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연의 문학 향기] 천사들이 가난한 곳에 사는 이유

  • 박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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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1-22 08:08  |  수정 2021-01-22 08:11  |  발행일 2021-01-22 제15면

이정연

"엄마가 오늘 아침에 죽었다"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그림책이 있다. 바로 '무릎딱지'다. 피를 연상케 하는 붉은 표지를 보여주고 제목을 알려준 다음 첫 문장을 읽으면 아이들은 의아해한다. 한 장 한 장 장면을 보여주며 읽어나가다 보면 어느 순간 내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걸 느낀다.

나는 중학교 국어 선생이다.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이 책과 친구가 되게 해주고 싶다. 그래서 맨 처음 시작하는 책이 '무릎딱지'다. 엄마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해 아이는 한여름에도 창문을 꽁꽁 닫고 산다. 엄마 냄새가 빠지지 않도록. 아프면 엄마가 안아주는 기분이 들어 무릎에 난 상처를 계속 후벼 판다.

지금 있는 학교는 다섯 번째 근무지인데, 이전 네 학교는 한 학년이 열 반이 넘고, 한 반 학생 수가 서른 명이 넘는 큰 학교였다. 이번 학교는 한 학년이 100명 남짓인 작은 학교다. 이 학교가 작은 것은 선호하지 않아서이고, 선호하지 않는 이유는 학교 주변에 큰 아파트가 없는 가난한 동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학 작품들을 함께 읽다 보면 이전 어느 학교에서보다 아이들이 작품에 공감을 잘했다.

박완서 선생의 '자전거 도둑'을 이전 학교에서도 가르쳤지만, 청계천 세운상가 꼬마 점원 수남이의 처지를 이렇게 진지하게 공감하는 아이들은 처음이었다. 배달 갔다 세워둔 자전거가 봄바람에 쓰러져 고급 차에 흠집을 냈는데, 차 주인이 그 수리비용을 보상하라고 자전거를 묶어 두자 수남이는 자전거를 들고 도망쳤다. 부모처럼 믿고 따르던 주인 영감이 자전거를 들고 도망친 자신을 칭찬했을 때 수남이는 알아버렸다. 주인 영감이 지금껏 자신을 칭찬한 것이 진심이 아니었다는 걸. 문학은 슬픔이고 아픔이라는 걸 이 학교에 와서 알았다.

전래 동화, 명작 동화를 함께 읽을 때였다. 한 아이가 울고 있다고 다른 아이들이 나한테 알려준다. 그 아이가 읽고 있던 책은 '플랜더스의 개'였다. 병이 깊은 엄마와 둘이 살아가는 아이다. 나는 이 학교에 와서 아이들과 문학 작품을 읽으며 알았다. 천사들은 왜 가난한 동네에 많이 사는지.

중3을 함께한 아이들이 다음 달 졸업한다. 코로나19로 힘겨운 2020년을 서로 보듬어가며 살아내고 났더니 '영끌' '벼락거지'란 말들이 남은 시절이다. 아픔과 슬픔에 공감 잘하는 천사들을 더 가난해진 세상으로 내보내야 한다. 가난에 속수무책인 공감력으로 뭘 할 수 있을까 싶다가, 상처받은 이에게 내밀 수 있는 비상상비약이기도 하니까 가난한 세상에서 외롭지 않게 살 수 있을 거라 싶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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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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