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경의 영화의 심장소리] '죽은 시인의 사회' (피터 위어 감독·1989·미국 2016 재개봉)

  • 유선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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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11-06   |  발행일 2020-11-06 제39면   |  수정 2020-11-06
모두의 가슴에 詩가 살아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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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에 어울리는 영화 한 편을 고른다. 한국인이 다시 보고 싶은 영화 1위에 선정되었고, 2016년에 재개봉된 '죽은 시인의 사회'다. 가을 풍경이 아름답게 담긴 이 영화의 배경은 1950년대다. 전통과 규율의 명문 웰튼 고등학교에 새로운 영어선생이 부임한다. 키팅 선생의 자유로운 가르침 아래 아이들은 새로운 시각으로 인생을 바라보는 훈련을 한다. 수업 첫날 선생이 가르쳐준 '카르페 디엠(현재를 즐겨라)'을 외치며 비밀모임 '죽은 시인의 사회'를 결성한다. 자유롭고 희망찬 날들을 보내지만 이내 혹독한 시련이 닥친다. 누구보다 키팅 선생을 따르던 닐의 죽음은 모두를 비통하게 한다. 죽음의 배후로 지목된 키팅 선생이 학교를 떠나던 날 아이들은 하나 둘 책상 위에 올라가 외친다. "오 캡틴, 마이 캡틴." 내성적이고 앞에 나서길 꺼리던 토드가 맨 먼저 외친다. 눈물이 글썽한 채 "당신의 가르침을 잊지 않겠어요"라고 말하는 것 같다.

기억나는 명장면, 명대사가 많다. 키팅 선생은 시의 구조를 분석하고, 시를 평가하는 책의 서문을 찢어버리라고 한다. 의학과 법, 경제, 기술은 삶에 필요한 수단일 뿐 시와 낭만, 아름다움과 사랑이 인생의 목적이라고 가르친다. 고인이 된 선배들의 사진을 보며 이들의 목소리를 들으라고 한다. 우리 모두는 언젠가 죽는다며 "카르페 디엠"을 외친다. 지금 현재를 즐기며 인생을 소중히 여기라 한다.

아카데미 각본상을 받은 이 영화는 기자 출신의 여류작가 N. H. 클라인바움의 소설이 원작이다. '트루먼 쇼'로 유명한 호주 출신 감독 피터 위어가 연출했다. '죽은 시인의 사회'라는 제목은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시에 나오는 구절이다. 키팅 선생이 자신을 부를 때 쓰라던 "오 캡틴 마이 캡틴"은 링컨 대통령이 암살당했을 때, 월트 휘트먼이 그를 기리며 쓴 시다. 동굴에서 시를 읽는 모임을 일컫는 '죽은 시인의 사회'는 시의 향연으로 가득하다. 아이들은 휘트먼과 소로, 셸리의 시를 읽는다. "장엄한 연극은 계속되고 너 또한 한 편의 시가 된다는 것". 시의 감동에 멍해지는 사춘기 남자 아이들의 모습이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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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경 시인·심리상담사

언젠가 수능을 친 아들이 본 영화는 '세 얼간이(인도판 '죽은 시인의 사회)'와 이 영화였다. 결국 재수를 하게 됐지만, 이 영화들은 아들의 마음을 온통 흔들어 놓았던 것 같다. 키팅 선생의 가르침을 충실히 따르는 것처럼, 나름 독특한(?) 자신의 길을 가고 있다. 별 수 없이 기성세대인 나의 눈에는 그 행보가 답답해 보이고, 자주 불안하지만 몇 번씩 마음을 고쳐먹는다. 다만 응원하고 지지하기로, 더 기다려 보기로. 우리 앞길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 영원한 응원군이 되리라 한 번 더 마음먹는다.

"사물을 다른 각도에서 봐. 바보 같아 보여도 시도를 해" 가장 기억에 남는 키팅의 가르침이다. 그의 말처럼 사물을 새로운 눈으로 볼 수 있기 바란다. 그렇게 내 가슴에 시가 살아있기를 바란다. 어쩌면 코로나 시대가 주는 교훈도 이런 건지 모른다. 지금까지의 삶을 되돌아보고, 다시 새롭게 시작하라고. 시대도, 아들도 불안해보이긴 마찬가지다. 하지만 키팅 선생의 가르침대로 다른 각도에서 보자면, 이 불안함이야말로 새로운 내일로 가는 힘이 아니겠는가.
김은경 시인·심리상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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