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정신, 청도에서 꽃피우다 .3] 화랑과 신라의 발자취, 청도에서 찾다

  • 류혜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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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11-18   |  발행일 2020-11-18 제22면   |  수정 2020-11-27
청도는 화랑 수련장…심신 닦던 육장굴·오례산 등 곳곳 흔적 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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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육산 9부 능선의 단애절벽 중간에 자리한 육장굴. 화랑 출신 김유신 등 여섯 장군이 거처하면서 심신을 수련한 곳으로, 동굴의 넓이는 약 33㎡ 정도이고 암반으로 이루어진 굴 바닥에는 여섯 사람이 앉아 있던 자국이 지금도 뚜렷이 남아 있다.

풍류(風流), 모든 생명과 접촉하는 바람의 흐름을 일컫는다. 풍류라는 말이 맨 처음 등장한 것은 신라의 최치원이 쓴 '난랑비서문'에서다. 그는 '나라에 현묘한 도(道)가 있으니 이를 풍류라 한다'고 했다. 풍류도는 선도(仙道)에서 나왔다. '선(仙)'은 불교 수용 이전부터 신라에서 숭배했던 신격들을 통칭하는 말로 여겨지는데, 삼산오악(三山五岳)을 비롯한 명산대천(名山大川)의 신(神)들이 바로 그 '선'에 해당하는 존재다. 그러므로 풍류도 또는 선도는 단순한 종교나 신앙이 아닌 풍류 또는 선으로 가는 길이다. 그것은 곧 '신선(神仙)'으로 나아가는 전인적인 심신수련법에 뿌리를 두고 있다. 화랑들이 심신을 수련하는 장소로 전국의 주요 산과 강을 택한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고 제천 의식은 천인합일을 이루고자 하는 심신 수련법의 꽃이었다. 청도는 화랑들의 수련장이었다. 그들의 발자취와 이야기는 청도 땅 곳곳에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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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장군의 산'이라 해서 이름 붙여진 청도 장육산. 이 일대는 경주 단석산, 청도 운문산과 연결되어 신라 화랑의 수련장으로 활용된 것으로 추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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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육산 아래를 흐르는 산내천에는 화랑들이 훈련을 할 때 밥을 짓기 위해 솥을 걸었다는 '솥 바위'가 아직도 강 가운데에 놓여 있다.

#1. 여섯 장수가 수도했던 장육산

청도의 운문면 지촌리와 경주의 산내면 내칠리 경계에 장육산(將六山)이 있다. 여섯 장군의 산이다. 여섯 장군 중에 화랑 출신 김유신 장군도 포함된다는 이야기가 있다. 장육산은 화랑시절의 김유신 장군이 훈련한 경주 단석산(斷石山)의 일부다. 단석산을 중심으로 청도 운문산·장육산 등을 연결하는 이 일대가 화랑의 수련장이었을 것이라 추측된다.

특히 장육산 운문면 방면 9부 능선의 단애절벽 중간에 육장굴(六將窟)이라는 암굴이 있다. 여섯 장군이 거처하면서 심신을 수련한 곳이다. 남서향으로 열려 있는 전망이 멋지다. 동굴 넓이는 약 33㎡ 정도이고 안쪽에는 조그마한 샘이 있었다. 암반으로 이루어진 굴 바닥에는 여섯 사람이 앉아 있던 자국이 지금도 뚜렷이 남아 있고 암벽에는 다섯 손가락 자국이 찍혀 있다. 동굴 천장에는 수도하던 장군이 도를 깨우쳐 벌떡 일어나다 투구가 부딪혀 생겼다는 흔적도 있다.

해발 686m의 장육산 정상에는 제법 널따란 암석이 누워 있다. 바위에는 주먹 크기의 자국들이 어지럽게 파여 있는데, 여섯 장군이 타던 말발굽 자국이라고 한다. 옛날에는 이곳에 말 형태의 석마가 있었고, 돌 울타리가 사당처럼 둘러싸고 있었다고 하지만 지금은 흔적만 남아 있다.

산정에서 산등을 타고 마지막 닿는 곳은 경산의 발백산(髮白山)이다. 바리박산이라고도 불린다. 장육산에서 훈련하던 장군들이 말을 달려 마지막으로 깃발을 꼽는 의식을 했던 곳이라 전한다. 여섯 명의 장수는 용마를 타고 장육산 일대를 질주하며 무예를 단련하고, 밤이면 육장굴 속에서 좌선을 하며 심신을 연마했다고 전해진다.

장육산 아래를 흐르는 산내천에는 화랑들이 훈련을 할 때 밥을 짓기 위해 솥을 걸었다는 '솥 바위'가 아직도 강 가운데에 세 개가 놓여 있다. 또한 장군들이 걸터앉아 쉬었다는 '놋다방구'도 있다.

