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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편의에 맞춘 이기적인 法 활용
공동체 윤리 해치는 상황 일상서 빈번
장강명 소설 '알바생 자르기' 사건 역시
근본적으로 갑을관계보다 법·윤리문제
법을 악용하는 이러한 행태는 법 이전의 윤리를 해친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윤리란 무엇인가. 넓게는 사회 구성원으로서 좁게는 특정 조직의 일원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행동 준칙이나 규범을 말한다. 이러한 윤리가 한층 강화된 것이 내규나 지침 등이고 그 중에서 중요하고 일반적인 것을 따로 정한 것이 법이라 하겠다. 이렇게 같은 맥락에서 생겨난 것이니 윤리와 법 사이에는 원리상 상호 충돌이 있을 법하지 않지만, 앞의 사례들이 보여 주듯이 실제는 그렇지 않다. 일부 유명 인사들에게서만 그러한 것도 아니다. 법을 활용하며 윤리를 흐리는 경우는 우리의 일상생활에서도 심심찮게 벌어진다.
법을 따지며 법에 의해 보호받는 행위를 하되,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 윤리적으로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자신의 편의에 맞춰 규정과 법을 강조하는 사람이 그렇다. 이런 사람은 법과 규정이 어떻고 절차가 어떠니 지적하며 자신이 관계된 일마다 입바른 소리를 해 대면서도 정작 함께 일을 해야 할 때면 솔선수범은커녕 업무 협력에도 소극적이다. 직장에서는 물론이요 초중고 학창 시절에 주변에 그런 사람이 한두 명은 있었을 것이다. 법을 잘 알고 이를 활용하는 까닭에 이런 사람들이 규정이나 법에 저촉되는 경우는 별로 없지만, 동료 입장에서는 피곤하고 정이 떨어지게 마련이다. '우리'라는 연대감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결과는 조직 공동체의 윤리가 약화되는 것이다. 한 명의 이기적인 법 활용이 전체의 윤리를 해치는 상황이라 하겠다.
이러한 경우를 잘 보여 주는 소설이 있다. 장강명의 연작소설집 '산 자들'(민음사, 2019)의 맨 처음에 실린 '알바생 자르기'다. 이 소설은 '알바생'으로 일하다 권고 사직을 당하는 성혜미라는 젊은 여성의 이야기를 그녀의 관리자인 최은영 과장의 시선으로 보여 준다. 함께 일하는 회사 직원들 모두가 보기에 성혜미는 영락없는 근태 불량자이다. 칼퇴근을 기본으로 하되 상습적으로 지각을 하고 근무시간에 병원에 다닌다. 원래 하루 업무량 자체가 반나절치 정도밖에 되지 않아 별로 하는 일 없이 인터넷 서핑이나 하고 있어도, 퉁명스러운 태도 때문에 다른 직원이 무엇을 부탁하기는커녕 말도 못 붙이는 형편이다. 최 과장 또한 일을 시키는 데 있어 어려움을 겪는다.
'알바생 자르기'의 성혜미는 조직에 동화되지 않은 채 최소한의 일만 하며 자신의 잇속을 챙기는 타입이다. 사장의 지적 때문에 최 과장이 '조직 생활을 하려면 붙임성이 있어야 한다'며 근무 태도와 관련하여 충고를 하자(25쪽) 눈물을 흘리며 동정심을 유발하던 혜미가, 근로 조건을 변경하자는 사장의 제안을 전해 듣고는 "여태까지 흘리던 눈물이 모두 연기였던 것 같은 인상"(27쪽)을 주면서 자신의 근태로 '트집을 잡으면 안 된다'고 냉정하게 주장하는 데서 이러한 점이 확인되기 시작한다. 급기야 사장이 해고를 결정하고, 최 과장이 그것을 통보하면서 밥을 사고 선물까지 주지만 사태는 예상치 못하게 흘러간다. 사장이나 최 과장이 몰랐던 관련 법규를 하나 하나 다 따져가며 성혜미가 자신의 권리는 물론이요 부수적인 혜택까지 모두 챙기는 것이다. 그녀가 그럴 수 있는 것은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 마련된 법 규정을 잘 알고 간교하게 활용했기 때문이다.
