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우석의 電影雜感 2.0] '벡델데이 2020'

  • 유선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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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9-04   |  발행일 2020-09-04 제39면   |  수정 2020-09-04
스크린 속 성평등 점검 '벡델 테스트'…차별없는 한국영화를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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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벡델 테스트(Bechdel test)'라는 게 있다. 미국의 여성 만화가 앨리슨 벡델이 1985년 고안한 것으로 영화 속에 여성이 얼마나 빈번하고 주도적인 캐릭터로 등장하는지 평가하는 일종의 영화 성평등 테스트다. 벡델 테스트의 기준은 이렇다. 첫째, 영화 속에 이름을 가진 여성 캐릭터가 최소 두 사람이 나올 것. 둘째, 이들이 서로 대화를 나눌 것. 셋째, 해당 대화 소재나 주제는 남자 캐릭터에 관한 것이 아닐 것. 얼핏 단순해 보이는 기준이지만, 남성 중심 서사가 대다수를 차지하는 영화계에서 젠더 개념을 얼마나 반영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미디어 테스트라 의미가 있다. 이 기준으로 한국영화를 살펴보면 통과하는 영화가 몇 편이나 될까. 지난 2월13일 영화진흥위원회가 발표한 2019년 한국영화산업 결산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영화 흥행 30위 영화 중 13편(43.3%)이라고 한다.

'벡델데이 2020' 오늘 온라인 중계
한국영화속 '젠더' 반영 벡델 테스트
2019년 흥행 순위 30위 작품 중 13편
지난 10년간의 韓영화 돌아보고 점검
양성평등 지향, 풀어야 할 과제 모색
성평등 공헌 영화인 '벡델리안' 시상


한국영화계가 이처럼 양성평등의 관점에서 영화를 바라보는 관객들의 변화와 요구에 적극적으로 응할 수 있도록 독려하기 위해 기획된 것이 '벡델데이 2020'이다. 이 행사는 양성평등주간의 첫 영화 관련 행사이자 문화체육관광부 주최로 한국영화감독조합이 주관해 기획한 것으로, 2019년 1월1일부터 2020년 6월30일까지 개봉한 한국영화 가운데 벡델 테스트를 기본 바탕으로 자체 심사 기준을 추가해 양성평등과 영화 다양성 진작에 기여한 영화를 '벡델 초이스 10'이란 이름으로 선정했다. 선정 기준에는 기존 벡델 테스트 항목에 다음 항목이 추가됐다. 첫째 감독·제작자·시나리오 작가·촬영감독 중 1명 이상이 여성 영화인일 것. 둘째 여성 단독 주인공 영화이거나, 여성 단독 주연이 아닐 경우 여성 캐릭터의 역할과 비중이 남성 주인공과 동등할 것. 셋째 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적 시선을 담지 않을 것. 이는 영화뿐 아니라 영화산업 고용에 있어서의 성평등도 중요하다는 취지를 살린 것이다.

'82년생 김지영'(김도영 연출)은 2016년 10월 출간되어 2년여 만에 누적 판매 부수 100만 부를 돌파하면서 하나의 사회 현상이 되기도 한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했다. '메기'(이옥섭 연출)는 단편영화들을 만들던 시절부터 독특하고 개성이 넘치는 작품들을 선보였던 이옥섭 감독이 국가인권위원회의 의뢰를 받아 완성한 장편영화 데뷔작이다. '미성년'(김윤석 연출)은 처음 직면하는 인생의 시련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하는 다섯 인물들이 겪는 성장통을 그렸다. 배우 김윤석의 연출 데뷔작이기도 하다. '벌새'(김보라 연출)는 개봉 전에 이미 전 세계 유수 영화제에서 25관왕을 달성하며 화제를 불러 모았던 작품으로, 1994년 알 수 없는 거대한 세계와 마주한 14세 '은희'의 보편적이고 찬란한 기억의 이야기다. '아워 바디'(한가람 연출)는 몸도 마음도 지쳐버린 '자영'이 우연히 달리는 '현주'를 만나 세상 밖으로 나오는 이야기로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올해의 배우상(최희서)을 거머쥐었다.

