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의 바다인문학] 동 죽, 바지락 못지않은 시원한 국물…갯벌 귀해지니 '미친 존재감'

  • 유선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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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11-27   |  발행일 2020-11-27 제37면   |  수정 2020-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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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죽은 전북 고창의 혼합 갯벌이나 인천 옹진군의 모래갯벌 등지에서 많이 서식한다. 백합이 지천이던 시절에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하지만 새만금방조제 물막이공사가 끝나고 백합이 사라진 갯벌에서 마지막까지 계화도·심포·하제 지역 어민들의 생계를 책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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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죽사냥꾼'으로 불리는 검은머리물떼새

국립 장성숲체원에는 '맨발치유숲길'이 있다. 삼나무와 편백나무 숲에 마련된 길이다. 기분을 좋게 하는 지오스민 성분이 풍부한 부드럽고 푹신한 흙으로 되어 있다. 갯벌에도 그런 길이 있다. 모래가 많고 펄이 적당하게 섞여 발이 빠지지 않거나 빠져도 발목 정도 빠지는 갯벌이 그런 길이다. 이런 갯벌에는 십중팔구 동죽이 많이 서식한다. 또 갯지렁이와 칠게도 많다. 따라서 갈매기는 물론 도요류·물떼새류 등 물새들도 먹이활동을 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백합·바지락 '귀하신 몸' 되자
칼국수의 엄연한 주연급 부상
고추와 찰떡궁합 젓갈도 별미

껍데기 얇아 물새들의 먹잇감
서천 유부도 어민의 主수입원
갯벌 세계유산 추진 움직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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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지락을 대신한 동죽칼국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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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의 새로운 다크호스 젓갈로 부상한 동죽젓갈



◆물총칼국수라니

점심을 거르며 딸아이 이삿짐을 쌌다. 자취하는 살림살이라 많지는 않았지만 빗속에 옮기느라 신경이 많이 쓰였다. 한가한 대전의 한 칼국수 집을 찾았다. 지난번 이사할 때 들렀던 집이다. 그때 맛이 좋아 주저없이 들어섰다. 점심시간이 훨씬 지났는데도 손님이 제법 많다. 동죽을 이곳에서는 물총이라 부른다. 일부러 대전까지 물총칼국수를 먹겠다고 온 것은 아니다. 아이의 자취방에서 짐을 옮기려고 온 길에 잠시 들렀다. 아이 덕에 물총칼국수집만 두 번째다.

칼국수하면 바지락만 생각했다. 그전에는 백합을 이용했다. 그만큼 고급 조개가 흔했다. 백합에서 바지락으로 바지락에서 동죽으로 바뀌는 사이에 우리 갯벌은 절반으로 줄었다. 백합은 귀해졌고 바지락도 만만치 않다. 그 덕에 흔한 동죽도 조연을 넘어 이젠 엄연한 주연급이다.

물총칼국수 덕분에 칼국수계에서 대상을 받을 만큼 성장했다. 맛도 바지락이나 백합보다 떨어지지 않는다. 속을 달래는데 이만큼 시원한 국물이 있을까. 그동안 바지락칼국수만 찾았던 것이 미안하다. 백합에 바지락에 치어 가슴앓이한 탓일까. 국물이 정말 시원하다.

동죽은 전북 고창의 혼합 갯벌이나 인천 옹진군의 모래갯벌 등지에서 많이 서식한다. 백합이 지천이던 시절에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하지만 새만금방조제 물막이공사가 끝나고 백합이 사라진 갯벌에서 마지막까지 계화도, 심포, 하제 지역 어민들의 생계를 책임졌다. 그래서 동죽을 보면 더 애틋하다.

