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소금 <상>...철솥에 끓여 추출한 전통식 '태안 자염' 한국의 '게랑드 소금' 될까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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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3-20   |  발행일 2020-03-20 제37면   |  수정 2021-07-06 14:10
4자염
충남 태안군이 2013년 사라져가던 우리 고유의 자염을 움집 철판에서 재현하고 있다. <태안군 제공>
3신안군 염전
전남 신안군 염전에서 추출 중인 천일염. 〈신안군 제공〉
사람들은 그 음식의 '미감(味感)'에 사로잡힌다. 하지만 식재료의 족보에 대해서는 별로 궁금해하지 않는다. 지난 20년은 식탐의 시절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 국민 상당수는 각종 성인병 때문에 적잖은 고생을 하고 있다. 말기 암에서 살아온 자들은 맛에 별로 현혹되지 않는다. 그보다는 제대로 된 음식을 좇는다.

바야흐로 '힐링푸드 소사이어티(Healing Food Society)'가 도래된 것 같다. 코로나 팬데믹 정국을 맞아 마련한 '식품 열전'은 식품의학적 버전으로 접근한 식재료 연대기랄 수 있다. 소금 등 식품과 연관된 식품과학과 잘못된 식품 상식을 전문가 크로스 체크를 통해 식품에 대한 올바른 인식의 기회를 부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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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의 짠맛
나트륨·염소 이온 녹아 분리, 혀에 짠맛
과한섭취, 갈증 일으켜 체내 전해질 균형
국내 천일염 생산, 친환경 시비 논란도


바닷물에 약 2.8%. 체액의 나트륨 표준농도는 인류가 공히 0.9%. 만약 나트륨 섭취가 부족해 체액의 농도가 묽어져 전해질 균형이 깨질 경우 '전해질 쇼크'로 사망할 수 있다. 나트륨은 신경전달물질로도 쓰인다.

짠맛의 원인은 나트륨 이온(Na+)에 있다. 나트륨과 염소가 서로 결합한 상태인 소금 자체는 의외로 아무런 맛이 없다. 하지만 소금이 물이나 침에 녹아 나트륨 이온과 염소 이온으로 각각 분리되면 비로소 혀에 있는 미뢰가 나트륨 이온을 감지해 짠맛을 느낀다. 과하게 섭취할 경우 우리 몸은 전해질 균형을 지키기 위한 '방어기제'를 발동시킨다. 갈증을 느끼게 함으로써 물을 마시도록 만들어 체내 전해질 농도를 낮춘다. 소금을 단시간에 너무 많이 섭취했을 경우엔 구토를 일으켜 몸의 흡수를 막기도 한다.

그런 어느날 국내 식품계에서 천일염 시비 논란이 인다.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이 '우리나라 천일염은 장판염으로 위생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 것. '장판염이란 PVC 등 고분자물질로 만든 장판 위에서 바닷물을 증발시켜 얻은 소금으로 PVC 소재가 직사광선을 받아 분해되며 나오는 환경호르몬이 천일염에 섞여 유해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었다.

2게랑드소금
국제 최고의 소금 중 하나로 유통되고 있는 프랑스 게랑드 소금.
이에 대해 신안천일염 생산 관계자들이 발끈한다. 낙후된 염전시설을 위생적이고 친환경적인 폴리에틸렌(PE) 소재로 교체 중이라고 반박하고 나섰다. 이들은 2012년부터 친환경 버전으로 바닥재 교체에 나섰고 일부 염전에서는 사기 재질의 세라믹으로 바닥을 교체하기도 했다. 이와 동시에 PVC나 PE 같은 플라스틱 장판을 쓰지 않고 단단히 다진 흙바닥에서 바닷물을 증발시켜 얻은 '토판염'이 고가에 판매되기도 했다. 참고로 세계 최고의 소금은 프랑스 게랑드 소금이다.