벡델데이.2020_로고

'야구소녀'(최윤태 연출)는 고교 야구팀의 유일한 여성이자 시속 130㎞ 강속구로 천재 야구소녀로 불리는 '수인'이 졸업을 앞두고 프로를 향한 도전과 현실의 벽을 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담은 성장 드라마다. '우리집'(윤가은 연출)은 누구나 갖고 있지만 아무도 말하지 않는 가족의 문제를 풀기 위해 어른들 대신 직접 나선 아이들의 빛나는 용기와 찬란한 여정을 담은 영화이다. '윤희에게'(임대형 연출)는 우연히 한 통의 편지를 받은 '윤희'가 잊고 지냈던 첫사랑의 비밀스러운 기억을 찾아 설원이 펼쳐진 여행지로 떠나는 이야기를 그린 감성 멜로물이다. '찬실이는 복도 많지'(김초희 연출)는 존경하는 영화감독과 함께 영화를 만드는 일에 모든 걸 바쳤던 '찬실'이 감독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마주한 현실을 솔직하고 코믹하게 다룬 영화로 김초희 감독이 실제 영화 현장에서 프로듀서로 일했던 경험을 녹여 끝까지 영화를 포기하지 않은 수많은 이들을 응원한다. '프랑스여자'(김희정 연출)는 20년 전 배우의 꿈을 안고 프랑스로 떠난 '미라'가 서울로 돌아와 옛 친구들과 재회한 후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을 그린 작품으로, '열세살, 수아'로 데뷔한 김희정 감독의 네 번째 연출작이다.

벡델데이 2020은 4일 오후 7시 포털사이트 네이버를 통해 온라인으로 중계될 예정으로 행사는 1부 심포지엄과 2부 라운드테이블로 구성된다. 1부 심포지엄은 '한국영화, 벡델 테스트를 만나다'라는 주제로 벡델 테스트를 통해 지난 10년간의 한국영화를 돌아보고, 양성평등을 지향하기 위해 한국영화계가 풀어야 할 과제를 모색한다. 조혜영 영상예술학 박사가 한국영화 속 양성평등 현황을 분석한 '스크린 안과 밖 모두의 성평등을 위하여'를 발제하기로 했다. 거기에 카이스트 인터랙티브 미디어랩이 벡델 테스트의 정신을 바탕으로 AI를 통해 앞서 기술한 '벡델 초이스 10'의 성별 재현 현황을 분석한 결과를 공유하기로 했다.

2부 라운드테이블은 '벡델리안과 차별 없는 영화를 말하다'라는 주제로 영화를 통해 양성평등을 실현하는 데 공헌한 부문별 영화인인 '벡델리안' 시상식을 진행할 예정인데, 벡델리안으로 선정된 벌새의 김보라 감독, 미성년의 이보람 작가, 우리집을 제작한 김지혜 아토ATO 공동대표와 함께 '벡델리안과의 대화'도 마련되어 있다. 변영주 감독과 김보라 배우가 사회자로 참여할 이 대화 시간에는 벡델리안 선정 소감과 함께 양성평등을 지향하는 영화를 기획·집필·감독·연기하기 위해 어떤 과정을 거쳐 왔는지 현장의 경험담을 들을 수 있다고 한다.

벡델데이 2020 로고의 이름은 '균형의 눈'이라고 한다. 벡델의 대문자 B와 영화계의 성평등을 향해 끊임없이 지켜보는 눈을 함께 형상화했다고. 벡델 테스트를 통과한 이 반짝이는 영화들 덕에 지금 여기 한국영화는 이만큼 풍성해졌다. 이번 행사가 이 비대칭의 한국영화계를 바로 세우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언택트 시대에 맞는 관객들의 참여가 필수적일 것이고. 영화감독·물레책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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