도저히 버티지 못했을 샤를 트레네(프랑스의 가수)에게 이 책을 바친다."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노동'은 숙명이다. 어떤 직업을 가지든 간에 인간은 자신의 노동력과 시간을 고용주(혹은 소비자)에게 상당수 제공하고 돈을 번다.

직업에 귀천이 있겠냐마는, '좋은 노동' '나쁜 노동'의 환경은 분명 갈린다. 어쩌다 후자 쪽에 속하게 되면, 노동자는 한낱 부속품처럼 취급받다가 최소한의 존엄마저 잃을 위기에 처하게 된다. 때로는 단순 직업을 반복하다 '내가 기계인지, 기계가 나인지' 헷갈리는 상황이 오기도 한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인간의 그런 서글픔이 눈부신 문학으로 재탄생하기도 한다.

'라인: 밤의 일기'는 마흔 살에 데뷔한 프랑스의 작가 조제프 퐁튀스의 첫 소설이다. 그는 2019년 이 소설로 여러 상을 수상하며 많은 프랑스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제목 '라인'은 공장의 '생산 라인'을 연상케 한다. 소설은 프랑스 파리 외곽에서 특수지도사로 일하다가 사랑하는 이를 위해 프랑스의 북서쪽 끝단에 위치한 브르타뉴로 옮겨가, 수산물 가공식품 공장과 도축장에서 임시직 노동자로 일하게 된 작가의 자전적인 이야기이다. 스무 살의 작가는 고등사범학교 준비반이었지만, 마흔 살의 그는 브르타뉴 공장들의 임시직 노동자로 고용된다. 인생은 우연과 선택의 결과물이니 그렇게 특별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아무리 마르크스를 읽었어도, 자본주의를 그렇게 온몸으로 느낄 수는 없었다"는 작가의 회고처럼, 처음 그가 마주한 공장 환경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비인간적'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 속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닫고, 이를 글로 옮긴다.

이 책은 그가 공장에서 밤낮으로 녹초가 되는 고단한 육체 노동을 반복하면서,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해' 기록한 일종의 공장 일지이자 서사시라고 할 수 있다.

책의 가장 큰 특징은 '시처럼 쓴 소설'이라는 점이다. 마침표 없이 쏟아진 문장들은 반복되는 공장의 노동을 은유한 것일까. 그러나 짧은 문장들 속에 깊은 이야기와 경험, 세월이 담겨 있다.

"시간은 의미 없다/ 무조건 너무 일찍일 테니까/ 시체처럼 잠이 들었다가/ 자명종 소리에 깨어나 담배 몇 개비와 커피를 삼키고/ 공장으로/ 작업이 다짜고짜 시작된다/ 밤의 세계에 준비 따위는 필요 없다는 듯"

"내일은/ 고용이 불확실하다/ 나는 임시직 노동자이므로/ 계약서엔 최대/ 일주일에 이틀의 근무가 보장되어 있다/… 19세기 영웅적인 노동자들의 시대에 대해 쓰고 싶지만/ 지금은 21세기/ 나는 고용되기를 희망한다/ 나는 작업 종료를 기다린다/ 나는 고용을 기다린다/ 나는 희망한다" 생계를 위한 육체노동이 삶의 절대적 부분이 된 작가의 상황을 쓴 문장이다.

"빨간 안전모 하나가 지나가다가/ 내게 토요일에 일할 수 있는지 묻는다/ 토요일 오전 근무는 결코 의무는 아니지만/ 한 시간만 일해도/ 세 시간의 추가 근무 수당을 받는다/ 나는 할 수 있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고통이 예약된 주말과 함께/ 남은 두 시간이 더욱 길게 느껴진다" 이처럼 노동자들은 때론 돈 때문에 귀한 주말을 반납하기도 한다.

동료 노동자가 먹고 있는 '사탕' 하나의 의미도 남다르게 표현된다.

"존경심만큼이나 두려움과 함께 발음되는 이름의 소유자(공장에서 가장 높은 사람)/ 그의 사무실 책상의 바구니엔 늘 아를르캥 사탕이 있고/ 그에게 불려가는 직원은 이 사탕을 먹을 수 있다"

"아마 몸치장에 신경 쓰는 동료들에겐/ 그것이 존엄성이나 어떤 품위의 문제이리라 짐작해본다/ 도살장에 깨끗한 상태로 좋은 향을 풍기며 도착하는 것/ 그곳에서 하게 될 일에 상관없이 말이다" 씁쓸함을 남기는 문장이다.

"진짜 삶은 이 일이 끝날 때 시작될 것이다/ 공장은 더 나은 것을 찾기를 기다리는/ 중간 단계라고 믿고 싶다/ 비록 아무것도 찾지 못한지/ 일 년 반이 되었지만/ 나는 믿고 싶다/ 나는 이곳에 없으면서 있는 것이라고" 많은 노동자들이 공감할 문장일 것이다.

우리는 '노동'과 함께 살아가면서도 그 노동에 대해 철학적인 생각들을 크게 하지 않는 것 같다. 피·땀·눈물의 대가로 우리는 무엇을 얻고, 또 무엇을 잃는 것일까.

노동이 인간의 '굴레'라면, 그 노동을 무언가로 이해하고 위안해줘야 하지 않을까. 이 소설은 그런 점에서 의미와 가치가 있어 보인다.

작가가 한 인터뷰에서 말했다. "이 책은 정치적 논의에서 완전히 배제됐고, 계급으로서도 부정된 노동자 계급에게, 묵묵히 일하는 숭고한 이들에게 바치는 사랑의 찬가입니다."

책은 가려진 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위한 한 곡의 비가(悲歌)다.

노진실기자 know@yeongnam.com

문화인기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