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가기 딱 좋은 청정 1번지 영양] <10> 수비면 죽파리 검마산 자작나무 숲

  • 류혜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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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11-16   |  발행일 2020-11-16 제11면   |  수정 2020-11-27
자작자작…늦가을 당신을 기다리는 하얀 나무들의 속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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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유림 명품 숲으로 선정된 영양군 수비면 죽파리 검마산 자작나무숲. 투명한 공기처럼 솟구친 하얀 나무들의 절도 있고 순결한 기립이 장관이다.

'당신을 기다립니다.' 그가 가슴에 품은 말은 기다림이다. 무진장한 기다림이다. 그리도 곧게, 그리도 하얗게 낮과 밤을 지새우는 기다림이다. 온 산을 뒤덮은 기다림이고, 수십 년을 키워 온 기다림이다. 가슴에 검은 옹이가 수없이 박히도록 인내하는 기다림이다. 그는 먼 곳에 있다. 깊이 숨은 듯이 있다. 그러나 우리가 다가가면, 그는 아주 확실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자작나무 숲이다.

#1. 긴 물결 따라 깊은 숲으로 간다

자작나무 숲을 만나러 장파천(長波川)을 따라 간다. 천의 긴 물결은 오십봉이며 검마산에서 온 것이고 심지어 울진 백암산의 서쪽 기슭에서도 흘러 들었다. 천변의 마을은 죽파리(竹坡里)다. 원래는 대두들이었다고 한다. 큰 언덕이라는 뜻일 것이다. 마을을 개척한 이는 보부상들이었다고 한다. 울진과 영덕의 해산물을 지고 팔러 다니다 이곳에 정착했는데 그 큰 언덕에 대나무가 많아 죽파라 불렀다고 전한다. 죽파리 마을회관을 지난다. 지금 마을 고샅길의 이름은 하죽파다. 마을을 지나 한참을 달린다. 인가도 없고 이따금 작은 밭들만 스치는 9할이 산인 길이다. 산 속에 줄곧 멈추어 있는 것만 같은 긴 길이다.


1993년 축구장 42개 크기의 숲 조성
현재 2㎞ 숲길 내년까지 11㎞ 연장
힐링센터·숲체험원·안내센터 계획
최근 산림청 국유림 명품 숲 선정도



천을 향해 거대한 몸을 기울인 느티나무와 마주친다. 옆에는 작은 성황당이 있고 맞은편에 장파경로당이 자리한다. 이곳은 상죽파다. 자연부락의 이름은 장파(將坡)로 장파천과 음은 같지만 뜻이 다르다. 조선 인조 16년인 1639년 김충엽(金忠葉)이라는 이가 마을을 개척하면서 장군과 같이 기개와 정기가 높아지라고 붙인 이름이라 한다. 이곳에서 자작나무 숲 입구까지는 약 4.8㎞의 임도다. 도보로 1시간, 차량으로는 15분이 소요된다. 약 1.6㎞ 이동하면 기산마을로 이어지는 임도 삼거리에 닿는다. 여기까지는 승용차로 올 수 있지만 이후로는 무리다. 걸어야 하는 3.2㎞는 다소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 그러나 내내 놀랍도록 청명한 계곡이 그 길을 함께해준다. 울퉁불퉁하고 꺼칠꺼칠한 길에 눈길이 닿고 투명하리만치 맑은 단풍들에 시선이 멈춘다. 어느 순간 휴대전화마저 끊긴다. 깊은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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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부락 장파마을에서 자작나무 숲 입구까지 이어지는 약 4.8㎞의 임도. 숲까지 도보로 1시간, 차량으로는 15분 정도 소요된다.

#2. 자작나무 숲

달처럼 환하다. 하얀 몸에 새겨진 검은 옹이들이 수천 개의 눈이 되어 일시에 나를 바라본다. 투명한 공기처럼 솟구친 하얀 나무들의 숲, 절도 있고 순결한 기립 앞에서 그만 먹먹해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나무 앞에서 인간은 꿈을 꾸고 꿈속에서 그의 내적인 움직임을 들을 수 있다. 자작자작 시린 기척, 자작자작 신열에 희미해지는 속삭임, 자작자작 묵묵한 상처. 온 산이 자작자작 한다.

자작나무 숲은 아주 넓다. 산 전체가 아예 자작나무다. 숲은 1993년 조성되었다. 아직 삼십 세가 되지 않았지만 줄기의 굵기는 60㎝가 넘고 키는 20m 정도로 까마득하다. 숲의 전체 면적은 34㏊로 축구장 42개 크기라 한다. 최근에는 산림청으로부터 국유림 명품 숲으로 선정됐다.

