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구 10월 항쟁 위령탑서 희생자 넋 기려

    • 이명주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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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10-14   |  발행일 2020-10-14 제11면   |  수정 2020-11-05

    위령제2
    대구 10월 항쟁 유족회는 최근 대구 달성군 가창면 용계체육공원 인근에 건립된 '10월 항쟁 등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위령탑' 앞에서 위령제를 지냈다.

    대구 10월 항쟁 유족회는 최근 내달 준공을 앞둔 대구 달성군 가창면 용계 체육공원 인근 '10월 항쟁 등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위령탑' 앞에서 유족과 시민 20여 명이 모인 가운데 위령제를 가졌다.

    대구 10월 항쟁은 광복 이듬해인 1946년 미군정 시절 대구에서 정부의 쌀 배급 정책 실패로 굶주리던 민중과 경찰이 충돌해 최소 수백 명의 사상자를 낳은 대규모 유혈 사태다. 대구시는 시비 6억원을 투입해 한국전쟁 발발 직후 군경이 대구형무소에 수감됐던 10월 항쟁 관련자 등 정치범들을 살해한 현장인 가창골 일대에 위령탑을 조성했다.

    이날 70·80대의 유족회 회원들은 위령탑의 중앙탑을 중심으로 양 날개처럼 펼쳐진 대리석에 새겨진 728명의 민간인 희생자와 유족회 명단을 보고 눈물을 훔쳤다.

    강호재(79) 유족회 간사는 "위령탑 건립과 동시에 아버지의 유택이 마련됐다는 점에서 진짜 아버지를 보고 간다는 마음이 들어 눈물이 난다"고 유족들의 마음을 전했다.

    유족들은 남편, 아버지를 잃은 슬픔을 속으로 삭이며 연좌제의 고통 속에 긴 시간을 보냈다. 55년이 지난 2005년에 이르러야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기본법'이 제정됐고, 이후 본격적으로 진실 규명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2016년 대구시 '10월 항쟁 등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위령 사업 지원 등에 관한 조례'를 통해 명예회복에 한 발 더 다가갔다. 올해 위령탑이 건립되면서 마침내 유족들은 보고 만질 수 있는 아버지의 유택이자 유산을 품을 수 있게 됐다.

    채영희 유족회장은 "1946년 10월 항쟁이 일어나면서 8천여 명에서 1만여 명이 학살됐다"며 "대다수 대구시민은 10월 항쟁을 모르고 대구 근대박물관에 한 줄 정도 적힐 정도로 기록으로도 남아 있지 않다"며 대구 10월 항쟁에 대한 교육과 홍보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글·사진=이명주 시민기자 impsee@hanmail.net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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