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가기 딱 좋은 청정 1번지 영양] <14> 두들마을 장계향 문화체험교육원

  • 류혜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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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12-14   |  발행일 2020-12-14 제11면   |  수정 2020-12-14
최초 한글조리서 '음식디미방' 재해석…70여종 요리 복원 '맛 보고 체험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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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4월에 문을 연 장계향 문화체험교육원은 28만6천㎡ 규모에 전통음식전시관과 체험관, 한옥 휴게공간, 장계향 추모공간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영양 두들마을 상수리나무에 가지만 무성하니 지난 가을은 풍성하였겠다. 지금이야 도토리묵이란 별식일 따름이지만, 근 400년 전 저 나무를 심은 여인은 그것으로 수많은 이들을 살리고자 했으니 참으로 크고 따스하다. 이미 열 살 즈음에 이웃의 가난하고 늙은 여인이 변방으로 떠난 아들을 그리워하는 모습을 보고 울며 그 안타까움을 시로 남겼다는 여인이다. 자식들에게는 '글 잘하기보다는 착한 행동 하나를 했다는 소리가 들리면 아주 즐거워하여 잊어버리지 않을 것'이라 했다. 그리고 1672년 극심한 가뭄으로 나라가 흔들릴 때 일흔 다섯이 된 여인은 초근목피로 자족하며 잘 보이지 않는 눈으로 후손들을 위한 요리책 '음식디미방'을 썼다. 그녀는 여중군자라 칭해지는 사대부가의 여인, 장계향이다.

#1. 최초의 한글 조리서, 음식디미방

장계향은 선조 31년인 1598년 경북 안동 금계리에서 태어났다. 퇴계 이황의 학통을 이은 경당 장흥효의 무남독녀였다. 아버지의 명석함과 열정을 빼닮은 아이는 시·서·화에 능통했으며 어린 시절부터 천재 소리를 듣고 자랐다. 그녀는 19세 때 아버지가 아끼던 제자 석계 이시명의 둘째 부인이 되었다. 긴 세월이 흘러 1680년 그녀는 83세를 일기로 석보면에 있는 넷째 아들 숭일의 집에서 세상을 떠났다. 이후 1689년 셋째 아들 갈암 이현일이 이조판서 직함을 받음으로써 정부인 품계가 내려졌다.

음식디미방(飮食知味方)은 장계향이 열 명의 자식을 다 키우고 일흔을 넘긴 나이에 자자손손 가문의 전통을 이어가고 싶은 어머니의 마음을 오롯이 담아 글자 한 자에도 정성을 다해 써내려간 조리서다. '디'는 '알 지(知)'의 옛말이다. 곧 '음식디미방'은 '음식의 맛을 아는 방법' 정도로 해석된다. 책에는 예부터 전해 내려오거나 집안에서 개발한 조리법이 담겨 있는데 국수와 만두 등 주식을 비롯해 국, 찜, 전, 떡 등 반찬과 후식까지 146가지 음식을 만드는 방법이 소개되어 있다. 또한 재료를 보관하고 저장하는 방법과 술을 빚는 51가지의 다양한 방법도 들어 있다.


1672년 '여중군자' 장계향이 저술
146가지 전통음식·술 빚는법 소개
중용 '知味의 철학' 고스란히 담아
2018년 장계향문화체험교육원 건립
음식전시관·체험관·추모관 등 마련
한옥·다도체험, 고택음악회도 열려



우리의 음식은 '약식동원(藥食同原)' 또는 '식즉약(食卽藥)'이라 하여 '음식이 곧 약이 된다'는 개념을 중시하고 있다. '음식디미방'은 재료 선정에서부터 우리 몸에 이로운 재료를 골라 썼으며 제철에 생산되는 재료를 써서 재료 자체가 가지고 있는 자연의 맛을 최대한 살려서 만드는 것이 특징이다. 그만큼 이 책은 조선 중후기 양반가의 식생활 문화를 짐작할 수 있는 소중한 자료이며, 거의 사라져 버린 옛 조리법을 발굴할 수 있는 교본이자 지침서로서 그 가치가 크다.

'음식디미방'의 모든 내용은 한글로 쓰여 있다. 이는 최초이자 가장 오래된 한글 조리서이며 동아시아를 통틀어 여성이 쓴 최초의 조리서이기도 하다. 정확하고 다양한 어법과 철자는 사전적으로도 큰 가치를 지닌다. '음식디미방'의 마지막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적혀 있다.

'이 책을 이리 눈 어두운데 간신히 썼으니 뜻을 알아 이대로 시행하고, 딸자식들은 각각 베껴가되 책을 가져갈 생각일랑 마음도 먹지 말며, 부디 상하지 않게 간수하여 쉽게 떨어지게 하지 말라.'