숲 속으로 아담한 오솔길이 이어진다. 차분하고 화사한 길이다. 현재 자작나무 숲길은 2㎞가 조성돼 있으며 내년까지 총 11㎞가 조성될 예정이다. 그리고 자작나무 숲 힐링센터, 자작나무 숲 체험원, 에코로드 전기차 운영, 숲길 안내센터, 숲길 등산 지도사 배치 등을 찬찬히 이뤄나갈 계획이다. 분명 지금도 충분하다. 귀 기울이는 사건, 사로잡힘의 사건 이외에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 지금. 느리고 나태하게 걸으면서 조용히 그들의 존재를 즐기는 지금도 충분하다.

자작나무는 '자작자작' 소리를 내면서 탄다고 해서 자작나무가 되었다. 수피는 겹을 이루고 있고 기름기가 많다. 추위를 견디기 위해서다. 고대 게르만인들에게 자작나무는 신들의 어머니인 여신 프리그(Frigg)의 나무였다. 생명과 생장과 축복을 뜻했고 사랑과 기쁨의 표시였다. 독일에서는 프리카(Frigga)라고 불렸다. '사랑받는 자'라는 뜻이다. 영어의 금요일(Friday)은 그녀의 이름에서 유래한다. 금요일은 '사랑을 나누는 날'이다. 자작나무를 뜻하는 한자(樺)에는 빛날 화(華)가 들어간다. 촛불이 인간에게 오기 전 자작나무 껍질이 불꽃이었다. 결혼식 날 화촉(華燭)을 밝히는 것이 바로 자작나무에게서 왔다. 가로로 얇게 벗겨지는 하얀 수피는 종이로 사용되었다. 자작나무 수피에 연애편지를 써서 보내면 사랑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사랑과 축복이 이 나무에 깃들어 있다. 자작나무는 본질적으로 빛의 나무다.

자작나무는 강하다. 나무의 높이가 5m 이상이 되면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다. 종자는 가볍고 날개가 있어 멀리 날아갈 수 있다. 내려앉은 자리에 햇볕만 가득하면 곧 발아해 숲을 만든다. 제 몸의 옹이들은 높이 자라기 위해 스스로 잔가지를 떨궈낸 흉터다. 자작나무는 썩지 않고 벌레도 먹지 않는다. 나무는 건축재, 세공재, 조각재 등에 쓰인다. 합천 해인사 팔만대장경의 일부가 이 나무로 만들어졌다. 경주 천마총의 말안장을 장식하고 있는 천마도의 재료 또한 자작나무 껍질이라고 한다.

자작나무는 태양을 좋아한다. 지금 자작나무 잎들은 황금색, 태양의 색이다. 가을날 자작나무 숲에는 달빛과 태양빛이 동시에 빛난다. 오솔길을 가다보면 숲 이정표와 함께 너럭바위가 나타난다. 이곳을 기점으로 원점 회귀할 수 있고, 조금 더 오르면 검마산 자연휴양림으로 가는 임도와 연결된다. 가볍게 한 바퀴 돌아 나와도 좋고, 정상 쪽으로 조금 더 올라갔다 내려와도 그만이다. 아직 안내소가 따로 없지만 안내판은 잘 갖춰져 있어 길을 찾는 데 어려움은 없다. 너럭바위에 앉아 자작나무 숲에 둘러싸여 시간을 잊어도 좋다.

바람이 불면 자작나무 이파리들은 아주 슬픈 소리를 낸다고 한다. 그러다 바람이 그치면 자작나무 잎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고도 한다. 소문의 출처는 알 수 없다. 그저 바람이 부는 동안 '당신을 기다린다'는 그 마음이 멀리 멀리 전해졌으면 좋겠다.

글=류혜숙<작가·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
사진=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참고=영양군 누리집. 한국지명유래집. 한국산림복지진흥원 누리집


검마산 자연휴양림 소나무 숲 '미림 보존단지' 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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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마산 자연휴양림. 휴양림의 소나무 숲은 미림(美林)보존단지로 지정·보호되고 있을 만큼 경관이 아름답다.

자작나무 숲은 검마산의 남쪽 기슭에 위치한다. 가파른 꼭대기를 넘어 북쪽 기슭에는 검마산 자연휴양림이 자리한다. 활엽수와 침엽수가 조화를 이뤄 울창하게 우거져 있는데 특히 휴양림의 소나무 숲은 미림(美林)보존단지로 지정·보호되고 있을 만큼 아름답다. 휴양관, 정자, 산책로, 놀이터, 야영장, 물놀이장, 운동장, 산림욕장 등의 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반려견을 동반할 수 있다는 특색이 있다. 이곳에 대해서는 한마디로 설명이 가능할 것 같다. '관리하는 분들의 손길이 남다르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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