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선태의 줌人] 소외이웃 무료진료 '진짜 의사' 김동은 계명대 동산병원 교수 <하>

  • 유선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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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10-16   |  발행일 2020-10-16 제35면   |  수정 2020-10-16
"의대생 증원, 검토 충분하다면 반대 안해…정치적 지역안배 형식은 곤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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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은 계명대 동산병원 교수(이비인후과)에게 책을 발간하게 된 배경을 물었다. 그는 이렇게 답했다. 병원에 생로병사가 다 있다. 환자들에 대한 기록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틈틈이 글을 썼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출판사에서 책을 엮으면 어떻겠냐고 제안해 왔다. 제가 쓴 책을 시민들이 1만5천원이나 주고 사겠다는 생각에다 책 130권을 만드는데 20년생 나무 한 그루가 들어간다는 사실에 (책 발간을) 거부했다. 하지만 의료현장의 이야기를 여러 사람에게 알리는 것도 의미있을 것 같고 책을 내기 위해 원고를 정리하다 보면 초심으로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에 출간했다. 지난 8월에 1쇄한 2천부가 다 팔렸고 2쇄를 마쳤다. 이 책은 지난 5일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학나눔' 수필 분야에 선정됐다.

▶책에서도 언급하셨지만 우리는 어떻게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가.

"이 질문에 답하기에는 제가 아는 것이 너무 적다. 다만 코로나19가 그동안의 우리 삶을 진지하게 돌아보고 반성하게 하는 것만은 사실이다. 만물의 영장이라며 무분별하게 환경을 파괴해 온 동안 인간들의 삶을 '생태 중심의 삶'으로 빨리 전환하지 않으면 반복되는 인수공통전염병의 대유행을 막기 어려울 것 같다. 일상의 삶 속에서 그동안 인식하지 못했던 거품과 낭비를 걷어내는 것 또한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뉴노멀'이 아닐까 생각한다. 일례로 많은 학술대회나 회의가 온라인으로 진행되면서 처음에는 다소 어색했지만 서서히 장점이 많은 것을 느끼게 된다. 서울을 오가며 써야 했던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었다. 온라인 수업에 대한 학생들의 반응 역시 긍정적이다. 그동안 우리가 과도하게 서로 많이 만나고 필요 없이 너무 멀리 이동하고 쓰지 않아도 되는 에너지를 낭비하면서 살아왔음을 코로나 사태를 맞아 깨닫게 됐다. 다만 이러한 삶의 변화 속에서도 서로의 따뜻한 휴머니즘을 나누는 방법은 끊임없이 고민해야 할 것 같다."


우리는 과도하게 만나왔다
서울서 열던 학술대회·회의
코로나로 온라인으로 진행
서울가던 시간·에너지 절약

돈과 거리 멀어보이는 의사
의료상업화 속 양심 지키고
인도주의실천의사협회 활동
돈으로 환산하기 힘든 기쁨


▶의사라고 하면 우리 사회에서 성공한 사람들이다. 사회적 지위는 물론 당연히 경제적인 여유까지 보장받는다. 그런데 교수님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회원이다. 죄송하지만 돈하고는 조금 거리가 멀어 보인다. 이 길을 가게 된 동기가 있으신지, 지금도 자신의 선택에 만족하시는지.

"가끔 신문에 의사들의 수입이 보도되는데 그 기준으로 보면 말씀하신 대로 저는 돈하고 거리가 많이 있다. (웃음) 그러나 취업하기 너무나 힘든 오늘의 청년들 앞에서 이런 말을 하기에는 부끄럽고 미안하다. 살아가는데 불편하지 않을 정도의 월급을 병원에서 받고 있기 때문이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회원이라고 특별한 삶을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의료 현장에서 '돈보다는 생명'을 먼저 생각하며 환자들을 만나려 노력하고 있다. 의료마저 상품처럼 거래되는 '의료 상업화'의 무서운 파도 속에서 의사가 지녀야 할 양심을 지키고자 나름 애쓰고 있다. 소외된 우리 사회의 취약 계층의 건강을 지키기 위한 활동은 돈을 버는 일이라기보다는 돈이 나가는 일이기는 하다. (웃음) 그러나 그런 활동 속에서 돈을 버는 과정에서 얻기 힘든, 결코 단순히 돈으로 환산하기 힘든 너무나 크고 값진 기쁨과 보람을 얻을 수 있기에 감사한 마음이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활동을 후회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어떤 계기로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회원이 되셨냐고 물었더니 다소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의대 1학년때인 1995년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창립 회원 모집을 광고를 보고 찾아가자 다른 분들이 모두 의아해 하길래 "저도 와도 되는 줄 알았다"고 말하고는 가입서를 제출했다. 그리고 본격적인 활동은 2007년 전문의 자격을 취득한 후라고 말했다.

