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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출신 조형사진가 정재규의 '경주' 시리즈 중 김유신 장군묘 12지신상을 사진과 회화로 접목시킨 작품. 정재규는 1978년 프랑스로 건너가 42년째 유럽에서 활동하고 있다. |
대구가 낳은 세계적인 '조형사진(Plastic Photography)가' 정재규(71)는 40여년간 그림과 사진을 접목시켜왔다. 그의 개인전이 지난달 7일부터 오는 10월18일까지 대구미술관 4·5전시실에서 열린다. 경북고, 서울대 회화과를 졸업한 정재규는 1977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10회 파리비엔날레에 한국인으로선 최초로 사진 이미지를 담은 설치작품을 출품했다.
이듬해 프랑스로 유학, 파리1대학에서 현대기하학과 추상 등 미술이론을 공부한 뒤 80년대 말부터 자신만의 독특한 '조형사진'을 창시해 구축해왔다. 95년 제1회 도쿄사진비엔날레 수상, 2001년 프랑스 비엔날레 수상 등 화려한 이력을 자랑하는 그는 42년째 프랑스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번 전시는 맥향화랑에서 전시를 가진 이후 고향 대구에서 여는 12년 만의 개인전이다. 하지만 현재 투병 중인 데다 코로나19로 개막식조차 참석하지 못해 아쉬움을 더하고 있다.
정재규의 이번 전시 타이틀은 '빛의 숨쉬기'다. 그는 이번에 '프랑스 생트 빅투아르산 후경' '아치 아틀리에' 'HM53(앙리 마티스)' '만 레이' '경주' 시리즈 등 크게 5개 시리즈를 선보인다. 생트 빅투아르 산 후경 시리즈는 89년 이 산을 오르내리며 촬영한 사진을 모티브로 했다. 아치 아틀리에는 자신의 작업실 이름이다. HM53, 만 레이는 그의 작품에 영향을 줬던 화가 또는 사진가다.
'경주' 시리즈에선 5점을 선보인다. 불국사, 석굴암 본존불, 반월성 앞 연못의 연꽃 등이 소재다. 경주 김유신묘 12지신상은 장군의 봉분 주변 호석이 배경이다. 각 동물의 특징을 올짜기와 운필로 표현하고 있다. 그의 운필은 사진을 촬영하듯 카메라 셔터가 눌러지는 짧은 찰나를 연상시킨다.
그는 사진의 재현성을 해체해 그 이미지가 가지는 시·공간적 의미를 '빛'으로 재해석했다. 사진 이미지를 5~10㎜의 폭으로 가늘고 길게 절단해 베틀 짜듯 가로·세로로 교차하거나 기하학적으로 재구성해 배열하는 올짜기 작업을 30여년간 해왔다. 반복·대칭 작업으로 리듬성과 조형성에 더해 다른 이미지가 만들어지기도 하고, 3차원적 착시를 드러낸다. 나아가 동양의 서도 기법까지 활용해 입체적 이미지를 확장해왔다.
정재규는 "사진과 그림 등 장르를 선 긋듯 나눠버리는 건 예술이 지닌 무한한 가능성에 한계를 부여하는 것이다. 나는 기하학적인 조형 언어로 사진에 접근하는 데 매력을 느꼈다. 이런 예술에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길 바란다"고 했다.
전시를 기획한 이동민 학예연구사는 "작가의 고향 대구에서 열리는 최대 규모의 개인전이다. 30여 년간 우직하게 이어온 예술 정신을 오롯이 느낄 수 있을 것"이라며 "조형사진을 통해 빛의 지각을 경험하고, 보이는 것 너머의 시각적 근원을 느끼길 바란다"고 했다.
글·사진=박진관기자 pajika@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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