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의 피플] 한국 단색화 선구자 박서보 "추상미술은 서양의 것 아니다"

  • 김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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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1-20   |  발행일 2021-01-20 제22면   |  수정 2021-06-27 14:22

박서보

경북 예천군에 한국 단색화의 선구자 박서보(90) 화백의 이름을 딴 미술관이 들어선다. 예천이 문화가 깃든 도시를 만들기 위해 야심차게 추진한 사업이다. 예천은 박서보 화백의 고향이다. 박 화백 역시 예천이 세계인이 찾는 미술도시·관광도시가 될 수 있도록 좋은 작품을 기증해 수준 높은 미술관을 만들겠다는 의지다. 그는 "박서보미술관을 스페인 구겐하임빌바오미술관처럼 만들겠다.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구겐하임빌바오미술관은 세계적인 미술재단 구겐하임이 1997년 스페인 빌바오에 지었다. 이 미술관은 쇠퇴해가는 공업도시 빌바오를 한 해 100만명이 넘게 찾는 세계적인 관광도시로 탈바꿈시켰다. 예천을 빌바오처럼 바꾸겠다는 그의 말은 실현 가능성이 있다. 세계에서 주목받는 박서보의 작품과 건축계의 거장 피터 줌터가 설계한 미술관이 만난다면 세계인의 발길을 끌 수밖에 없다.

박서보

▶어린 시절 고향을 떠났다. 고향에 대한 기억이 있는가.

"세 살때 경기도로 이사를 가 고향에 대한 기억은 거의 없다. 이후 오랫동안 고향에 가지 못했다. 2001년 재원출판사에서 '박서보'라는 책이 출간됐다. 그 출판사 박덕흠 대표가 예천 출신이다. 당시 자주 어울리던 미술평론가 오광수는 예천에서 초등학교를 나왔다. 이들과의 만남이 계기가 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치솟았다. 아내와 함께 여행 겸 예천을 갔다. 겨우 찾은 생가터에 다른 건물이 들어서 있어 아쉬웠다."

▶박서보미술관 건립은 어떻게 시작됐나.

"현 김학동 예천군수 이전부터 미술관 건립 제의를 받았다. 처음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예천은 오지이고 발전 가능성도 없어 보였다. 내 그림이 오지에 갇혀 빛을 보지 못할 것 같았다. 그런데 김학동 군수가 미술관 건립을 다시 제의해 오자 문득 구겐하임빌바오미술관이 떠올랐다. 작은 탄광촌을 세계적인 관광지로 만든 것처럼 박서보미술관으로 예천을 바꾸고 싶었다."

▶미술관 설계자로 피터 줌터를 고집했다.

"박서보 하나만으로는 부족하다. 세계의 유명 미술관을 보라. 작품만큼이나 미술관 건물도 아름다워야 한다. 세계적인 건축가가 미술관을 설계해야 한다. 늘 피터 줌터가 지은 미술관에 작품을 걸어보고 싶었다. 그는 건축가가 존경하는 건축가다. 설계비와 상관없이 자신이 하고 싶어야 설계해준다. 그의 건축에는 절제주의, 침묵 등의 철학이 녹아 있다. 그래서 사람이 몰린다. 독일 쾰른에 지은 콜 룸바 미술관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술관으로 꼽힌다. 예천도 피터 줌터가 건립한 미술관이 들어선다면 세계가 주목하는 도시가 될 수 있다."


스페인 빌바오 살린 구겐하임 미술관처럼 
고향 예천을 미술·관광도시로 바꾸고 싶어
김학동 군수의 미술관 건립 제의 받아들여
'박서보 콘텐츠' 하나만으로 부족하다 생각
세계적 건축가 피터 줌터에 설계 직접 요청

단색화는 반복적 행위로 자신 비워내는 것
'묘법' 연작 통해 한국 추상성 보여주려 해



▶피터 줌터에게 직접 설계를 요청했다고 들었다.

"그에게 편지를 썼다. 내가 태어난 작은 도시에 미술관을 짓는데 당신이 꼭 설계를 맡아줬으면 좋겠다는 내용이었다. 나와 관련된 책·도록 등에 사인을 해서 함께 부쳤다. 당신의 건축과 내 작품이 추구하는 방향이 비슷하다는 글도 곁들였다. 그에게 긍정적인 답신을 받았다."

