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학의 박물관에서 무릎을 치다] 아산 '온양민속박물관' 서울 '쉼박물관'

  • 임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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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2-21   |  발행일 2020-02-21 제38면   |  수정 2020-02-21
꽃상여 타고 편히 쉬러 가는길
'아름다운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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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박물관에 전시돼 있는 한국상례를 대표하는 유물 상여(喪輿).
온양민속박물관_구정아트센터
온양민속박물관에 전시된 꼭두극에 등장하는 꼭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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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반집을 훤히 들여다 보는듯한 온양민속박물관 전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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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석을 모아둔 온양민속박물관 야외전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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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박물관에 전시된 꼭두들의 행렬을 보여주는 '화려한 외출'.
쉼박물관_05
윤열수 한국박물관협회장이 쉼박물관에 기증한 30여년간 모은 부고(訃告).

삶이나 죽음을 소재로 박물관을 꾸리는 일이 쉽지 않겠지만, 삶과 죽음이 다르지 않다는 생각에 이르면 의외로 술술 풀릴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또 사람의 한 생(生)을 생로병사, 관혼상제로 나눠서 생각하면 그 누구라도 삶이 착착 정리되는 느낌이 들 것이다. 삶을 일궈낸 여러 흔적들이 모여 눈부신 희망을 만들고, 그 희망 끝에 매달린 어두운 죽음을 거두면 삶이란 다시 이어지는 것 아닌가.

한국인 살림살이 보여주는 '온양민속박물관'
오방색 배경 유물이 품은 많은 이야깃거리
계몽사 김원대 회장 설립, 2만2천여점 소장
아이들이 전통 가치 체험하며 일깨울 기회
한국인의 삶, 일터, 공예·민속 등 문화 전시
삶의 끝 죽음서 다시 삶으로 이어지는 발견



박물관 중에서도 민속박물관은 얼핏 생각하면 수집이나 전시, 운영이 가장 쉬운 듯 여겨지면서도 가장 존재감을 드러내기 어려운 곳이다. 사람의 전 생애와 같이 흘러온 역사와 문화를 죄다 설명해 내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인의 살림살이를 제대로 보여주는 박물관으로 이름난 그곳, 충남 아산의 점잖은 '온양민속박물관'을 찾아간다.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우리를 맞아주는 입구의 문인석이 조선후기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1978년 10월, 박물관법 제정을 앞두고 문을 연 온양민속박물관은 국내 민간 박물관 설립의 청신호였다. 당시로는 국가시설과 비견되는 큰 규모였다. 아동도서출판사 계몽사 창업주인 설립자 고(故)김원대는 전국의 학생들에게 전통문화의 높은 가치를 눈으로 확인시키겠다는 뜻을 품고 이 박물관을 세웠고, 아산 현충사로 수학여행을 온 아이들이 구름같이 몰려들었다. 건축가 김석철은 권위적인 인상을 주지 않기 위해 외관을 벽돌로 만들었고, 아산의 흙으로 구운 벽돌의 쌓는 방식과 색채는 공주 송산리에 있는 무령왕릉 내부를 모티브로 조성했다.

거개의 박물관들이 잘 알면서도 실천하지 못하는 그것을 이 박물관은 실현해냈다. 건물을 짓고 유물을 들인 게 아니라, 전시 콘셉트를 반영해서 박물관을 설계한 것이다. 부엌과 안방, 사랑방과 대청이 이어지는 한옥도, 실제 고기잡이를 하던 배도, 큰 덩치의 나락 뒤주도 실감 난다. 오방색을 배경 삼아 전시된 유물마다 이야기 거리가 넘쳐날 듯 보인다. 주제와 순서를 어지럽히지 않으면서도 정기적으로 새로운 전시를 선보이는 방식은 '한국인의 삶'을 늘 새롭게 생각하게 만든다. 올해로 설립 42주년. 선대의 뜻을 받들어 온 김은경 관장과 많은 이의 수고로움이 2만2천여 점의 유물을 소장한 6만㎡의 박물관 구석구석에 스며 있다.

제1전시실 '한국인의 삶', 제2전시실 '한국인의 일터'를 거쳐 3전시실에서는 각종 공예, 민속 신앙과 놀이, 학술 등 '한국문화와 제도'로 생활의 반경을 넓힌다. 교과서로 배운 '규중칠우쟁론기'를 반짇고리, 바늘, 골무 등과 함께 보니 더욱 실감이 나는 식이다. 드넓은 정원 곳곳에서는 다양한 표정의 석조유물과 장승, 연자방아, 디딜방아, 기름틀까지 만난다. 그리고 옛 건축물들도 볼 수 있다. 본관과 조화를 이루는 구정아트센터도 놓쳐서는 안 될 볼거리다.

블로그 '온양민속박물관이야기(historylibrary.net)' 방문을 권한다. 여송은 학예사가 젊은 감각으로 조근조근 전해주는 온양민속박물관의 깨알 같은 정보다. '온양민속박물관이 가야할 길'에서부터 '유형별 전시관람법 해설'까지 57개의 글을 보면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특히 '줄줄이 유물 이야기'는 강한 중독성을 갖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온양민속박물관의 설립 이야기를 담은 2009년 영상다큐멘터리 '하늘에 間(간) 박물관' 이야기를 만났다. 유물을 찾으러 간 박물관 사람들이 '죽은 자와 어떻게 함께 기억을 나눌까 고민하며 물건들을 가져 왔다'고 얘기한 것을 다큐멘터리는 '유물마다 우리가 만나지 못했던 죽은 자의 이야기가 들어 있다'고 표현했다. '박물관이 지닌 죽음을 향한 태도를 강조하고 싶었다'는 연출자의 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한국인의 삶을 가지런히 보여주는 전시장 한 코너에서 그것이 죽음에 닿아 있고, 다시 삶으로 이어지는 걸 보았다. '하늘에 間 박물관' 이야기는 '놀라운 발견'이었다.

