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칼럼] 이재명 대법원 판결의 법사회학적 의미

  • 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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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8-12   |  발행일 2020-08-12 제26면   |  수정 2020-08-12
최종평의에서 5대 5 상황이
권순일 대법관 앞 놓였을 것
공직선거는 입신양명 아닌
민주주의 축제로 이해하는
법 사회학적 변화 촉발시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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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국운 한동대 법학부 교수

지난 7월16일 대법원 전원합의부는 이재명 경기도지사에 대하여 무죄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정치적 사망선고의 위기에 내몰렸던 이 도지사는 기사회생했고, 곧바로 차기 대통령 선거를 향한 레이스에 탄력이 붙었다. 대부분의 언론 매체는 이 대법원 판결의 정치적 파장이 어디까지 미칠지를 헤아리기에도 벅찬 듯 보였다.

하지만 법사회학을 공부하는 나 같은 학자들에게 이 대법원 판결은 단지 유력 정치인의 정치적 운명에 국한할 수 없는 더욱 심중한 의미로 다가온다.

사실 이 사건은 선거운동 과정에서 벌어진 후보자 토론회의 발언에 대한 사실 판단의 문제로 끝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같은 사실에 대하여 1심과 항소심의 판단이 엇갈렸고, 이재명 도지사의 유죄 및 도지사직의 유지 여부와 결부되면서, 대법원의 판단을 구하는 상고심이 열리게 되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이 사건을 맡은 대법원의 소부가 두 달여의 심리 끝에 스스로 판단하지 않고, 전원합의체에 회부하는 결정을 내렸던 점이다.

스스로 사건을 회피한 김선수 대법관 외에 이 재판에는 대법관 12인이 참여했고, 대법관들의 의견은 7대 5로 나뉘었다. 김명수 대법원장을 비롯한 대법관 7인은 공직선거에서 허위사실 공표죄를 해석할 때 지금까지보다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더 넓게 보장해야 한다는 견해를 취했고, 박상옥 대법관을 비롯한 대법관 5인은 이 사건에서 허위사실을 소극적으로 숨긴 행위를 적극적으로 진술한 것과 달리 판단할 수 없다면서 다수의 견해에 반대했다. 기실 대법관 5인이 내세운 소수 의견은 그동안 선거범죄를 판단하면서 법원이 고수해 온 입장과 다를 것이 없다. 이 입장은 공직선거를 권력 또는 직위를 향한 '위험한' 경쟁으로 전제하면서, 끊임없이 불법행위의 유혹에 시달리는 후보자들을 엄격하게 규제함으로써 선거의 공정을 지키는 것을 법원의 책임이자 권한으로 이해한다.

이에 비하여 새롭게 주류를 이룬 대법관 7인의 다수 의견은 다소의 혼란을 감수하고라도 후보자들의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보장함으로써 유권자들의 자유로운 선택을 가능케 하는 것이 법원의 임무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보인다. 다수 의견의 내용에 명백하게 드러나 있지는 않지만, 아마도 이 입장의 전제는 공직선거를 입신양명이나 출세를 위한 경쟁이 아니라 그야말로 시민의 공복(公僕)을 뽑는 민주주의의 축제로 이해하는 태도일 것이다.

이재명 대법원 판결의 법사회학적 의미를 이렇게 분석할 때, 대단히 흥미롭게 다가오는 것은 퇴임을 앞둔 권순일 대법관의 선택이다. 대법관 12인의 최종 선택을 고려하여 역으로 추정해보면, 가장 최근에 임명받은 대법관부터 역순으로 견해를 밝히는 최종 평의에서 대법원장을 제외하고 최선임인 권순일 대법관 앞에는 아마도 5대 5의 상황이 벌어졌을 것으로 보인다. 양승태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박근혜 대통령이 임명했던 권 대법관은 이 결정적인 순간에 새로운 다수 의견에 가담함으로써 앞서 말한 법사회학적 변화를 촉발한 셈이다.

이 칼럼을 쓰는 동안 권순일 대법관의 후임 대법관으로 국가보안법 위반 전력이 있는 이흥구 부산고등법원 부장판사가 김명수 대법원장의 제청을 받았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 국가보안법 판결의 주심 판사가 젊은 날의 권순일 대법관이었다니, 이래저래 권 대법관은 시대적 변화의 증인으로서 앞으로도 한동안 호사가들의 입길에 오르내리게 될 것 같다.
이국운 한동대 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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