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대구독립운동기념관 건립은 대구의 새 역사를 창조하는 일이다

  • 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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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7-13   |  수정 2020-07-13
이종찬
이종찬 전 국정원장

며칠 전 서재에 오래된 책을 정리하는 가운데 문득 백범 김구 선생이 서거하시기 얼마 전, 나의 어머니에게 주신 '백범일지'를 발견했다. 그 책 첫머리에 백범은 붓글씨로 '踏雪夜中去 不須胡亂行 今日我行蹟 遂作後人程'라는 서산대사의 시를 써주셨다.부랴부랴 시의 뜻을 풀어봤다.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 / 이리저리 함부로 걷지 마라 / 오늘 내가 걸어간 발자국은 / 뒷사람의 이정표가 될지니'란 뜻이었다. 


서산대사의 시를 인용한 백범의 깊은 뜻도 헤아려 봤다. 오늘의 우리가 하는 모든 행동은 내일의 귀감이 될 터인 즉, 한 발작이라도 헛되게 보내지 말라는 말씀일 것이다. 근래 대구시민들이 뜻을 모아 대구독립운동기념관을 세우려는 시민운동이야말로 내일의 이정표를 세우려는 여정의 첫걸음이 아닌가 짐작해 보았다. 


본래 대구는 나라가 어지러울 때 애국애족의 시민정신이 면면히 이어온 전통의 고장이었다. 국채보상운동은 물론 1915년 전국 조직을 갖추고 일제에 치열하게 맞선 대한광복회가 창립된 곳도 대구였다. 작년 국군의 날 문재인 대통령은 '대구는 대한광복회가 창립된 자랑스러운 고장'이라고 거론한 것도 이런 사실을 강조한 뜻일 게다. 


그뿐이 아니다. 명성황후 시해 후 최초로 창의한 의병장 문석봉도 대구사람이다. 1920년대 무장 독립운동의 중심, 의열단 창단에도 대구 지사들이 핵심 역할을 했다. 이종암 부단장은 창단 자금을 조달했을 뿐만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열렬히 투쟁하다가 순국했고, 국내외를 오가며 맹활약했던 서상락 지사는 독일에서 임무수행 중 순국했다. 그 외에도 학창시절 대구에서 보내며 의열단 활동을 한 '광야'의 시인 이육사,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부르짖은 이상화, 그의 형으로 윤봉길과 이봉창 등 한인애국단 거사에 폭탄을 제공한 이상정 장군, 동아일보 일장기 말살사건을 주도한 소설가 현진건 등 대구가 낳은 독립운동가들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항일학생운동 또한 그러했다.계성학교 혜성단, 대구사범 다혁당, 대구상업 태극단, 대구고보 무우단과 동맹휴학 등 일회성이 아니라 부단히 투쟁했다. 다른 지역에서는 보기 힘든 지속성을 자랑한 대구 학생들의 독립운동이었다.


그 결과 대구는 159명의 독립유공자를 배출했다. 이는 서울의 1.6배, 부산 73명의 3배, 인천 22명의 5배나 되는 숫자다. 게다가 대구형무소에서는 176명이나 되는 독립유공자가 순국했다. 서대문형무소의 175명과 비견된다. 그래서 대구는 학계로부터 '독립운동의 성지'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하지만 실상은 어떤가. 대구형무소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중소도시에도 세워져 있는 독립운동기념관은 대구에 없다. 그래서 드디어 시민들이 나서서 대구형무소역사관과 대구독립운동역사관을 겸할 대구독립운동기념관 건립 운동을 시작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한 애국지사의 후손은 건립 부지를 기부했다. 드디어 오는 20일에는 대구독립운동기념관 건립추진 발기인대회가 예정됐다. 


'천릿길도 한 걸음부터'라고 했고, '시작이 반'이라 했다. 시민들이 마음과 힘을 보탠다면 대구가 지닌 '독립운동의 성지'라는 정체성을 온 국민에게 알리고,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교육할 수 있는 대구독립운동기념관 건립은 반드시 성사될 것이다. 


그래서 호소드립니다. "대구시민 여러분!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두들 대구독립운동기념관 건립 추진위원으로 참여하여 대구의 새 이정표를 후세에 남기고 새 역사를 창조하십시다!"
이종찬<대구독립운동기념관 건립추진위 상임고문·전 국정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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