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형의 스포츠와 인문학] 연극과 영화의 차이?

  • 유선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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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7-24   |  발행일 2020-07-24 제38면   |  수정 2020-07-24
보이지 않아도 즐길 수 있는 연극·야구, 보이지 않으면 즐길 수 없는 영화·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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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어떤 학생이 희곡 수업 시간에 교수님께 실없는 질문을 던진 적이 있었다. "교수님, 연극과 영화의 차이는 무엇인가요?" 사실 이런 질문에 대한 해답은 없다. 예전에 한 유명 여배우는 같은 질문에 "카메라가 있고 없고의 차이"라고 대답한 적이 있었는데, 좀 웃기긴 했지만 그런 대답 역시도 정답이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다. 두 번째 실없는 질문을 한 번 해 보자. "축구와 야구의 차이는 무엇인가요?" 일단 힌트를 하나만 드리자면 이 질문의 정답은 첫 번째 질문의 정답과 정확하게 같다.

질문을 좀 생뚱맞게 바꿔보겠다. 시각장애인이 축구 감독을 할 수 있겠는가? 이 사람은 축구를 '볼 수' 없다. 그래서 오로지 신뢰할 만한 누군가의 상황설명과 묘사에 전적으로 의존하여 선수를 선발, 전략을 짜고 스타팅멤버를 구성하거나 선수교체를 해야 한다. 이것이 가능할 것이라고 보나? 난 세상에서 수많은 불가능이 가능으로 바뀌는 것을 보아왔다. 그래서 시각장애인 축구 감독도 언젠가는 나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매우 어려울 것이다. 우리는 별다른 설명 없이도 직관적으로 그렇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럼 반대로 야구는 어떨까. 시각장애인이 야구 감독을 할 수 있을까? 축구가 안 되니까 당연히 야구도 안 되는 거 아냐? 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야구는 신기하게도 시각장애인이 감독을 하는 것이 가능하다.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현실에서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만화에서는 그런 감독이 실제로 존재하기도 했다. 어째서 그게 가능할까.

정답을 한 문장으로 표현하자면, '야구는 축구와 달리 텍스트화가 가능한 스포츠이기 때문'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7회말 1아웃, 주자 1루, 3-2 풀카운트에서 우완 투수 홍길동이 바깥쪽 132㎞짜리 슬라이더를 던졌는데, 그걸 상대팀 3번타자 임꺽정이 쳐서 땅볼이 3루 간으로 날아갔고, 그것을 유격수 장길산이 백핸드 캐치로 잡아 643으로 이어지는 병살타로 연결시켰다"라고 누군가가 말한다면 그건 그냥 그런 것이다. 여기에는 달리 무언가가 개입될 여지가 없다. 나아가 야구가 매일 생산해내고 있는 어마어마한 수량화된 데이터의 양은 시각장애인의 이 스포츠에 대한 접근성을 더 정교하게 만들어 준다.

그렇게 따지면 축구도 되지 않느냐, 그런 질문은 나오지 않았으면 한다. 축구는 한마디로 불가능이다. "홍길동이 임꺽정에게 패스를 했는데 임꺽정이 슛을 해서 골키퍼 왼쪽으로 골이 들어갔다" 정도로 이야기해서는 답이 없다. 왜냐면 이 상황이 벌어지기 전까지 22명의 플레이어의 위치나 움직임, 충돌 같은 것이 유동적으로 정확하게 전달되지 않으면 이 문장만으로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도무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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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형 문화평론가

여기까지가 공감이 간다면 영화와 연극의 차이도 이해하기가 매우 쉬워진다. 시각장애인도 연극을 즐길 수 있다. 당연하다. 점자로 희곡을 읽어도 되고, 극장에 가서 배우들의 목소리를 들어도 된다. 셰익스피어가 글로브 극장에서 공연을 할 때, 뒤에 들어온 관객들은 앞 사람에 가려 배우들의 얼굴을 전혀 볼 수 없었다. 그래도 그들은 얼마든지 연극을 즐겼다. '들렸기' 때문이다. TV드라마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집안일을 하는 주부들을 위해 그러한 드라마들은 모든 것을 대사로 풀어준다. 듣기만 해도 스토리 진행에 아무 지장이 없는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축구와 가깝다. 이티가 자전거를 타고 날아가는 것, 액체 터미네이터가 쇠창살 사이로 빠져나오는 것, 타이타닉이 바다 위로 솟는 것 등은 절대 직접 보지 않고서는 즐길 수가 없게 되어 있다. 안정환의 이탈리아전 골처럼 그것은 99%의 이미지다. 영화와 축구, 드라마와 야구, 세상은 자세히 보면 비슷한 것이 참 많다.
박지형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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