성혜미를 권고 사직시키는 일을 맡게 된 최은영 과장은 어떠한가. 일처리의 허점을 감추기 위해 보험 문제 관련 합의금을 자기 돈으로 물어 주게까지 된 그녀는, 가난한 알바생인 성혜미를 두둔하며 동정했던 자신의 행동이 순진함 이상이 되지 못하는 상황 전개에 충격을 받는다. "어떻게 그렇게 아군 적군도 구별을 못 해? 사장님이 자르라고 할 때 막아 준 게 누군데"(29쪽)라고 남편에게 푸념해 보지만 하릴없는 일이다. "사람들이 다 자기나 나 같지 않아. 어떤 사람들한테는 끊임없이 다른 사람이 동기를 부여해 주고 자세를 교정해 주고 질책을 해 줘야 돼. 자기는 알량한 동정심 때문에 그걸 안 한 거지"(25쪽)라는 남편의 말에서 확인되듯이, 따지고 보면 관리자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못 한 자기 탓도 있으니 더욱 그렇다.
관리자로서의 잘못이 없지 않다고는 할 수 있지만 정말 최은영 과장은 그런 잘못의 대가로 충격을 받게 된 것일까. 소설을 찬찬히 읽으면 그렇지 않다는 것이 확인된다. 최은영이 충격을 받은 것은 150만 원의 생돈이 날아가서가 아니다. 성혜미를 잘 대해 주었던 자신의 태도가 배신을 당했다는 상황 인식이 충격을 주는 것이다. 객관적으로 말하자면, 사장이나 다른 직원들의 비판에 맞서 성혜미를 두둔해 왔던 자신이 암암리에 갖고 있던 '우리'라는 생각, 즉 함께 일하는 직원이라는 공동체 윤리가 성혜미에게는 전혀 없었다는 사실이 최은영에게 충격적이었다고 하겠다.
장강명의 '알바생 자르기'는 이렇게 흔히 있을 법한 사건을 제시하면서 개인의 이기적인 법 활용이 조직의 윤리를 해치는 상황을 보여 준다.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성혜미가 법적으로 문제될 만큼 무언가를 잘못했다고 말하는 것은 전혀 아니다. 사정은 반대다. 앞에서 소개한 대로 그녀만큼 법을 잘 아는 인물이 없지 않은가. 따라서 그녀는 그녀대로 절박한 상황에 몰려 법을 활용했을 뿐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말이 성혜미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도 아니다. 최은영의 충격을 낳은 책임의 적어도 반은 그녀에게 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의 관계는 아랑곳하지 않고 규정을 이기적으로 활용해서 자신의 편의만 챙겨 온 그녀의 태도가 문제다. 자신이 속한 조직의 윤리를 개의치 않는 그녀의 이기적인 법 활용 태도 말이다.
성혜미가 사회적 약자라 해서 윤리 의식과 법 규정의 괴리를 빚는 그녀의 태도가 용서될 수는 없다. 그녀와 같은 태도가 만연하면 윤리의 자리가 붕괴되기 때문이다. 법의 활용 의식이 도덕과 윤리를 억누르는 사회에서 삶은 끔찍하게 각박해질 수밖에 없다. 우리가 한 배를 탄 존재라는 생각이 설 자리를 잃게 되면 사회는 동물의 왕국으로 전락한다. 이야말로 약육강식의 상황이 되는 것이므로, 이른바 갑을 관계라 할 사회적 지위의 차이를 이 국면에서 강조할 일이 아니다. '알바생 자르기'가 보여 주듯이 강자의 갑질이 없는데 약자의 이기적인 법 활용이 강약 관계를 뒤집으면서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절대 드물지 않기 때문이고, 그만큼 사회적 갑을 관계가 아니라 법과 윤리의 문제가 보다 근본적이기 때문이다.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학부장·문명시민교육원 원장〉
공동체 윤리 해치는 상황 일상서 빈번
장강명 소설 '알바생 자르기' 사건 역시
근본적으로 갑을관계보다 법·윤리문제
법을 악용하는 이러한 행태는 법 이전의 윤리를 해친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윤리란 무엇인가. 넓게는 사회 구성원으로서 좁게는 특정 조직의 일원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행동 준칙이나 규범을 말한다. 이러한 윤리가 한층 강화된 것이 내규나 지침 등이고 그 중에서 중요하고 일반적인 것을 따로 정한 것이 법이라 하겠다. 이렇게 같은 맥락에서 생겨난 것이니 윤리와 법 사이에는 원리상 상호 충돌이 있을 법하지 않지만, 앞의 사례들이 보여 주듯이 실제는 그렇지 않다. 일부 유명 인사들에게서만 그러한 것도 아니다. 법을 활용하며 윤리를 흐리는 경우는 우리의 일상생활에서도 심심찮게 벌어진다.
