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냉장고의 불편한 진실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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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9-18   |  발행일 2020-09-18 제35면   |  수정 2020-09-18
저온장해·동결화상·저온성 세균…냉장고가 만든 '冷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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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장고도 저기압과 고기압처럼 두 개의 세계로 분리돼 있다. 바로 냉장실과 냉동실이 있다. 냉장이란 얼리지 않고 식품의 온도만 낮추는 것이며 보통 가정용 냉장실의 온도는 4℃ 부근이다. 반면 냉동은 식품 내부의 수분을 얼리는 것으로 가정용 냉동실의 온도는 -18℃로 맞춰져 있다. 식품의 온도를 주변보다 낮추면 식품에 있는 미생물의 성장과 활성이 억제되고 효소활성을 포함한 화학반응이 억제된다.

그렇다면 냉장고 식품은 늘 신선하고 안전할까. 식품을 냉장실과 냉동실 중 어디에 넣는지에 따라 달라지지만 냉장고 내부에서도 식품의 변질은 진행된다. 일반적으로 냉장실에 보관하는 대부분의 과일과 채소는 얼지 않는 최저온도에서 저장하는 것이 가장 오랫동안 저장할 수 있다. 그래서 상업적으로 과일과 채소를 저장할 때는 0℃ 부근에서 저장한다. 하지만 일부 과일과 채소는 이런 온도에서 저장하면 더 빨리 변질된다. 가지, 감자, 고구마, 바나나, 오이, 토마토, 호박, 풋고추 등이 이에 해당하며 저장온도가 낮으면 더 빨리 상하므로 저온장해(Chilling injury)를 받는 과채류라 한다. 이런 식품을 냉장실에 일주일 이상 두면 표면의 색이 바뀌거나 과육이 허물어져 부패되면서 식품가치를 잃게 된다. 저온장해를 받는 식품은 냉장고에 넣는 것보다 비닐 봉지에 담아 선선한 뒷베란다 같은 곳에 두는 것이 더 좋다.

냉장고에 넣어놔도 식품 변질
가지·감자·바나나·호박 등은
저온서 보관하면 더 빨리 변질

상대습도 90% 넘어야 신선 유지
가정용 냉장실은 그보다 낮아
지퍼백에 밀폐하면 오래 보관

◆냉장고 습도

냉장실에 식품을 넣을 때는 냉장고 내부의 습도를 고려해야 한다. 대부분의 신선한 과일과 채소는 주변 상대습도가 90% 이상 돼야 신선한 상태로 유지할 수 있다. 그런데 가정용 냉장실의 습도는 90%보다 낮아 냉장고에 식품을 그냥 넣으면 잘 시든다. 그래서 쇼핑한 신선식품은 지퍼 백 등에 담고 밀폐시켜 냉장실에 두면 오랫동안 보관할 수 있다.

식품을 냉동실에 넣으면 냉장할 때보다 훨씬 더 저장성이 높아진다. 냉동식품은 다른 가공식품보다 안전하고 먹기 편리하며 품질, 맛과 영양 유지에 탁월하다. 특히 전자레인지(Microwave) 보급이 확산되면서 식탁에 냉동식품이 차지하는 비중이 계속 높아지고 있다. 미국의 경우 텔레비전을 보면서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냉동식품 저녁식사인 '티비디너(TV dinner)' 시장이 연간 40억달러를 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냉동식품이라 해서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식품이 얼면 내부의 수분이 얼음으로 변하면서 부피가 커진다. 이때 생성된 얼음이 식품의 내부 조직을 파괴시켜 맛이 나빠지고 영양성분이 손상된다. 또한 동결식품은 저장 중 표면성분이 변질되는 '동결화상(Freezer burn)'이 일어나기도 한다. 그 외 식품의 지방산화, 효소적 갈변, 엽록소 및 비타민의 파괴, 단백질변성도 일어난다. 냉동식품의 저장기간이 긴 것은 사실이지만 엄밀하게 냉동고 안에 있는 식품도 상한다는 말이다. 특히 가정용 냉동실에 둔 식품에서 더 많이 발생한다. 가정용 냉장고의 성능이 상업용을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냉동식품을 사서 먹을 경우 유통기간을 반드시 확인하고 지켜야 한다. 냉동실에 넣어 둔 식품을 언제까지라도 먹을 수 있는 것처럼 오해해서는 안 된다.