▶교수님이 쓰신 책에 의과대학 면접시험에서 어떤 의사가 되고 싶으냐는 면접관의 질문에 인간미 넘치는 의사가 되고 싶다고 답변했다고 쓰여 있다. 25년이 지난 지금 그 답변을 실천하고 계신다고 생각하는지.

"출판사에서 책을 내자고 여러 번 제안했지만, 고사하다가 이번에 부끄럽게도 책을 내게 된 이유 중 하나가 질문하신 대로 '인간미 넘치는 의사'가 되겠다던 처음의 다짐을 다시 떠올려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저와 만나는 환자들이 저를 '인간미 넘치는 의사'로 생각하는지 저는 알 수 없다. 아마 많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분이 많지 않을까 생각된다. 다만 진료를 볼 때나 수술실 수술대 앞에서나 회진하러 간 병실에서나 '인간미 넘치는 의사'가 되고자 했던 초심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후배들 그리고 의대 학생들 앞에서 '인간미 넘치는 의사'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생각은 늘 하고 있지만 실제로 그런 롤 모델이 되고 있다고 자신하기 어렵다. 부끄럽다. 의과대학생들과 전공의 선생님들에게 의사가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마음이 인간미를 바탕으로 한 '측은지심(惻隱之心)'이라고 말한다. 가운을 벗고 환자 곁을 영원히 떠나는 그 순간까지 몸과 마음이 아픈 환자들 앞에서 이러한 마음을 가진 의사가 되기 위해 저부터 더 노력해야 할 것 같다."

▶저소득층, 북한이탈주민, 이주노동자 등 소외된 계층을 위해 많은 일을 하고 계신다. 동기가 있으신가.

"특별한 동기는 없다. 저는 가난하지도 그렇다고 부유하지도 않은 평범한 가정에서 자랐다. 다만 어릴 적부터 오지랖이 넓어 좀 어렵고 주변에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보이면 늘 도와주려 했다는 말씀을 부모님께 들은 적은 있다. 어릴 때부터 장래 희망을 물어보면 '의사'라고 대답했다. 학창 시절에 왜 의사가 되려고 하는지 누군가 물었을 때 의사가 되면 돈이 많이 없더라도 직접 찾아가 몸으로 부딪치며 어려운 이웃을 도울 수 있을 것 같아서라고 대답한 기억이 있다. 의사가 된 이후 노숙자, 쪽방 주민, 북한 이탈주민, 장애인, 그리고 이주노동자들과 지속해서 만나고 있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그분들이 몸과 마음이 아플 때 제대로 치료받기 힘든 사회적 약자로 생각되고 제가 그들에게 혹시나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다."


인간미 넘치는 의사 되고싶다
초심 잃지 않기 위해 책 펴내
의사의 마음가짐은 측은지심
부모님이 주변 도우라 교육

기술자 아닌 '굿닥터' 키우자
의대서 의료윤리학 강조해야
커뮤니티케어·주치의 제도가
바람직한 원격진료의 밑바탕


▶이번 코로나19를 계기로 의사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많이 변한 게 사실이다. 하지만 아직도 의사들은 사회 속으로 완전히 녹아들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원격진료와 의대생 증원 등과 같은 사회적 요구에 대한 의사집단의 반발이 최근의 예다. 교수님의 생각은 어떠신지.

"아직도 의사들은 사회 속으로 완전히 녹아들지 못하고 있다는 말씀에 저도 공감한다. 많은 사람이 자녀들은 의대에 보내기를 바라지만 정작 의사들을 바라보는 시각은 매우 곱지 않다는 것을 의료 현장에서 많이 느낀다. 저희 의사들부터 국민들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더 귀를 기울이고 소통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번 의사들의 파업으로 국민들께 불편과 걱정을 끼쳐 죄송한 마음이다. 코로나19 최전선으로 뛰어드는 의사들을 보며 잊었던 '진짜 의사'의 모습을 떠올린 국민들께서 크게 실망하셔서 안타깝다. 의사들의 영향력은 파업과 같은 단체행동이 아니라 환자들 곁에서 최선을 다할 때 나온다고 생각한다. 아울러 어떠한 의료 개혁도 국민들과 함께해야 이룰 수 있다. 의과대학 교과 과정에 의사라는 직업의 올바른 태도, 가치, 철학을 가르치는 의료인문학, 인문사회의학, 의료윤리학 등이 더욱 강화되어야 국민들의 눈높이에서 소통할 수 있고 궁극적으로 천박한 의료기술자가 아니라 진정한 '굿닥터'를 길러낼 수 있다.