법을 따지며 법에 의해 보호받는 행위를 하되,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 윤리적으로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자신의 편의에 맞춰 규정과 법을 강조하는 사람이 그렇다. 이런 사람은 법과 규정이 어떻고 절차가 어떠니 지적하며 자신이 관계된 일마다 입바른 소리를 해 대면서도 정작 함께 일을 해야 할 때면 솔선수범은커녕 업무 협력에도 소극적이다. 직장에서는 물론이요 초중고 학창 시절에 주변에 그런 사람이 한두 명은 있었을 것이다. 법을 잘 알고 이를 활용하는 까닭에 이런 사람들이 규정이나 법에 저촉되는 경우는 별로 없지만, 동료 입장에서는 피곤하고 정이 떨어지게 마련이다. '우리'라는 연대감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결과는 조직 공동체의 윤리가 약화되는 것이다. 한 명의 이기적인 법 활용이 전체의 윤리를 해치는 상황이라 하겠다.
이러한 경우를 잘 보여 주는 소설이 있다. 장강명의 연작소설집 '산 자들'(민음사, 2019)의 맨 처음에 실린 '알바생 자르기'다. 이 소설은 '알바생'으로 일하다 권고 사직을 당하는 성혜미라는 젊은 여성의 이야기를 그녀의 관리자인 최은영 과장의 시선으로 보여 준다. 함께 일하는 회사 직원들 모두가 보기에 성혜미는 영락없는 근태 불량자이다. 칼퇴근을 기본으로 하되 상습적으로 지각을 하고 근무시간에 병원에 다닌다. 원래 하루 업무량 자체가 반나절치 정도밖에 되지 않아 별로 하는 일 없이 인터넷 서핑이나 하고 있어도, 퉁명스러운 태도 때문에 다른 직원이 무엇을 부탁하기는커녕 말도 못 붙이는 형편이다. 최 과장 또한 일을 시키는 데 있어 어려움을 겪는다.
'알바생 자르기'의 성혜미는 조직에 동화되지 않은 채 최소한의 일만 하며 자신의 잇속을 챙기는 타입이다. 사장의 지적 때문에 최 과장이 '조직 생활을 하려면 붙임성이 있어야 한다'며 근무 태도와 관련하여 충고를 하자(25쪽) 눈물을 흘리며 동정심을 유발하던 혜미가, 근로 조건을 변경하자는 사장의 제안을 전해 듣고는 "여태까지 흘리던 눈물이 모두 연기였던 것 같은 인상"(27쪽)을 주면서 자신의 근태로 '트집을 잡으면 안 된다'고 냉정하게 주장하는 데서 이러한 점이 확인되기 시작한다. 급기야 사장이 해고를 결정하고, 최 과장이 그것을 통보하면서 밥을 사고 선물까지 주지만 사태는 예상치 못하게 흘러간다. 사장이나 최 과장이 몰랐던 관련 법규를 하나 하나 다 따져가며 성혜미가 자신의 권리는 물론이요 부수적인 혜택까지 모두 챙기는 것이다. 그녀가 그럴 수 있는 것은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 마련된 법 규정을 잘 알고 간교하게 활용했기 때문이다.