냉동실 안에서도 3개월이 지나면 신선도가 떨어질 수 있다. 또 냉동실은 습도가 낮은 편이기 때문에 식품이 건조해지고 저온성 세균이 활성화된다. 냉동실 안에서도 식품의 종류나 익힘 정도에 따라서 보관 기간이 달라진다. 건어물은 1개월, 밥은 2개월, 데친 채소는 3개월, 국물은 1개월, 생닭은 12개월, 소고기는 6~12개월이 냉동 기한이다.

◆채소 과일 보관법

무엇보다 채소가 원하는 환경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마늘이나 월동배추, 시금치와 같이 겨울을 날 수 있는 작물은 비교적 서늘하게(영하 2℃~ 1~2℃) 보관하고, 수박이나 오이처럼 여름이 제철인 채소는 비교적 높은 온도에서(10~15℃) 저장한다. 바나나, 오렌지, 아보카도와 같은 열대 과일은 실온에서 보관하는 것이 좋다. 습도가 높은 곳에서 자라는 파프리카·가지와 같은 작물은 다른 작물에 비해 많은 수분이 필요하다. 물컵이나 물통을 같이 넣어 수분을 보충해줄 수 있다.

채소를 냉장 보관할 때는 가능한 한 재배 환경과 비슷하게 보관해야 한다. 배추처럼 위로 성장하는 채소는 세워서 보관한다. 눕히면 일어나려는 습성 때문에 영양분이 손실된다. 껍질과 뿌리는 제거하지 않고 먹기 전에 손질하면 끝까지 신선하게 먹을 수 있다.

사과는 성숙호르몬인 '에틸렌'이 방출되어 다른 과일을 쉽게 상하게 하므로 분리해서 보관하는 게 좋다. 랩이나 비닐 팩으로 하나씩 밀봉 후 냉장 보관하면 수분이 날아가는 것을 방지하면서 신선함을 오래 유지할 수 있다. 배는 신문지를 한번 감싼 후 비닐 팩에 담아 냉장 보관한다. 냉장고나 김치냉장고 바닥에 신문지를 깔면 습기를 제거하는 효과가 있어 더 오래 보관할 수 있다. 포도의 경우 포도 봉지에 싸인 채로 넣거나 신문지로 한 겹 더 싸서 냉장 보관한다. 밤을 오래 보관하려면 속껍질까지 벗긴 후 물에 담갔다가 말려 냉동 보관하는 것이 좋다. 오이는 물기를 닦아 비닐봉지에 넣은 뒤 꼭지 부분이 위로 가도록 세워놔야 한다. 당근은 흙이 있는 상태로 보관하거나 씻지 말고 필요한 부분만 잘라 사용하고 종이 타월에 포장해두거나 쓰고 난 양파망에 넣어 페트병에 세워서 보관하면 오래두고 먹을 수 있다.

◆냉장고 잘 사용하기

투명용기 및 정리표를 이용해 버리면 음식물 쓰레기 줄이는데 도움이 된다. 음식을 만들다 보면 식재료가 남을 때가 있다. 이럴 때는 투명한 밀폐용기를 활용해 식재료를 보관하는 것이 좋다. 불투명한 용기에 보관 시, 조리할 때마다 무엇이 들어있는지 일일이 열어봐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주부들은 식재료를 사놓고 어떤 식재료가 냉장고에 있는지 몰라 버리는 경우가 많다. 현명한 주부라면 냉장고에 음식과 보관 일자 등을 적어두는 '정리표'를 만들어 부착해놓자. 정리표를 활용하면 냉장고 속에 어떤 내용물이 있는지 한 번에 찾을 수 있어 에너지 절약 효과가 있으며 불필요한 식재료 구입을 사전에 방지할 수 있어 경제적이다. 게다가 날짜나 재료의 유통기한을 지속적으로 체크하다 보니 늘 신선한 식재료를 이용해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먹을 수 있다.