1908년 국내 첫 염전
인천 염전에서 대만식으로 처음 들여와
불순물 걸러내고 끓여서 만든 '정제염'
물에 녹여 얻은 순수 소금결정 '재제염'


1908년 대만식 염전이 인천(주안염전)에서 처음 이식된다. 다들 천일염을 외치지만 그건 우리 유산이 아니다. 우리 전통 소금은 '자염(煮鹽)'이다. 갯벌에 써레질을 하고 볏짚으로 움집을 만들고 그 안에서 철솥에 담긴 뻘이 섞여 있는 염수를 장작불로 증발시켜 추출한 것이다. 천일염에 밀려 명맥이 끊어졌다가 충남 태안군 '태안 소금 굽는 사람들 영농조합법인'의 도움으로 2013년 식품문화재랄 수 있는 '맛의 방주'에 등재된다. 조선 영조 때 소금을 찌는 가마솥이 태안에만 453개나 있었다고 한다.

정부는 1963년 염관리법을 시행하면서 천일염을 '광물'로 분류한다. 당연히 천일염은 식품으로 대우받지 못한다. 이때 태동한 게 정제염과 재제염 등이다. 정제염은 바닷물을 정제해 부유물 등을 제거한 후 이온교환막을 통해 중금속과 불순물을 걸러내고 끓여 만든 것이다. 재제염은 일명 '꽃소금'으로도 불린다. 최근 '전기분해 방식'으로 생산된다는 오해와 달리 과량의 천일염을 물에 녹여 아래쪽에 만들어지는 순수한 소금 결정을 얻기 때문에 '다시 만들어지는 소금(再製鹽)'이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

1993년 다자간 무역협상 체결로 소금 수입이 자유화된다. 정부에서는 소금 산업의 미래가 불투명하다고 생각해 한때 '폐전 염전에 대한 지원책'을 내놓기도 했다.

2004년 부임한 박준영 전남도지사가 팔을 걷어 붙였다. 신안군 등 전남의 염전을 키워 국제적인 천일염을 생산하겠다고 다짐한다.

된장·김치 등 우리나라 전통 발효식품과 정제염은 궁합이 맞지 않았다. 염화나트륨만 들어 있는 정제염으로 된장을 담그면 미생물 발효가 시원찮다. 배추 조직도 물러져 버린다. 그런데 천일염으로 장을 담그면 염화나트륨 이외의 나머지 미네랄 등 성분이 발효를 돕게 된다. 우여곡절 끝에 안정성이 입증됐고 정부는 2008년 천일염은 물론 자염까지 국가무형문화재 제134호로 지정한다.

간수 제거해야 안전소금
두부 제조 필수, 식용 사용땐 맛에 지장
궁궐 진상되는 소금 3년이상 간수 제거
구운소금은 굽기 전과 화학적 차이 없어


천일염과 정제염, 재제염 중 몸에 더 좋은 소금이 있을까. 재제염과 정제염은 사실상 거의 순수한 소금(염화나트륨)이므로 얻는 방법만 다를 뿐 같은 물질이라 볼 수 있다. 문제는 맛에 지장을 초래하는 간수다. 간수는 두부를 만드는 데 없어서는 안 되지만 식용 소금으로 작용할 때는 상당한 걸림돌로 작용한다. 예전 궁궐에 진상되는 소금은 반드시 3년 이상 간수를 빼야만 했다.

소금에서 간수가 빠지는 이유는 뭘까. 소금이 공기 중 수분에 의해 스스로 녹는 성질인 '조해성(潮解性)'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조해성은 염화나트륨(소금)만 갖고 있는 것이 아니어서 간수를 빼는 숙성 과정에서 염화칼륨·황산마그네슘 등 다양한 미네랄이 빠져나온다. 결국 간수를 충분히 빼고 나면 천일염 전체 성분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던 염화나트륨만이 남게 된다.

80년대부터 죽염이 소금의 백미로 등극하면서 천사표 미소를 짓는다. 천일염을 고온으로 가열해 만드는 구운 소금은 본질적으로 굽기 이전과 화학적 차이가 없다. 소금에는 불에 탈 수 있는 유기물이 포함돼 있지 않기 때문에 가열을 통해 정제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차이가 있다면 천일염에 다량 함유된 수분이 증발하는 것이 전부다. 집에서 천일염을 임의로 가열해 구운 소금으로 만들어 먹는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이득이 사실상 없다는 얘기다.

이춘호전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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