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물고 싶은 대구의 공간 .8·끝] 복합 문화공간...'투가든(2garden)', '라일락 뜨락1956'

  • 박종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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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12-25   |  발행일 2020-12-25 제15면   |  수정 2020-12-25

공간의 역할을 한정 짓기는 어렵다. 본래의 목적이 아닌 다양한 형태로 활용할 수 있어서다. 또한 공간은 시대별로 변화하고, 새로운 기능을 부여받기도 한다. 최근에는 최초 설계부터 다양한 활동을 영위할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다목적 복합공간의 개념이다. 복합공간은 많은 장점을 지닌다. 특히 사회·문화·예술·경제 등 각 분야의 협업이 가능해지고,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기도 한다. '머물고 싶은 대구의 공간 8편'에서는 본래의 기능을 잃은 폐건물에서 복합 문화공간으로 거듭난 투가든(2garden)과 '라일락 뜨락1956'에 대해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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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북구 고성동의 한 폐공장을 다목적 문화공간으로 리모델링한 '투가든'에는 스테이크 전문점을 비롯해 서점, 편의점 등 다양한 업체가 입점해 있다. 베이커리 카페인 '나인블럭'의 내부 모습.

벽 낙서도 그대로…1950년대 공장이 카페·서점 등 다목적 공간 '부활'
#1. 폐 약품공장의 화려한 변신 '투가든(2garden)'


낡은 건축물이나 폐공장을 활용해 새로운 공간을 창출하는 사례가 부쩍 늘고 있다. '업사이클링(up-cycling)'이 건축 분야의 새 트렌드로 자리 잡으면서다. 건축 업사이클링은 도시 재생의 한 방식으로도 각광 받고 있다. 오래된 건축물이 가진 역사성을 그대로 살리면서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낼 수 있어서다. 또 과거와 현재가 함께하는 공간이란 특수성도 갖는다. 최근 들어 복고풍의 확장으로 이 같은 움직임은 더욱 탄력을 받고 있다.

대구에도 이미 수많은 업사이클링 공간이 존재한다. 북구 고성동에 자리 잡은 '투가든'도 대표적인 사례다. 제약 회사의 오래된 공장 을 활용해 다목적 문화 공간으로 꾸몄다. 투가든이란 상호는 '정원으로 향한다(to garden)'는 의미와 '과거와 현재 두 가지 시공간이 현존하는 정원'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건물 입구에 들어서면 '의약품도매업 광산약품'이란 동판이 여전히 남아있다. 1950년대 약품 공장과 창고였던 곳임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투가든은 크게 6개 공간으로 나뉜다. △커피·베이커리 전문점 '나인블럭' △스테이크 전문점 '선서인더가든' △서점 '문학동네 북터널' △체험 놀이 공간 '레고숍' △편집숍 '더일마' △편의점·와인숍 '이마트24'를 비롯해 정원과 화원, 공용 홀도 갖추고 있다. 규모만 2천㎡(약 600평)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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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 속 정원을 표방하는 투가든 곳곳에는 다양한 식물들이 식재돼 있다.

공간 안으로 들어서면 눈길을 끄는 요소가 곳곳에 있다. 중앙 통로는 지붕을 없애고 천장 구조물만 남겨놨다. 곳곳에 식재된 식물도 돋보인다. 빈티지한 구조물과 조화를 이룬 식물들은 공간에 활력을 불어 넣는다. 또 정제되지 않은 거친 느낌의 구조물을 친근하게 보이게 하는 효과도 있다. 일부러 외곽 벽을 허물어 식물들이 보이게끔 한 디자인도 같은 맥락이다. 보는 이들에게 독특하면서도 거부감이 들지 않도록 하는 장치다.

입구에서 쭉 직진하면 작은 정원이 나온다. 투명한 지붕 아래 다양한 식물들이 자리 잡고 있다. 규모는 아담하지만 충분한 힐링감을 선사한다. 정원 왼편에는 편집숍과 서점, 베이커리 카페가 위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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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인 북터널에 다채로운 색상의 책들이 정렬돼 있다.

실내로 들어서면 업사이클링 공간의 특성이 그대로 배어난다.

벽돌이 그대로 드러나 있고, 천장에도 옛 공장의 목조 구조물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공장에 있던 두꺼비집, 캐비닛, 칠판, 소파, 벤치 등을 활용해 레트로 감성을 더했다. 심지어 벽에 칠해진 낙서도 지우지 않고 그대로 살렸다. 특히 천장이 멋스럽다. 일부분에 투명한 소재를 사용해 일정량의 햇빛이 자연스레 공간에 스며든다. 오래된 천장 구조물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역할도 한다. 햇빛과 대비되도록 실내 조명은 색온도를 최대한 낮췄다. 빈티지한 공간에 아늑함을 더하기 위해서다. 벽면 한편에는 옛날 약품 공장과 창고의 사진도 붙어 있다.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또 하나의 매개체다.

편집숍과 레고숍은 빈티지한 건물과 꽤 어울린다. 정돈되지 않은 듯한 모습이 오히려 매력적이다. 반면 서점은 또 다른 매력을 선사한다. 서점이라기보단 전시장에 가깝다. 다채로운 색상의 책들이 가지런히 줄지어 늘어선 모습이 인상적이다.