성혜미를 권고 사직시키는 일을 맡게 된 최은영 과장은 어떠한가. 일처리의 허점을 감추기 위해 보험 문제 관련 합의금을 자기 돈으로 물어 주게까지 된 그녀는, 가난한 알바생인 성혜미를 두둔하며 동정했던 자신의 행동이 순진함 이상이 되지 못하는 상황 전개에 충격을 받는다. "어떻게 그렇게 아군 적군도 구별을 못 해? 사장님이 자르라고 할 때 막아 준 게 누군데"(29쪽)라고 남편에게 푸념해 보지만 하릴없는 일이다. "사람들이 다 자기나 나 같지 않아. 어떤 사람들한테는 끊임없이 다른 사람이 동기를 부여해 주고 자세를 교정해 주고 질책을 해 줘야 돼. 자기는 알량한 동정심 때문에 그걸 안 한 거지"(25쪽)라는 남편의 말에서 확인되듯이, 따지고 보면 관리자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못 한 자기 탓도 있으니 더욱 그렇다.
관리자로서의 잘못이 없지 않다고는 할 수 있지만 정말 최은영 과장은 그런 잘못의 대가로 충격을 받게 된 것일까. 소설을 찬찬히 읽으면 그렇지 않다는 것이 확인된다. 최은영이 충격을 받은 것은 150만 원의 생돈이 날아가서가 아니다. 성혜미를 잘 대해 주었던 자신의 태도가 배신을 당했다는 상황 인식이 충격을 주는 것이다. 객관적으로 말하자면, 사장이나 다른 직원들의 비판에 맞서 성혜미를 두둔해 왔던 자신이 암암리에 갖고 있던 '우리'라는 생각, 즉 함께 일하는 직원이라는 공동체 윤리가 성혜미에게는 전혀 없었다는 사실이 최은영에게 충격적이었다고 하겠다.
장강명의 '알바생 자르기'는 이렇게 흔히 있을 법한 사건을 제시하면서 개인의 이기적인 법 활용이 조직의 윤리를 해치는 상황을 보여 준다.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성혜미가 법적으로 문제될 만큼 무언가를 잘못했다고 말하는 것은 전혀 아니다. 사정은 반대다. 앞에서 소개한 대로 그녀만큼 법을 잘 아는 인물이 없지 않은가. 따라서 그녀는 그녀대로 절박한 상황에 몰려 법을 활용했을 뿐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말이 성혜미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도 아니다. 최은영의 충격을 낳은 책임의 적어도 반은 그녀에게 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의 관계는 아랑곳하지 않고 규정을 이기적으로 활용해서 자신의 편의만 챙겨 온 그녀의 태도가 문제다. 자신이 속한 조직의 윤리를 개의치 않는 그녀의 이기적인 법 활용 태도 말이다.
성혜미가 사회적 약자라 해서 윤리 의식과 법 규정의 괴리를 빚는 그녀의 태도가 용서될 수는 없다. 그녀와 같은 태도가 만연하면 윤리의 자리가 붕괴되기 때문이다. 법의 활용 의식이 도덕과 윤리를 억누르는 사회에서 삶은 끔찍하게 각박해질 수밖에 없다. 우리가 한 배를 탄 존재라는 생각이 설 자리를 잃게 되면 사회는 동물의 왕국으로 전락한다. 이야말로 약육강식의 상황이 되는 것이므로, 이른바 갑을 관계라 할 사회적 지위의 차이를 이 국면에서 강조할 일이 아니다. '알바생 자르기'가 보여 주듯이 강자의 갑질이 없는데 약자의 이기적인 법 활용이 강약 관계를 뒤집으면서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절대 드물지 않기 때문이고, 그만큼 사회적 갑을 관계가 아니라 법과 윤리의 문제가 보다 근본적이기 때문이다.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학부장·문명시민교육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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