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찬일의 방방곡곡/길을 걷다] 목포 국립해양문화재 연구소

  • 임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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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6-12   |  발행일 2020-06-12 제36면   |  수정 2020-06-12
해저의 잠에서 700년만에 깨어난 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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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저에서 발굴한 항해 안전을 기원하는 관음보살상과 청자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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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3년 중국의 국제 무역선인 대형 '신안선'의 실물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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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국제 무역선 '신안선'에서 발굴된 유물들, 그 양이 무척 많다.

때는 1976년 어느 날 전남 신안군 증도 앞바다. 바다는 푸른 융단을 펼친 듯하고 어선들이 멀리서 가까이서 고기잡이를 하고 있었다. 어부 최형근씨도 생업인 그물질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바다에 드리웠다가 건져 올린 저인망에 아주 오래된 항아리가 걸려 올라왔다. 그는 갯벌 흙과 조개껍질이 다닥다닥 붙은 항아리를 가지고 집으로 돌아와 정결하게 씻었다. 표면이 반들반들해지자, 막 지려는 햇빛에 항아리는 영롱하게 빛무리를 그렸다. 그는 내심 감탄하면서 다음 날 문화재로 신고를 했다.

이것이 단초가 되고, 여러 번 우여곡절을 거쳐 그해 10월부터 '신안 해저유물 발굴조사'가 시나브로 이루어졌다. 당대(唐代)의 황금 같은 유물들이, 700년간 기나긴 해저의 잠에서 어마지두 깨어나는 벅찬 순간이었다. 신안군 증도면 방죽리 일대, 2㎞ 반경의 해역에서 발굴된 유물은 총 2만3천502점에 이르렀다. 2만600여 점의 도자기를 비롯해 여러 종류 공예품, 약 28t 분량의 중국 동전, 자단목, 후추 계피 같은 향신료, 청동 저울추, 놀이기구인 장기와 주사위 등 다양한 종류의 유물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온 것이다.


신안군 증도 앞바다 일대 유물 발굴
도자기·공예품 등 2만3502점 쏟아져



그중 청동 거울추에서 경원로(慶元路)라는 지명이 새겨져 있어, 이 배의 출항지가 지금의 중국 저장성 닝보임을 추측할 수 있다. 그리고 인양유물 중 하나인 목간(木簡-먹으로 글을 적은 나무 조각)에 '至治三年六月一日'(지치 3년 6월1일) 기록이 있어, 이 배가 중국 닝보에서 무역품을 싣고 일본으로 출항한 때가 1323년 6월1일 임이 확인되었다. 수중에 가라앉은 어떤 배보다 많은 유물이 나와 세계를 놀라게 한 신안선의 전모가 나타난 것이다. 발견 당시 수중 20m 지점에 가라앉아 있던 선체 중 갯벌에 묻힌 부위가 비교적 원형 형태로 잘 남아있어 오랜 보존처리 과정을 거쳐 현재 해양 유물전시관에서 전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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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해양문화재연구소와 데크로 이어지는 바다와 갓바위.

사전에 대강 이쯤의 내용을 파악하고, 해양유물전시관(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으로 들어간다. 현재 목포시 용해동의 갓바위 공원 바닷가에 있는 해양유물전시관은 우리나라 유일의 해양박물관이자, 수중발굴조사 전문기관이다. 6천73평 부지에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의 건물에 △고려선실 △신안선실 △세계의 배 역사실 △한국의 배 역사실 △어린이 해양문화 체험관 △야외전시장으로 나누어져 있어 바다-사람-문화-교류-역사라는 테마를 가지고, 선조들의 해양에 대한 지혜와 발자취를 보여주는 매우 가치 있는 곳이다.


해양유물전시관
고려청자 운반 완도선·달리도선 모습
200명 승선한 중세 中 무역선 신안선
日 교토 가던 중 표류, 고려에서 침몰
그릇·공예품…오복·번영 바라는 글귀
선상놀이 장기·바둑알·주사위도 눈길

세계의 배 역사실·한국 전통배 '한선'
인류가 제작한 배, 활용하기까지 과정
선조들의 기술·지혜 최고 조선 우뚝



먼저 고려 선실에 들어간다. 고려선실에는 서해와 남해에서 발견된 고려시대 수중 문화재를 전시하고 있다. 청자 운반선인 완도선과 달리도선의 실물과 모형을 보여주고 있다. 완도선은 1983년에서 84년 사이에 전남 완도군 약산면 어두리 앞바다에서 인양된 고려시대의 배다. 길이 9m, 폭 3.5m에 무게가 10t쯤 되는 완도선은 현대까지 발견된 우리나라 전통 배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다. 남아 있는 잔해를 복원한 고려선의 모습이 감동이다. 역시 청자 운반선인 태안선에서 발굴된 해저 유물들이 같이 전시되어 있다. 청자 모란 연꽃무늬 표주박 모양 주전자, 승반과 청자 사자모양 향로, 그리고 청자 두꺼비 모양 벼루와 한문이 적혀 있는 죽찰이 강하게 뇌리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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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국제 무역선 '신안선'에서 발굴한 옹기와 도자기 기타 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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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저에 가라앉은 고대 선박들을 인양하는 작업도.