지금 논의되는 방식의 원격진료에는 저도 다소 우려가 있다. 무조건 원격진료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바람직한 원격진료가 되기 위해서는 미리 준비되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커뮤니티 케어'와 '주치의 제도'다. 대구의 환자가 서울의 빅5 병원의 의사에게 원격진료를 받는 형식은 국민 건강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원격진료에 필요한 장비를 판매하는 기업의 배만 불릴 가능성이 있다. 원격진료는 국민들이 커뮤니티 안에서 주치의가 정해지고 자신의 과거 병력을 잘 아는 주치의와 환자 간에 이루어질 때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코로나19 확산 시기에도 국민들에게 주치의가 있었다면 코로나19로 의심되는 증상이 있을 때 병원에 나오지 않고도 원격진료를 통해 도움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주치의는 대통령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충분한 검토를 통한 적정한 의대입학 정원 증원에 저는 반대하지 않는다. 다만 지금의 방식으로는 목적으로 내세우는 공공의료 강화나 의사가 부족한 지역에 대한 의료인력 보강이 쉽지 않을 것 같아 우려스럽습니다. 증원되는 입학 정원을 일부 사립 의과대학에 배정하거나 의대 신설을 바라는 지역에 정치적 안배 형식으로 배정해서는 곤란하다. 교육 환경이 좋은 국립대 의과대학에 배정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학생들에게는 배우는 과정에서부터 많은 혜택을 주는 대신 의사가 된 후 가급적 공적 의료기관에서 일할 수 있도록 유도하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좋은 공공병원의 확충이 선행되어야 하고 공적 의료기관의 근무 환경 및 처우를 획기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의사 김동은이 꿈꾸는 세상은 어떤 세상인지

"책을 선물할 때 책의 속표지에 '사람 향기 가득한 세상'이라고 쓰고 있다. 제가 꿈꾸는 세상이 바로 '사람 향기 가득한 세상'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상식이 통하고 반칙이 통하지 않는 세상,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는 세상을 바라고 있다. 병원에서 아픈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돈이 아니라 생명의 가치가 존중되는 의료 현장도 꿈꾸고 있다. 최소한 돈이 없어 치료를 받지 못하는 사람이 없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모든 인간이 누려야 하는 기본권 중 너무나 중요한 건강권을 인종이나 빈부와 관계없이 이 땅에 사는 모든 사람이 충분히 누릴 수 있는 세상이 됐으면 좋겠다."

▶의료현실뿐 아니라 세상의 차별과 온몸으로 부딪히면 저항하는 것 같다.

"우리 사회의 혐오와 차별에 민감한 편이다. 온몸으로 부딪히며 저항했다는 말씀을 듣기에는 제가 그동안 했던 노력이 너무나 보잘것없어 부끄럽다. 그동안 몸이 아픈 것만도 너무나 힘든데 세상 속에서의 차별에 더 아파하는 사람들을 적지 않게 만났다. 그들과 함께 아파하며 저절로 우리 사회의 혐오와 차별에 저항하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특히 암 환자들과 에이즈 환자들이 병원 안팎에서 당하는 혐오와 차별을 바라보며 안타까웠다. 코로나19 확진을 받고 완치되어 퇴원하는 환자들 역시 자신을 바라보는 주변의 차별적 시선을 가장 크게 걱정했다. 이주노동자 무료 진료소에서 오래 활동하다 보니 이주노동자들이 우리 사회에서 겪는 혐오와 차별을 많이 목격했다. 지난 3월 초 대구에 코로나 환자가 급증할 때 중국 이주노동자들이 집 밖으로 나오는 것조차 무서워할 정도였다. 그들은 최근 중국을 다녀온 적도 없고 우한이라는 도시를 가 본 적도 없었다. 우리 사회의 이러한 혐오와 차별이 서서히 개선되기를 바라고 있다. 미등록 이주노동자라는 이유로 그들이 치료받는 과정에서 겪는 병원에서의 차별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개선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힘이 많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유선태기자 youst@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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