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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민〈대구미술관 학예연구사〉 |
카셀 도큐멘타는 독일 중부 도시 카셀에서 5년마다 열리는 세계 최고권위의 미술행사다. 주 전시장 외에도 각종 행사가 온 동네에 흩어져 있어, 웬만큼 독한 성격이 아니면 짧은 일정 내에 전시를 섭렵하기란 쉽지 않은 규모다.
2017년 제14회를 맞은 카셀을 찾았다. 모닝커피와 먹으려고 새벽 기차 내내 유혹을 참은 브레첼 냄새에 만족하며 내디딘 카셀 중앙역은 "이게 뭐야"가 절로 나올 정도로 휑했다. 카페는커녕 간밤의 쾌쾌한 흔적들만 남아있었다. 그 시간에 도착한 여행자는 나뿐인 듯했다. 밖에 부슬부슬 비가 내렸고, 참 교훈을 얻었다. 나는 너무 일찍 도착했다. 어쨌든 역을 나와 전시장으로 향했다. 카셀 역에서 전시장으로 가는 길은 긴 내리막에, 계단의 연속이지만 신나는 마음에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 순간 우당탕! 빗길에 미끄러지고 내 캐리어는 내동댕이쳐졌다. 순간 망했다! 직감했고, 발목을 심하게 접질렸다. 주변엔 아무도 없었다. 뼈가 부러지지 않은 것에 감사하며 내 인생에 가장 느린 발걸음으로 걷고 또 걸어 마침내 입구에 도착했는데, 세상에! 이 사람들은 다 어디서 왔지? 구불구불한 줄 행렬이 매표소 오픈을 기다리고 있었다. 만신창이가 된 몰골로 이윽고 입장할 찰나, 음식은 반입불가라는 스태프의 굳은 얼굴이 나만큼 짠한, 눅눅한 브레첼(가방 속)을 향하고 있었다. '카셀 우당탕 세리머니'도 억울한데 한입 먹지도 못한 빵까지 내놓으라니! 나는 억울한 표정으로 가방에서 빵을 꺼내 쓰레기통에 명중시켰다. 서두가 길어졌는데, 작품 한 점을 소개하기 위해서다.
통증이 온몸에 퍼지고 내 몸과 마음이 거의 부서질 무렵, 영상이 켜진 어두운 방에 들어갔다. 물소리와 함께 자연 풍경과 동물의 탈, 개울에서 근육 하나하나를 이용해 몸부림치는 남자가 세 개의 화면에 번갈아 나오고 있었다. 목이 메었다. 말도 안 된다. 육신에서 완전히 해방되는 통렬한 느낌을 받았다. 온몸이 가볍고 자유로워짐을 예술작품 앞에서 느꼈다. 나는 어린아이처럼 꺽꺽 울었다. 내 인생에 가장 강렬한 작품, 캄보디아 작가 크베이 삼낭의 '영혼의 길'이다. 행여 다친 서러움 탓인가 싶어 다음 날 그다음 날에도 작품을 찾았다. 매번 다른 감동으로 진동이 왔다. 고백하자면 예술의 힘을 진정으로 믿기 시작한 게 그날부터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고 그날 이후 비가 오면 오른쪽 발목이 몹시 뻐근하다.
이정민〈대구미술관 학예연구사〉

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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