식빵이나 오렌지 껍질 등을 활용해 냉장고 속 퀴퀴한 냄새를 없애보라. 음식물을 냉장고에 보관하다 보면, 냄새가 한데 섞여 악취가 발생되기도 한다. 냉장고 안 악취는 음식의 맛과 신선도를 떨어뜨리는 원인이 된다. 따라서 수시로 관리해주는 것이 좋다. 냉장고 전체에 배인 냄새를 제거하고 싶다면 유통기한이 지난 식빵을 활용해보자. 방법은 식빵을 태운 후 알루미늄 포일에 싼 다음 구멍을 내어 냉장고에 넣어두면 된다. 숯과 비슷한 흡착 효과를 볼 수 있어 냉장고의 오래되고 퀴퀴한 냄새를 제거할 수 있다. 또한 면 주머니에 말린 오렌지 껍질을 담아 냉장고 안에 넣어두면 오렌지 특유의 상큼한 향이 냉장고 속 불쾌한 냄새를 없애는 데 도움이 된다.

냉동하면 내부수분 얼어 조직파괴
보관기간 늘지만 영구적 아니야
건어물 1개월·소고기는 최장 1년

투명용기·정리표로 낭비 줄이고
식빵·숯 등 사용하면 냄새 잡아
식품종류 칸별로 나눠 관리도 '팁'

최근에는 냉장고를 구매하고도 정리정돈을 어려워하는 주부들을 겨냥해 멀티 보관이 가능한 냉장고가 인기를 얻고 있다. 디오스 김치톡톡은 칸별로 냉장·냉동·김치보관 등을 따로따로 설정할 수 있는 멀티형 김치냉장고다. 김치를 보관하지 않을 때는 일반 냉장고로도 사용할 수 있다. 상칸은 냉장·냉동식품 보관에 적합하며, 중칸에는 육류·야채·과일을, 하칸에는 쌀·잡곡·야채류를 두면 좋다. 따라서 김치는 물론 다양한 식재료들을 최적의 상태로 보관 가능하며, 주부들이 냉장고를 손쉽게 관리 및 정리할 수 있어 편하다.

육류는 한 번 먹을 분량씩 나눠서 냉동한다. 나누지 않고 한꺼번에 냉동한 육류는 전부 녹여야 하므로 다 먹지 못하고 버리는 일이 생긴다. 또 간단하게 소금과 후춧가루를 뿌려서 냉동해두면 반쯤 녹은 상태에서도 가열해서 요리할 수 있다. 냉동실에 성에가 생겼을 때는 음식물을 모두 꺼낸 후 분무기를 이용해 뜨거운 물을 뿌려두면 된다.

식품별 보관방법도 유의해보라.

새우젓은 염도가 높아 냉동실에 넣어도 거의 얼지 않는다. 두부는 신선한 상태로 냉동실에 보관하면 장기간 먹을 수 있다. 두부를 얼리면 구멍이 생겨 변질됐다는 생각에 버리는 경우가 많은데, 두부 속 구멍은 단백질이 응축되며 생긴 것이므로 양념이 더 잘 밸 수 있고 더욱 쫄깃쫄깃한 식감을 느낄 수 있다. 밀가루, 부침가루, 튀김가루 등 산소와 접촉하는 면적이 넓은 가루 음식은 잘 밀봉해서 냉동 보관하면 장기 보관할 수 있다. 최근 시판하는 간장은 염도가 비교적 낮은 편이므로 개봉한 간장은 꼭 냉장실에 보관하는 것이 좋다. 마요네즈를 냉장 보관하면 기름이 분리되는데, 기름이 분리된 마요네즈는 더이상 사용가치가 없다고 보면 된다. 마요네즈는 10℃ 정도의 실온에서 보관하면 1년 정도 먹을 수 있다.

이춘호 음식·대중문화 전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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