칼국수도 그렇지만 동죽도 해감을 잘해야 한다. 백합보다는 바지락을, 바지락보다는 동죽이 더 해감을 잘해야 한다. 해감하는 방법은 사람마다 약간의 차이가 나지만 원리는 비슷하다. 깨끗한 물에 껍질을 잘 씻어낸 후 큰 그릇에 동죽이 충분히 잠길 만큼 물을 담고 굵은 소금을 바닷물 정도의 염도보다 약간 높게 한다. 여기 동전이나 숟가락을 넣어 해감하기도 한다. 조리하기 한두 시간 전에 해감을 시작하는 것이 좋다. 해감할 때 동죽이 뱉어낸 이물질을 다시 흡입하지 않도록 체를 받쳐 바닥에 가라앉도록 하는 것이 좋다.

동죽을 삶아 물과 함께 알을 까서 냉동 보관하면 일년 내내 맛있는 동죽탕을 맛볼 수 있다. 또 생동죽을 까서 젓갈을 담아도 좋다. 조개 젓갈 중 가장 부드럽고 가격도 저렴해 젓갈을 담기 좋다. 잘 익은 젓갈은 풋고추와 무쳐 놓으면 훌륭한 반찬이다. 칼국수만 아니라 동죽파스타도 인기다. 정확하게는 동죽봉골레파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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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죽봉골레파스타


◆물떼새가 유부도를 찾는 이유

갯골에서 종종 송곳으로 구멍을 뚫은 것 같은 동죽껍질을 볼 수 있다. 큰구슬우렁이에게 속살을 먹힌 것들이다. 작은 좁쌀고둥이떼로 모여 들어 자신들보다 큰 동죽을 잡아먹기도 한다. 진짜 동죽사냥꾼은 따로 있다. 검은머리물떼새다. 검은 턱시도를 입은 것 같은 갯벌의 신사로 불리는 검은머리물떼새는 천연기념물이다. 특히 굴을 좋아해 'Oystercatcher'라는 이름이 붙었다. 주황색의 길고 튼튼한 부리는 지니고 있어 '조개사냥꾼'으로도 불린다. 동죽은 껍데기가 얇아 적은 노력으로 맛있는 속살을 얻을 수 있다. 동아시아에서는 1만여 마리가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람의 간섭이 적고 먹이가 풍부한 외딴 섬에 둥지를 틀고 알을 낳는다. 간척이나 연안의 오염으로 자꾸 서식지가 줄어들고 있다.

동죽이 많았던 부안·김제·군산 등 새만금 갯벌이 사라지면서 생존의 위협을 받는 물새 중에 하나다. 특히 새만금 갯벌은 주민들이 백합만 취하고 동죽은 거의 잡지 않아서 조개를 즐겨 먹는 물새들에게는 천국이었다. 최근 새만금 인근 유부도에서 검은머리물떼새를 비롯한 많은 도요류들이 확인되고 있다.

금강 하구에 위치한 유부도는 백합·동죽 등이 많이 서식한다. 과거에 소금을 생산한 폐염전도 있어 먹이를 찾기 쉽고 만조 때는 쉴 곳도 있다. 방해하는 사람들도 없으니 새들에게 천국이다. 이곳을 산란장으로 삼는 이유다. 검은머리물떼새는 태안의 황도의 작은 돌섬에서도, 신안 염전의 후미진 저수지 구석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모두 조개들이 많고 인기척은 거의 없는 곳이다.

유부도는 충남 서천군에 속한 섬이다. 유부도 일대 갯벌은 서천과 군산이 접하고 있다. 유부도에는 전라도에서 충청도에서 들어온 20여 가구가 백합을 잡아 생활하고 있다. 한때 소금 농사를 했지만 지금은 백합과 동죽을 캐서 생활하고 있다. 동죽은 호미로 캐지만, 백합은 독특한 어구를 이용한다. '그레·끄레·글개'라고도 한다. 유부도 갯벌은 습지보호지역인 람사르습지로 지정됐다. 문화재청은 순천보성갯벌, 신안갯벌, 고창갯벌 등과 함께 세계자연유산 등재추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황금갯벌 조개무덤

동죽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린다. 마른 갯벌 위에 하얗게 모습을 드러낸 죽은 동죽껍질이 생각나서다. 그 모습을 처음 본 곳은 일본의 이사하야(諫早) 갯벌이었다. 방조제 안쪽 육상화돼가고 있던 갯벌에서 보았던 모습이다. 그 갯벌은 일본 규슈의 나가사키·사가, 구마모토현으로 둘러싸인 아리아케해(有名海)의 내만에 깔려 있다. 지형과 지질이 새만금과 닮아 있어 간척할 때 모델로 삼았다고 한다.