#2. 천인합일의 장, 오례산성

청도읍 거연리(巨淵里) 뒷산에 오례산성(烏禮山城)이 있다. 오혜산성(烏惠山城), 오례산성(鰲禮山城), 구도산성(仇刀山城)이라고도 한다. 신라 시대에 축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해발 500~626m 능선에 있는 석성으로 사방의 가파른 능선 또는 암벽을 이용해 축조했다. 성벽으로 오르기는 매우 어렵지만 내부는 매우 평탄한 지형을 이루는 천혜의 요새다. 성의 둘레는 4.6㎞에 이르고 청도 매전면의 구촌리와 지전리에까지 걸쳐 있다. 성 아래 '거연리'는 '큰 연못이 있다'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자연마을로는 시점이, 사기점 등이 있다. 시점이는 쇠점이라고 하며 쇠를 다루는 곳이 있었다는 곳으로 마을 뒤 밭 근처에서 슬러지(sludge)를 발견할 수 있다. 사기점은 사기그릇을 만들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여섯 장수 장육산서 말타고 무예 연마
밤에는 단애절벽 육장굴 머물며 좌선
화랑 훈련때 솥 걸고 밥 짓던 솥바위
산 아래 산내천에 지금도 세개 남아
거연리 오례산은 '신라삼산' 중 하나
국가제사 지내며 화랑 노닐던 장소


신라시대에는 국가의 제사인 대사(大祀)를 지내는 '신라삼산(新羅三山)'이 있었다. 삼산은 나림(奈林)·골화(骨火)·혈례(穴禮) 세 곳을 말하는데, 경주와 경주를 둘러싼 지역에 위치해 경주를 방호하는 호국신(護國神)의 역할을 했다. 나림은 지금의 경주 남산이며, 골화는 영천의 금강산이다. 그리고 혈례가 바로 청도 오례산성이 있는 오례산으로 비정되고 있다.

'김유신과 그의 낭도들은 삼산을 찾아다니며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다. 삼산은 제사의 대상인 동시에 화랑들이 노닐던 장소였음을 알 수 있다. 삼국유사에 삼산의 호국신이 김유신을 도운 일화가 전해진다. 김유신이 국선이었을 때 고구려의 첩자인 백석(白石)의 꾐에 넘어가 고구려의 정세를 염탐하러 떠나게 된다. 그러다 여인으로 변한 호국신을 만나 백석의 정체를 알게 되어 위기에서 벗어나게 되었다고 한다. 청도 오례산을 포함한 신라의 삼산은 통일 후에도 최고의 신성 산악으로 왕이 직접 제사를 올리는 대사의 대우를 받았다.

#3. 운문사를 둘러싼 화랑과 신라의 자취들

운문사가 자리한 운문면 신원리(新院里)는 새로 만들어진 원(院)이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신원이란 한 것은 근세의 일로 원래는 염창·염챙이라 했다. 신라시대 화랑들이 일체의 부식물을 이곳에 저장하였고 삼국 통일 후에는 운문사가 번창해 승려들의 부식물을 저장하는 곳간이 있었던 곳이었다.

현재 신원리의 자연마을로는 염창, 속계, 황정리, 사기점, 천문동, 통점이, 삼계리 등이 있다. 사기점은 사찰에서 사용되는 도자기를 구웠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인데 운문사에서 가장 가까운 절 안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절골·사기(寺基)라고도 불렀다 한다.

운문사 입구 하천 건너편에 있는 넓은 평지는 '장군평'이라 불린다. 신라시대 군사 훈련을 한 곳이라고 전해진다. 가슬갑사가 있었던 삼계리에는 '쇠가 나는 골짜기'라는 '생금비리'가 있다. 생금비리에서 내려와 형성된 '속계'는 신라시대부터 솥 장인들이 '속계 솥'을 만들던 곳으로 쇠를 다룬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천문동은 천문갑사가 있었던 자리 부근에 인가가 있었던 흔적이 남아 있는데, 숯을 굽던 사람들이 많이 있을 때 자연적으로 형성된 마을이라고 알려져 있다.

황정리는 신라 진평왕이 가슬갑사에서 수도하고 있는 원광국사와 나랏일을 의논하기 위해 이곳을 찾았을 때 머물렀다 하여 황정리(皇停里)가 되었다.

신원리와 방음리 일대에는 무적숲, 무적천, 무적들, 무적골, 무적암, 무적폭포 등 '무적(舞笛)'이라는 지명이 많이 남아 있다. 무적은 '피리 소리에 맞춰 춤을 춘다'는 의미인데 신라 때부터 내려오는 말이라 한다. 무적숲에는 신라의 왕이 주변의 아름다운 풍광에 반해 피리소리에 맞춰 춤추며 놀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무적숲 북쪽에는 낙화암이 있는데 수십 명이 앉을 수 있는 널찍한 바위다. 신라왕이 무희와 기녀들을 데리고 이곳에서 유흥을 즐기다가 기녀 한 사람이 떨어져 죽었다고 해서 낙화암이라 불린다.

한편 금천면 임당리 마을 입구 쉼터에 있는 바위도 화랑이 쉬던 바위라고 전하며, 각남면 녹명리의 죽바위, 풍각면의 봉기리 3층 석탑 등도 신라 군사들이 주둔했던 유적으로 추정된다.

글=류혜숙<작가·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
사진=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참고=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누리집. 청도군지. 오례산성, 경상북도 문화재연구원, 2009. 문화유적 분포 지도, 경상북도 문화재연구원,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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