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가기 딱 좋은 청정 1번지 영양]〈4〉맹동산과 삼의계곡

  • 박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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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9-03   |  발행일 2020-09-03 제11면   |  수정 2020-11-27
별과 바람의 고향 지키듯…우뚝선 86기 '하얀 바람개비' 힘찬 군무
전국 최대 규모 풍력발전단지 장관
넓은 목초지·가을 억새밭 등 볼거리
밤이면 쏟아지는 은하수는 딴 세상
물 맑은 청정 삼의계곡 '숨은 보물'
야영장·펜션 등 편의시설도 잘 갖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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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영양군 석보면 맹동산 풍력발전단지는 전국 최대 규모로 영양읍 무창리까지 모두 86기가 들어서 있다. 해발 800m 능선을 따라 늘어 선 풍력발전기들은 창을 든 병사마냥 바람에 맞서 소리를 내지른다.

저 멀리 동해가 아른거린다. 그곳에서부터 세찬 바람이 불어와 첩첩 봉우리들은 서쪽으로 뒷걸음친다. 풀이 눕는다. 고랭지 배추의 어린잎은 잔뜩 웅크린 채 파르르 떤다. 초지에는 황소들이 바윗돌처럼 서 있고 그들의 단단한 등을 타고 바람은 폭포처럼 미끄러진다. 우뚝 솟구친 풍력발전기들은 창을 든 병사마냥 바람에 맞서 소리를 내지른다. 이 바람 때문에 산마루는 민둥하다. 또 이 바람 때문에 마루 밑 수목들의 우듬지는 산발이다. 밤이면 이 민둥한 마루 가득 은하수가 쏟아지고 산발한 수풀 속에서 반딧불이가 고개를 내민다. 영양 맹동산의 매혹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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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동산 풍력발전단지에 조성된 바람소리 정원.

#1. 맹동산

한반도의 등뼈를 이루는 낙동정맥이 백두대간 매봉산에서 부산 다대포 몰운대까지 380㎞를 달린다. 그 가운데 약 3할인 120㎞가 영양군을 지나가며 경북에서 가장 높은 지형을 이룬다. 맹동산은 영양의 남동 끝 석보면에서 낙동정맥의 한 근골이 되는 산이다. 북으로는 울치재와 창수령으로 이어지고, 남으로는 포도산과 명동산 그리고 황장재로 이어진다. 산 정상에 오르면 완만하게 이어지는 능선들의 골격이 한눈에 들어온다.

원래 맹동산의 이름은 '민둥산'이었다. 다른 산보다 높고 특히 동해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거세서 나무들이 잘 자라지 못하고 풀들만 자란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민둥'은 '맨둥'이 되었다가 '맹동'으로 굳어졌다. 능선의 고도는 대략 800m 정도이고 정상은 808m다.

바람이 거세어 나무가 잘 자라지 못하는 대신 그곳에는 거대한 풍력발전기가 에너지를 만든다. 능선을 따라 선 하얀 바람개비는 아득히 먼 영양읍 무창리까지 모두 86기에 이른다. 전국 최대 규모다. 실바람마저도 이곳에서는 에너지가 된다.

푸른 하늘 아래 광활하게 펼쳐져 있는 목초지에는 황소가 풀을 뜯고 있다. 소들은 초겨울까지 정상을 누린다. 정상 부근에는 고랭지 채소밭이 넓게 자리하고 가을에는 능선을 따라 수십 리 이어진 억새밭이 은빛 물결을 이룬다.

산꼭대기까지 도로가 놓여 있고 차가 올라갈 수 있다. 어느 모퉁이에서 고라니가 나타날지 모르니 천천히 올라야 한다. 이 일대에는 산양과 사향노루, 담비, 삵, 매, 수리부엉이, 하늘다람쥐 등 다양한 천연기념물과 멸종위기 종들도 서식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진입로를 내기 위해 많은 나무들이 베어졌고 풍력발전기를 세우기 위해 산 정상부는 깎여 나갔다. 많은 사람의 반대가 있었지만 풍력단지는 세워졌고, 그 풍경의 장관 앞에서 감탄사가 먼저 터져 나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바람이 거센 날이면 산 아래 마을 사람들은 바람개비의 소음에 괴로워한다. 바람이 에너지가 되는 것은 놀라운 일이지만 그로 인한 누군가의 괴로움은 안타깝다.