나인블럭 카페는 규모가 꽤 크다. 다인용 테이블이 주를 이루는 데다 배치 간격도 넓다. 개방감이 압도적이다. 웅장함마저 느껴진다. 빈티지한 느낌도 가장 극대화돼 있다. 녹슨 창살과 낙서, 네온사인 등 오브제들의 디테일한 조합도 인상 깊다. 시쳇말로 힙한 공간이다.

중앙통로 맞은 편에 위치한 선서인더가든 내부도 마찬가지다. 옛날 약품 공장 구조물을 최대한 살렸다. 목조 천장과 철골을 노출시키고 다양한 소품을 활용해 복고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정원 오른편에 위치한 편의점 인테리어도 눈여겨 볼만하다. 옛것과 현대적인이 요소가 적절히 조화를 이룬다. 편의점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를 깨뜨릴 만큼 독특한 공간이다.


폐가 한옥 되살려 카페·갤러리로…마당엔 수령 200년 '이상화 나무'
#2. 이상화 생가터를 복합 문화공간으로 '라일락 뜨락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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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화의 대표작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글귀가 라일락 뜨락 앞 골목 담벼락에 쓰여 있다.

대구에는 근대 문화유산과 독특한 골목 문화를 재생해 명소화된 공간이 많다. 중구 근대골목에 위치한 '라일락 뜨락1956'(이하 라일락 뜨락)도 그중 하나다. 라일락 뜨락은 이상화 시인의 생가터이자 그의 형인 독립운동가 이상정이 살았던 공간이다. 1956년 생가터에 조성된 한옥은 폐가로 남아있다가 2018년 카페 겸 문화공간으로 재탄생했다. 제 역할을 잃어버린 공간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한 셈이다. 특히 역사적 인물들의 이야기가 깃들어 있는 공간을 공공의 장소로 변모시켰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라일락 뜨락을 찾아가려면 중구 서성네거리 쪽으로 향해야 한다. 종로초등과 호암 이병철 고택 사이에 자리 잡고 있다. 후미진 골목, 전혀 문화공간이 있을 법하지 않은 곳에 위치한다.

덕영치과와 8번식당 사잇골목으로 들어서면 다양한 형태의 벽화가 보이기 시작한다. 라일락 뜨락에 가까워졌다는 신호다. 벽화를 따라가면 곧 카페 입구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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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화 시인의 생가터에 자리 잡은 '라일락 뜨락'은 1956년 지어진 근대 한옥을 개조해 카페 겸 복합문화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마당에 자리 잡은 라일락(수수꽃다리) 나무가 인상적이다.

이상화 생가터란 근대골목 입간판도 세워져 있다. 라일락 뜨락은 이상화가 나고 자란 곳으로 생가의 안채가 있던 자리다.

이상화의 대표작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가 쓰인 벽을 따라 골목 안으로 들어가면 대문에 다다른다. 작은 대문 위에 철제로 된 간판이 멋스럽다. 적당히 녹이 슬어 운치를 더한다.

내부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라일락 나무가 눈에 들어온다. 정확히는 수수꽃다리 나무라고 한다. 수수꽃다리 나무는 라일락과 비슷하지만 다른 종으로 알려져 있다. 관상용으로 재배하는 라일락은 잎 길이가 폭에 비해서 긴 편인데, 수수꽃다리는 길이와 폭이 비슷하다. 이곳에 뿌리를 내린 나무는 수령이 200년가량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양 상태가 좋아 매년 봄이면 연보라색 꽃망울을 터트린다.

라일락 뜨락의 권도훈 대표는 이 나무를 이상화 나무라고 이름 지었다. 자연스레 시인이 어린 시절 이 나무를 보면서 시적 영감을 얻었을 것으로 유추해볼 수 있다. 과거와 현재를 잇는,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게끔 하는 매개체다. 이상화 나무는 공간의 중심이기도 하다. 모든 건축물은 이상화 나무를 끼고 'ㄷ자'형으로 배치돼 있다. 각종 공연이나 시 낭송회 등 프로그램도 이상화 나무가 있는 마당에서 이뤄진다. ㄷ자 건물 전면에 유리창을 낸 것도 어느 각도에서나 나무를 들여다보고, 공연을 관람할 수 있도록 고려한 것이다.

이상화 나무 주변에는 작은 도랑을 만들어 정원처럼 꾸몄다. 제법 운치 있다. 한옥과 어우러져 고전적인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작은 마당도 정겹다. 다양한 소품과 함께 각기 다른 형태의 조경석이 일정한 규칙 없이 배치돼 여유로움이 묻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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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의 구조물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는 카페 내부 모습.

나무 왼편에는 갤러리가 위치한다. 내부는 깔끔하면서 모던하다. 하얀색 벽면이 세련된 분위기를 풍긴다. 반면 천장은 서까래 등 목조 구조물과 황토가 그대로 드러나 있다. 묘한 어울림이다. 이곳에선 다양한 작품들이 전시된다. 지역 예술인과 대중이 교류를 갖는 공간이다. 라일락 뜨락의 또 다른 주요 공간은 'ㄱ자' 형태로 된 카페다. 카페 공간은 한옥에 가깝다. 예전 모습을 최대한 살렸다. 바닥과 창호만 현대식이다. 내부 공간은 아담하면서도 다양한 소품들로 가득하다. 거주하는 이들의 감성이 고스란히 묻어있다. 특히 내부 곳곳에는 이상화의 초상화가 걸려 있어 공간의 정체성이 드러난다.

글=박종진기자 pjj@yeongnam.com
사진=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공동기획지원 : 대구광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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