한국인의 문화 유전자가 담겨 있는 온양민속박물관을 한마디로 알려주기란 어려운 일이다. 유물의 양이나 전시 규모 때문은 아니다. 직접 느껴 볼 우리의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는 '토종 박물관'이다. 고집스럽게 한국인의 삶, 일, 문화를 보여주는 곳이다. 부족하지도, 넘치지도 않는 안성맞춤 박물관이다. 이 박물관을 찾을 때마다 매번 전시물이 더 늘어난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스스로 한국인임을 잊고 살았다는 슬픈 반증일지도 모른다. 이것이 세대를 넘어 다시 찾게 하는 힘일 지도 모를 일이다. www.onyangmuseum.or.kr

삶과 죽음 깨치는 공간 '쉼박물관'
조상들의 죽음에 대한 철학 엿보는 공간
연꽃·봉황 장식한 경남 진주 부잣집 상여
마지막길 이승서 누리지 못한 행복·기쁨
산 자와 죽은 자 모두를 위로하는 '축제'
'죽음=쉼' 삶을 강한 에너지로 채우는 믿음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면서 죽음이라는 것이 쉼표인지, 마침표인지 궁금했던 적이 있었다. 죽어서 가는 세상이 있다 하니, 피안의 언덕을 바라보며 쉬다 가는 것이 맞을 거란 생각과 기척 없이 계신 걸 보면 그야말로 촛불 꺼지듯 가버렸다는 생각에 마침표와 같을 거란 생각으로 혼란스러웠다.

'아름다운 마침'을 주제로 하는 박물관이 있다. 2007년 10월 개관기념전 '상상 너머'를 열면서 탄생한 서울 홍지동 '쉼박물관'이다. 죽음은 꽃상여 타고 기쁘게 쉬러 가는 것이라는 옛사람들의 철학을 그 이름에 담아 '죽음'을 문화로 보여주는 장례박물관이다. 전통 상여(喪輿)와 혼백을 운반했던 요여(腰輿), 상여를 장식한 각종 꼭두와 용수판 등을 통해 조상들의 죽음에 대한 철학을 엿볼 수 있는 곳이다. 2006년에 남편을 먼저 보내면서 죽음의 다른 면을 본 박기옥 이사장(85)은 솟아오르는 슬픔 한쪽으로 '아, 이 사람이 편히 쉬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는 1년 뒤, 40년 살아온 자신의 집을 박물관으로 열었다. 박물관은 1층(상여 전시실·요여전시실·꼭두 테마 전시실·용수판 전시실)과 2층(날짐승 모양의 상여장식 전시실)으로 구분돼 있다.

상여전시실에는 연꽃, 봉황, 쌍룡 등 각종 장식이 거의 완벽하게 남아 있는 집 모양의 상여가 자리하고 있다. 경남 진주의 어느 부잣집에서 쓰던 거란다. 이승에서 누리지 못했던 행복과 기쁨을 마지막 가는 길에 누리도록 했다. 육신은 산에 묻히지만 그 혼은 집으로 돌아와 빈소에 머문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작은 가마인 요여(腰輿)도 볼 수 있다. 전통 가옥 지붕에 용마루를 달 듯 전통 목상여의 상단 앞뒤에 부착하는 반달 모양의 용머리 장식을 뜻하는 '용수판(龍首板)'은 예술품에 버금간다.

이 박물관서만 볼 수 있는 귀한 유물로는 윤열수 한국박물관협회장이 기증한 부고장 뭉치가 있다. 30여년간 모아진 부고장에는 망자들의 발병 사유 및 사망 날짜들이 기록돼 있다. 근대의 부고 방식을 보여주는 귀한 자료로 평가받는다.

장례를 주제로 한 임권택 감독의 영화 '축제'가 말해주듯, 죽음이라는 것이 그저 엄숙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산 자와 죽은 자 모두를 위로하는 '축제'라는 생각으로, 2대 관장을 맡은 설립자의 딸 남은정 작가와 함께 지금까지 기획해 온 작품전도, 퍼포먼스도 예사롭지 않았고 빠짐없이 각광을 받았다.

사람들은 일상에서 죽음을 연상시키는 것들을 피하지만 박물관에서 죽음을 사유하게 되는 방식은 무엇일까. 삶과 죽음이 둘이 아님을 깨치는 공간. 죽음의 두려움에 사로잡힌 사람을 치유하는 공간에서 '죽음은 쉼'이라는 믿음은 우리의 삶을 더욱 강한 에너지로 채워준다고 믿어졌다. www.shuim.org

◆삶과 죽음…역사를 기억한다는 의미

'오늘은 나에게 내일은 너에게' 대구 남산동 천주교 성직자 묘지 입구의 라틴어 글귀를 생각해본다. 삶과 죽음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역사를 기억한다는 의미와 서로 통한다. 살 때까지 살 것인가, 죽을 때까지 살 것인가. 삶의 끝에 죽음이 있고, 죽음은 끝이 아니다. 죽음 앞의 시간들을 보여주는 박물관. 그것이 한국인의 정신세계와 삶에 어떤 느낌을 불어넣었을까. 한 인간의 생은 죽음 뒤에 남는 것으로만 이야기되지 않는다. 죽음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가 존재할 때는 죽음이 존재하지 않으며, 죽음이 존재할 때 우리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삶과 죽음을 다르게 보지 않았다. 어울려 있는 현장을 본 것이다. 온양에서 그리고 서울에서.

대구교육박물관장·사진=김선국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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