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 '월세시대'가 정상이라고?

  • 심충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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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8-10   |  발행일 2020-08-10 제27면   |  수정 2020-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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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충택 객원논설위원

얼마 전 연예인 박나래가 월세 든 집에 살며 실내 인테리어를 하는 장면이 방송에 나오면서 '월세'가 이슈로 떠오른 적이 있었다. 박나래가 세 든 집은 서울에서도 최고가 아파트인 한남동 유엔빌리지이며, 월세는 900만 원 정도인 것으로 알려졌다. 논란의 핵심은 인기 개그우먼인 박나래의 경우 많은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만큼 수입이 엄청날 텐데 왜 월세를 살고 있느냐라는 것이었다. 누구든 가질 수 있는 의문이다. 당시 언론에 보도된 내용을 보면 "위화감 든다. 세금 줄이려고 하는 것 아니냐"는 부정적 반응과 "돈 벌어서 자기를 위해 힐링하는 사람이 부럽다"는 긍정론이 공존했다.

여기서 박나래를 언급하는 것은 지금 우리나라 주택임대차 시장이 전세에서 월세로 급변하면서 극도의 혼란 상태로 빠져들고 있기 때문이다. 박나래 같은 부유한 연예인이 월세를 산다는 사실에 시청자들이 호기심을 보이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지금까지 월세는 서민들의 전유물이었다. 대도시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우리나라 대부분의 국민은 결혼 초기에는 보증금 낀 월세 집에 살다가 돈을 모아 전셋집을 장만했다. 그 후 아파트 분양을 받아 내 집 마련을 하는 과정을 겪었다. 직업이 의사든, 판사든, 샐러리맨이든 평범한 가정에 태어난 청년들은 모두가 비슷비슷했다. 일부 부잣집을 제외하고 모든 신혼부부들은 '월세 탈출'이 지상목표였다. 월세는 사글세(朔月貰)라고도 부른다. 서민들의 애환이 담겨 있는 단어다.

새로운 임대차 보호법이 주택임대차 기간을 4년으로 늘리고, 전세금 인상률을 5%로 제한하자 전세매물이 자취를 감추고 있다고 한다. 집 없는 서민들과 결혼을 앞둔 청년들의 어깨를 짓누르는 소식이다. 집주인들은 새로운 법이 시행되자마자 규제를 피하기 위해 전세를 월세로 전환하고 있다.

필자가 사는 아파트를 예로 들면 전세가격이 3억5천만 원에서 4억 원 정도인데, 월세는 약 2천만 원의 보증금에다 100만 원 이상을 받고 있다. 요즘 같은 초저금리 시대에는 4억 원을 은행에 예치하면 연리 1.8%를 잡더라도 연간 소득이 720만 원 정도다. 그러나 전세를 월세로 전환하면 보증금 이자를 제외하더라도 소득이 연간 1천200만 원에 이른다. 그러니 정부가 전세금 인상률 규제를 강화할 경우 은행대출을 해서라도 너도나도 전세를 월세로 돌리겠다는 욕심을 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서울뿐 아니라 전국 대도시 여기저기서 전세를 사는 세입자와 집주인의 갈등이 심각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더불어민주당 윤준병 의원이 지난주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비판한 윤희숙 미래통합당 의원을 공격하면서 "전세가 사라지고 월세로 전환되는 건 매우 정상이다"라고 말해 대중의 분노를 사고 있다. 최악의 불경기에다 전염병까지 겹쳐 고단한 삶을 살고 있는 서민입장을 한 번이라도 고민한 사람이라면 월세시대가 정상이라는 소리를 할 수가 없다.

요즘 상당수 가정의 경우 자녀를 결혼시킬 때 양가에서 얼마씩 분담해 전셋집을 구해주는 것이 일반화돼 있다. 자녀들이 전세자금을 기본재산으로 해서 내 집을 장만하라는 취지다. 그러나 전셋집이 소멸될 경우 이러한 관례는 없어질 수밖에 없다. 이는 대부분 청년들이 월세로 신혼생활을 시작할 수밖에 없는 세상이 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내 집 마련의 꿈이 이제 많은 사람들에게 불가능할 수도 있는 것이다. 월세는 없어지는 돈이고, 전세금은 언젠가는 내 집을 마련할 수 있는 목돈 역할을 한다.
심충택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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