다음으로 신안선실에 간다. 중세 중국무역선인 신안선은 동아시아 해상교역을 담당한 배로 규모가 거대하고 비교적 원형이 많이 남아 눈이 둥그레진다. 무척 놀라운 국제 무역선이다. 길이 34m에 260t 규모의 범선으로 최대 승선 인원은 200명으로 추정된다. 배 밑은 V자 형이고, 선수와 선미는 곡선이다. 중앙구조물인 용골은 유선형이다. 복원 처리된 배는 한눈에 봐도 대단하고 늘씬하다. 이러한 배는 항해할 때 추진력이 뛰어나다. 이렇게 감동적인 해저 유물의 탐사는 마치 물속에 잠수했다가 숨이 차서 해면에 떠오른 해녀가 참고 있던 숨을 내쉬는 숨비 소리 같은 긴박감과 흥미로움을 준다. 유물마다 요약된 안내문도 유심히 살핀다. 앞서 알기도 했지만 신안선은 중국 닝보에서 출발해 일본 교토로 가던 중 표류하다 고려에서 침몰한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서도 목간에 의해 여러 가지 상황이 파악된다. 중·일 화물주는 일본 교토에 있는 임제종 사찰 도호쿠사로 추측된다. 도호쿠사 목간에 적힌 물품은 대부분 동전인데, 사찰 재건을 위한 자금으로 보인다. 또 다음과 같은 목간도 있다.

'중국을 출발하여 반쯤 갔는데, 거센 풍랑이 불어 배가 기울고 죽을 고비를 넘겨 떠내려 간 곳이 고려다. 귀가하는 길을 잘못 들어 허무하게 아침을 맞이하게 되었다. 넓고 넓은 생사의 바다를 표류하였는데, 돌아가는 바다에서 오늘 아침 또 풍랑이 불어 배가 난파(難破)되어 큰 피해를 보았다.'<일본 대지 선사> 기록 중에서.

역시 인양된 수많은 그릇과 도자기 금속공예에도 인간의 오복(五福)과 자손의 번성(繁盛)을 바라는 글귀들이 적혀 있다. 이를 통해 당시 사람들의 소망과 사랑, 인생관, 행복관 등을 엿볼 수 있다. 글귀를 한번 살펴보자. 수산복해(水山福海-목숨은 산처럼 복은 바다처럼), 금옥만당(金玉滿堂-금옥 같은 보물이 집안에 가득 차다), 부귀장명(富貴長命-장수와 부귀를 누리다) 등 요즘 말로 돈 많이 벌고, 관직이 높아지고 오래 살게 해달라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소박하고 본능적인 소원이라 할 것이다. 이 밖에도 더욱 엄청난 유물이 있다. 그러나 오랜 항해를 견디기 위한 선상의 놀이인 일본식 장기와 바둑알, 주사위 등이 시선을 끌었다.

다음은 세계의 배 역사실로 간다. 이곳에서는 인류가 배를 제작하고 활용하기까지의 과정을 볼 수 있다. 여기서 문득 생텍쥐페리의 말이 조수처럼 살아난다. "만일 당신이 배를 만들고 싶으면 사람들을 불러 모아 목재를 가져오게 하고, 일을 지시하고, 일감을 나눠주는 식으로 하지 마시오. 대신 그들에게 저 넓고 끝없는 바다에 대한 동경을 심어 주십시오." 그렇다. 저 넓고 끝없는 바다에 대한 알지 못할 동경이야말로 인류가 배를 제작한 깊은 동기였을 것이다. 선사시대 북미와 아프리카 지역의 배 형태를 고대 그리스 및 지중해 지역 배를 통해 유럽 문명의 발전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배의 역사가 바로 문명의 역사였다.

다음은 한국의 배 역사실이다. 이곳에서는 한국의 전통 배인 한선(韓船)을 만날 수 있다. 오늘날 우리는 선조들의 기술과 지혜를 바탕으로 곰비임비 세계 제일의 조선국가로 우뚝 서게 되었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번영과 영광은 실로 조선업의 성장에서 그 원류를 찾을 수 있다. 감개무량하다. 선사시대 비봉리 배와 뗏목 배, 고대의 배 모양 토기, 해상왕 장보고 무역선, 조선시대 통신사선, 거북선, 판옥선, 조운선, 근대의 어선 등 우리 조상의 지혜가 번뜩이는 뛰어난 배들이 가슴에 돛을 달게 한다.

이제 야외전시장으로 나간다. 목포 앞바다의 아름다운 풍경에 자유와 역사의 향기를 느낀다. 바다에 바치는 오마주, 살아남기 위해 바다에서 영양을 구하던 우리의 원형이 감성으로 흘러와 노래가 되고 문학이 된다. 서해의 가거도 배, 남해의 통구마니 배, 동해의 목선, 멍텅구리 배. 이제 갓바위로 걷는다. 갓바위는 그냥 바다가 바위다. 돌아가기 위해 주차장으로 향한다. 뭍에 서서 바다에 빠져본다. 더 늦기 전에, 해가 지기 전에, 짭조롬한 소금기에 전신을 휘감으며, 나는 바다를 뒤집어쓰고, 신안선을 타고, 가뭇없이 고대로 항해한다. 바다에서 돈을 벌어 육지에서 쓴다. 출항을 알리는 쩌렁쩌렁한 고함 소리 따라 찰나의 시간에서 영원을 항해한다.

시인·대구힐링트레킹 회장 kc12taegu@hanmail.net
사진=대구힐링트레킹 사무국장

☞문의: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061)270-2000
☞내비 주소: 전남 목포시 남농로 136
☞트레킹 코스: 고려선실 - 신안선실 - 세계의 배 역사실 - 한국의 배 역사실 - 야외 전시장 - 갓바위
☞주위 볼거리: 남농기념관, 목포 문학관, 자연사박물관, 문화예술회관, 삼학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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