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과 한국문학] 아파트 이름이 왜 이래?

  • 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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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11-19   |  발행일 2020-11-19 제22면   |  수정 2020-11-19
영어 비스름한 말 갖다붙인
길고 괴이한 아파트 이름들
일상서 불평등·차별화 초래
특히 노년층 배제·문맹 유발
아파트 명칭 제정 지침 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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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현 경북대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

요즘 이상하게 생겨먹은 아파트 이름이 여기저기 불쑥 솟아오른다. 2010년 이후 최근으로 가까워질수록 더 길고 어려운 아파트 이름이 폭증하고 있다. 대구 시내에 있는 몇몇 이름만 보자. '동대구해모로스퀘어웨스트' '한신더휴이스턴팰리스' '북죽곡엠코타운더솔레뉴' '호반베르디움더클래스' '우방아이유쉘' '삼정그린코아에듀파크' '에코폴리스동화아이위시'.

어휴! 굉장하다. 정말 이상한 이름들이다. 저런 이름이 과연 사람들 입에 실제로 오르내릴까? 영어인지? 스페인어인지? 프랑스어인지? 알쏭달쏭한 낱말을 연결해서 이상하게 만들어 놓았다. '로제비앙'은 프랑스말 같고, '더퍼스트'는 영어임이 분명하다. 이런 기이하고 괴이한 아파트 이름들이 우리의 일상적 삶에 횡행하도록 그냥 방치할 것인가?

왜 이런 이름을 지었지? 우스갯말로 하는, "시어머니가 못 찾게 할라꼬" 지은 것일까? 요즘은 '똑똑한 시어미'들이 많아져 이것도 통하지 않을 텐데. 이런 영어식 이름을 짓는 이유는 "뭔가 있어 보인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래서 영어 '비스름한' 단어와 소리마디를 갖다 붙인 것이다. '브랜드'는 그럴듯하게 들리고, '상표'는 촌스럽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 '숍'이나 '마켓'은 참신하게 느껴지고, '가게'나 '점방'이 들어간 이름은 촌스럽다고 한다. 한국인은 영어 사대주의에 함몰되어 버렸다. 이는 조선의 양반층이 한문 사대주의에 빠진 것과 같다. 그때는 소수였으나 지금은 다수 대중이 자발적으로 빠졌다. 한국은 미국화를 극단적으로 추구하는 나라이다.

외국어를 섞어 어렵게 만든 아파트 이름은 특히 저학력 노년층을 소외시키는 '배제의 언어'다. 이분들을 새로운 문맹으로 만드는 '문맹 유발의 언어'로 우리의 일상생활 언어에 불평등과 차별화를 초래한다. 아파트 이름은 우리의 생활에서 가장 많이 쓰는 낱말이다. 택시를 타고 목적지를 말할 때, 아파트 이름을 기준으로 "무슨 동네 무슨 아파트로 갑시다"라고 한다. 길을 물을 때도 아파트 이름을 말한다. 이런 상황의 노인들은 어떻게 말하고 알아듣나? 젊은이라고 쉬울 리 없다.

국가는 이런 사태가 더 커지지 않도록 조치할 의무가 있다. 국립국어원에서 '공공언어 개선사업'을 펼치고 있다. 개인·단체·기업으로부터 당면한 용어 제정에 관한 질문을 받고 적절한 개선방안을 제공한다. 국립국어원에서 운영하는 '공공언어 통합지원' 누리집에 들어가 보면 많은 사례가 올라와 있다. 이러한 공공언어 개선사업에 아파트 이름을 포함한 공동주택 이름짓기도 포함시켜야 한다. 국어원이나 언어정책과가 나서서 아파트를 짓는 건설회사 연합회까지 포함된 위원회를 만들고, '공동주택 명칭 제정에 관한 지침'을 마련하기 바란다. 이 지침이 만들어진 후 지방자치단체 의회는 관련 조례를 제정하여 그 시행을 뒷받침하면 가장 바람직하다. 자치단체마다 이런 조례를 만들면, 외국어식 아파트 이름이 줄어들어 생활의 불편함이 줄고, 새로운 문맹자도 만들어내지 않게 될 것이다.

일상생활의 언어환경은 공동체 삶의 질에 큰 영향을 미친다. 우리말을 잘 살린 아파트 이름은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다. '장기파랑새'는 장기동의 파랑새 아파트임을 금방 알 수 있고 듣기도 좋다. '한빛마을' '영조아름다운나날'도 느낌이 좋다. 매력적인 삶, 건강한 삶을 누릴 수 있음을 표현하는 낱말이 우리말에 얼마든지 있다.
백두현 경북대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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