▶박서보미술관에 가면 박서보의 모든 것을 볼 수 있다고 했는데.

"캔버스작품은 물론 판화·드로잉 등 140~150점을 미술관에 영구대여한다. 초기작부터 최근작까지 총망라한다. 그림 그릴 때 사용한 붓, 신발, 작업복 등으로 작업실 현장도 그대로 재현한다. 박서보를 연구하려면 이곳에 와야 하도록 미술관 내용물을 알차게 채울 것이다."

▶현재 서울에서 아들과 함께 서보미술문화재단과 기지재단을 운영 중이다.

"1994년 사회 환원하겠다는 취지로 서보미술문화재단을 설립했다. 아들 둘이 대학교수였다. 큰아들(박승조 이사장)이 30년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싶다고 하길래 서보미술문화재단을 맡으라 했다. 둘째아들(박승호 이사장)도 같은 뜻을 비쳐서 기지재단을 만들게 했다. 서보미술문화재단은 미술을 전문적으로 다루고, 기지재단은 문학·음악·디자인 등 전 예술분야를 아우른다. 2018년에는 '기지 아트베이스'도 건립했다. 가정집과 작업실은 물론 전시장까지 갖췄다. 이 건물은 후일 '박서보기념관'으로 운영할 계획이다."

▶'박서보는 걸어 다니는 한국미술사'라는 말이 있다.

"1950년대 앵포르멜(제2차 세계대전 후 프랑스를 중심으로 일어난 서정적 추상회화), 1960년대 기하학적이며 옵티컬한 평면작업과 설치작업, 1970년대부터 이어진 '묘법' 연작 등 한국미술계를 움직였던 운동의 주체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또 해외전시 등을 통해 한국미술을 세계에 알리려 노력했다. 한국에서 미술을 공부하고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작가는 거의 없다."

그의 말은 맞다.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화가가 된 그는 홍익대 미술대학을 나왔다. 한국단색화를 세계에 알리는 데 앞장섰으며 2016년엔 영국 화이트큐브에서 한국 작가 최초로 개인전을 열었다. 화이트 큐브는 데미언 허스트 등 영국 유명 작가뿐 아니라 전 세계 거장들의 작품을 취급하는 세계 최고의 화랑이다. 이후 파리 페로탕 갤러리 등 유수 화랑들의 러브콜이 이어졌다.

▶박서보하면 '묘법' 연작을 떠올린다.

"묘법은 나의 삶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동양에서는 그림의 '격'을 중요시한다. 격은 품격·인격 등을 의미한다. 인격 없는 작가의 예술은 격이 없다. 올바른 인간이 돼야 좋은 작품이 나온다. 나는 인격에서 부족함이 많다. 수신(修身)을 위해 그림을 그린다. 그림이 수신을 위한 수행도구이자 수행과정의 결과물이다."

▶묘법에 세계가 열광하는 이유는.

"단색화의 기본 특징은 행위의 무목적성, 무한반복성이다. 서양화는 작가를 극대화해 드러내지만 단색화는 비워내는 그림이다. 스님이 목탁을 두드리며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을 계속 읊조리듯 반복적 행위를 통해 자신을 비워낸다. 이것이 바로 수행이다. 이런 점에 매력을 느끼지 않을까."

▶묘법을 통해 한국미술의 추상성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는데.

"흔히 추상미술을 서양의 것이라 생각한다. 아니다. 사군자, 서예를 보라. 그려진 것은 간단하지만 많은 상징을 품고 있다. 바로 정신적 추상성이다. 추상성을 작품화해 추상화라 부른 것은 서양이지만 우리 그림은 원래부터 추상성을 가진다. 우리가 서양미술을 왜 따라가야 하나. 한국만의 추상성을 보여주려 했다."

▶최근엔 그림에 색을 넣고 있다.

"처음엔 검은색, 흰색 작업을 했다. 산업화로 지구 전체가 병들어 있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자연을 통해 치유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그림에 자연의 색을 담았다. 단순한 감상이 아니라 심신을 치유하는 작업으로 더 나아갔다."

논설위원 syki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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