다음으로는 시화호의 우음도 어디쯤에서도 똑같은 조개껍질을 보았다. 마지막으로 본 곳은 김제시 민가섬이다. 새만금방조제가 만들어지기 전에는 물이 빠지면 갯벌을 따라 민가섬까지 걸어갔다. 방조제가 완공된 후 가장 먼저 육상화가 진행된다. 거기는 동진강과 만경강이 합해지는 곳으로 영양분이 풍부해 백합과 동죽 등 조개들이 많았다. 덕분에 심포리·거전리 등 진봉면 주민들이 잘살 수 있었다.

물길이 막히고 몇 년 후 다시 그곳을 찾았을 때다. 어민들은 볼 수 없었다. 차를 가지고 들어온 여행객들이 패러글라이딩과 캠핑을 하면서 즐기고 있었다. 갯벌에 검은머리물떼새 몇 마리가 살아 있는 조개를 찾아 "삑삑삑" 울면 종종걸음으로 오가고 있었다.

1960~70년대 초반 우리나라 최대의 패류 산지는 인천 송도 갯벌이었다. 백합과 함께 다량의 자연산 동죽이 서식해 5천여 어민들이 생계를 유지했던 곳이다. 고잔, 한진, 동막 어촌계가 갯벌에서 백합, 모시조개, 동죽 등을 채취했다. '조개골'이라 불리는 마을이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이젠 남동산업단지, 송도국제도시가 이곳을 조개무덤으로 만들었다.

동죽이 사는 갯벌은 어민들에게는 마을어업을 할 수 있는 공동어장이다. 아이들에게는 갯벌생태교육을 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이며 생태여행지다. 동죽은 백합처럼 오래 보관할 수 없고 바지락보다도 빨리 상한다. 그래서 보관시설이 좋지 않았던 때는 백합이나 바지락에만 주목을 했다.

동죽은 현지에서 조개 젓갈이나 칼국수에 이용했다. 지금은 겨울철에도 선도가 좋은 동죽이 유통되고 있다. 다행히 인공수정이 잘되고 성패로 성장하는 시간이 짧고 잘 자라 백합이나 바지락을 대신하고 있다. 갯벌에 남아 수질까지 정화하고 새들의 먹이가 되기도 한다. 이 모두 건강한 갯벌이 보전될 때 가능한 일이다. 


(광주전남연구원 책임연구원)



모래가 많은 갯벌서 서식하는 연체동물
불통·물통·물총·동조개·고막 등 '다양한 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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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죽은 백합목 개량조개과의 연체동물이다. 지역에 따라 불통, 물통, 물총, 동조개, 고막 등으로 불린다. 모래가 많은 조간대 갯벌에서 백합과 함께 서식하기도 한다. 동죽은 폭이 길이보다 약간 길며 체고가 높은 둥근 삼각형 모양이다. 껍데기는 서식환경에 따라 흰갈·회갈·흑갈색을 띤다. 패각의 둥근 검은 선은 나이를 나타낸다. 어민들은 타원형의 동죽이 있는 타원형 구멍을 금방 찾는다. 간혹 물총으로 쏘는 것처럼 물을 뿜어내기도 한다. 그래서 '물총'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봄부터 가을까지 산란하며 식물성 플랑크톤과 유기물 등을 먹는 여과섭식자다. 껍데기는 바지락보다 얇아 종종 고둥에게 속살을 내주는 아픔을 겪기도 한다. 조간대에서 조하대 20곒 내외에서 서식한다. 우리나라에는 서해안 신안 증도, 영광 백수, 고창 만돌과 하전, 서천 유부도, 옹진 주문도·볼음도·장봉도 등에 서식한다. 서해만 아니라 남해안 하동·남해·통영·사천 지역의 모래가 많은 갯벌에서 종종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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