산 정상부에도 길이 약 6~7㎞ 정도 구불구불 흐른다. 바람개비 아래를 지나는 길이고, 채소밭 곁을 스치는 길이고, 소들의 초지를 바라보는 길이다. 띄엄띄엄 보이는 공터는 낙동정맥을 따르는 트레커들의 쉼터이고 차박 캠핑족의 아지트다. 또한 해돋이를 맞이하는 사람들과 해넘이를 기다리는 이들의 전망대다. 밤이 되면 하늘에서 쏟아지는 수만 개의 별이 손에 닿을 듯하다. 어둠이 깊어질수록 은하수는 무한으로 흐른다. 그때 맹동산의 산정은 은하수를 항해하는 나룻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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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림에 폭 싸인 삼의계곡은 맹동산 삼의리에서 포도산 포산리까지 6㎞ 이어지는 청정 계곡이다. 물은 수정처럼 맑고 한여름에도 발을 담그기 힘들 만큼 차다.

#2. 삼의계곡

맹동산 서쪽 사면에서 화매천(花梅川)이 시작된다. 천은 곧 포도산 서편 아래를 흘러 화매리 부근에서 다시 북서쪽으로 향하고 석보면소재지를 지나 영양읍 흥구리 앞에서 반변천에 유입된다. '화매'는 물이 흘러 주위의 황무지를 적셔 주니 그 땅에 여러 풀꽃들이 무성하게 자라났다고 해서 생겨난 이름이라고 한다. 화매천의 최상류에 낙동정맥의 원시림에 폭 싸인 삼의계곡이 있다. 맹동산 삼의리에서 포도산 포산리까지 장장 6㎞나 환상적인 절경으로 이어지는 청정 계곡이다. 삼의계곡은 맹동산과 포도산의 들머리이기도 하다.

도로와 나란한 계곡은 상류 쪽에서부터 상삼의, 중삼의, 하삼의 등의 마을을 끼고 흐른다. 원래 '삼의'골은 '산밑'골이었는데 한자로 고쳐 쓰면서 삼의(三宜)가 되었다고 한다. 삼의에 대한 또 다른 이야기도 전해온다. 옛날 이곳에 4대 독자인 김 부자가 살았는데, 결혼 후 삼형제를 얻었단다. 아들 이름을 의남(宜男)으로 지었고, 삼형제 모두를 귀하게 여겨 삼의라 불렀다고 한다. 이후 세 아들이 장성하여 분가하자 맏이는 상삼의, 둘째는 중삼의, 막내는 하삼의라 불렀고 지금도 그 이름이 마을 이름으로 남아 있다는 이야기다. 포산리는 포도산에서 그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여겨진다. 포도산은 머루가 많이 난다고 생긴 이름이다. 조선 후기 천주교 박해 때 많은 신자가 몸을 숨긴 천혜의 피난처이기도 하다.

물은 수정처럼 맑고 한여름에도 발을 담그기 힘들 정도로 차다. 버들치가 노니는 바닥까지 훤히 들여다보이고 잠깐만 쓱 훑어도 통통한 다슬기가 한 소쿠리 건져진다. 특히 무성한 숲 덕에 그늘이 많고 수심이 얕아 어린 아이를 동반한 가족 피서객에게 더할 나위 없다. 또한 포도산 등산로 초입에 삼의계곡 제1 야영장, 삼의2교에 제2 야영장, 삼의3교 부근에 펜션과 산장이 있는 등 계곡 곳곳에 관광객을 위한 야영장과 주차장이 설치돼 있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

포도산이나 맹동산을 찾은 등산객은 등산에 앞서 하산의 물놀이를 먼저 기대한다. 예전에는 아는 사람만 찾아온 오지 중 오지였다. 평화롭고 자연 그대로인 한적한 별천지. 지금도 계곡은 청정한 자연 그대로다. 편의시설이 있지만 모두 한 발짝 물러선 최소한의 필요들이다. 삼의계곡이 외부에 알려진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도로가 말끔히 정비된 이유도 있지만 원래 좋은 것은 오래 감추기 어렵다.

삼의계곡은 화강암 지대다. 낮은 벼랑이 좁은 문을 이룬 곳도 있고 넓은 바위가 하얗게 펼쳐진 곳도 있다. 또한 크고 작은 바윗돌이 곳곳에 버티고 서서 크고 작은 폭포를 만든다. 그중 장관은 8m 높이의 사자암 폭포다. 물줄기가 사자의 입 속으로 쏟아지는 형상이다. 화매폭포라고도 하고 제1폭포라고도 하며 선녀탕이라고도 부른다. 뜨거운 한여름 차가운 물은 물안개를 피워 올린다. 솔숲은 촉촉해지고 활엽수들은 부풀어 오른 수액으로 터질 듯하다. 마타리, 뚝갈, 조밥나물, 노루오줌, 가시여뀌가 자라나는 양지에는 애기세줄나비가 나풀거린다. 가을날 골짜기 원시림에 단풍이 들면 더욱 절정을 이룬다.

글=류혜숙<작가·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

사진=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참고=영양군 누리집. 향토문화전자대전. 한국지명유래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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