조리 비법을 독점하지 않고 널리 알리려는 마음이 읽힌다. 11세 때 유학의 기본을 담은 소학(小學)과 중국의 사서인 십구사략(十九史略) 등을 깨우쳤던 그녀가 한글로 책을 쓴 것은 '널리 알린다'는 생각이 바탕에 있지 않았을까 싶다. 이러한 당부는 '음식디미방'이 오늘날까지 온전하게 전수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음식디미방'은 오늘날 하나의 브랜드가 되었다. 영양군에서는 '음식디미방'에 소개된 전통음식 가운데 70여 종을 현대적 의미로 재해석하여 전통한정식 메뉴로 정착시키는 한편 51종의 술 가운데 남성주·두강주 등 14종을 복원하는 등 지속적인 노력을 계속해 왔다. 또한 '음식디미방'을 3개 외국어로 번역해 우리 식문화의 우수성을 세계에 널리 보급하고 있다. 그녀의 유산은 두들마을에서 가장 넓게 자리한다. 음식디미방교육관, 정부인장씨예절관, 전통한옥체험관, 전시관 등 '음식디미방'을 주제로 맛보고, 눈으로 음미하며, 직접 몸으로 체험해보는 '장계향 문화체험교육원'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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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동인 홍도관. 성인실, 학발실, 경신실, 소소실, 춘파실, 광풍실, 제원실, 세심실, 낙기실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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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중군자 장계향의 영정이 모셔져 있는 존안각.

#2. 장계향 문화체험교육원

장계향 문화체험교육원은 2018년 4월에 문을 열었다. 2011년부터 조성되기 시작한 교육원의 규모는 28만6천㎡에 이르며 전통음식전시관과 체험관, 한옥 휴게 공간, 장계향 추모 공간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체험관에서는 '음식디미방'을 바탕으로 '장계향과 음식디미방 아카데미' '음식디미방 장계향 예절아카데미' '음식디미방 조리체험'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또한 그녀의 일생과 작품 세계를 접할 수 있으며 전통 한옥체험, 다도체험, 전통혼례, 고택 음악회 등의 행사도 마련되어 있다.

다양한 체험이 이뤄지는 교육동은 홍도관(弘道館)과 지미관(知味館) 두 곳이다. 홍도관에 있는 각 실의 이름들이 의미 깊다. 성인실, 학발실, 경신실, 소소실, 춘파실, 광풍실, 제원실, 세심실, 낙기실 등. 성인실은 장계향이 9세 때 지은 첫 시(詩)인 성인음(聖人吟)에서 취했다. 어린 소녀가 스스로 성인이 되고자 하는 큰 꿈을 꾸는 내용이다. 학발실은 10세 무렵 지은 학발시(鶴髮詩)에서 따왔다. 아들을 그리워하는 노모의 이야기다. 경신실은 11세 때 지은 경신음(敬身吟)에서 취하여 경(敬)의 정신이 효(孝)에서 출발하고 있음을 이야기한다. 소소실은 11세 때 지은 시 소소음(簫簫吟)에서 왔다. 자연의 도(道)와 인간의 도가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들여다보는 놀라운 지혜가 담겨 있다. 각 실에 단정히 걸려 있는 이름의 의미를 짚어보는 것만으로도 뭉클한 마음이 든다.

그녀의 작품들은 지미관 1층에 있는 '장계향 유물전시실'에서 만나 볼 수 있다. 시대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해 살아간 흔적을 비춰주는 작품들이다. 전시실 외에 실습실과 식당 등이 있다. 지미관의 지미(知味)는 중용에 나오는 '사람이 마시고 먹지 않음이 없지만, 맛을 아는 경우가 드물다(人莫不飮食也, 鮮能知味也)'에서 따왔다. 이것을 '지미(知味)의 철학'이라 일컫는다. 맛을 느끼지 못하고 오로지 배를 채우기 위해 먹는 것은 인생을 살면서 삶의 참맛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며 오래 사는 것과 같다는 뜻이다. 여기에는 더 깊은 속뜻이 있다. 주어진 조건에 맞추고 먹는 사람들의 입장을 고려하며, 재료가 주는 고유의 맛을 완숙하게 익혀내는 것이 중용의 도에 맞는 가장 좋은 음식이라는 의미다. '음식디미'라는 말 역시 이 문구에 나온다. '안동장씨, 400년 명가를 만들다'(2010, 푸른역사)를 쓴 작가 김서령은 이렇게 말한다.

'음식디미방은 요리책이 아니라 여성이 도에 이르는 방법을 조목조목 기록해놓은 경전이라는 것이다. (중략) 인간성의 바닥에 녹말처럼 가라앉아 있는 인(仁)이나 의(義)를 공들여 볕에 말리고 체에 쳐서 하얗게 드러내는 과정의 은유가 아닐 건가.'

장계향 문화체험교육관에서 체험하는 것은 '지미의 철학'이며 '중용의 도'인 것이다. 이 계절 두들마을에서 맛볼 수 있는 전통음식 메뉴의 첫 번째 요리는 부드럽고 따뜻하고 슴슴한 도토리죽이다.

글=류혜숙<작가·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
사진=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참고=영양군지.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누리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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