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억 교수의 '톡! 톡! 유럽'] 구글·아마존도 무릎 꿇린 규제권력 유럽연합

  • 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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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1-29   |  발행일 2021-01-29 제21면   |  수정 2021-01-29
27개국 4억5천만명의 세계 3위 단일시장
일부 정치분야까지 점진적 통합 진행 중
단순 경제블록 넘어 글로벌 막강 영향력
개인정보보호법 강화해 IT 공룡기업 규제
'그린딜' 추진으로 기후위기 대응책 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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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룻밤에 읽는 영국사' 저자

유럽통합을 연구하기 위해 유럽의 저명한 정책 연구소와 주요 대학의 연구물을 e메일 알림서비스로 받는다. 2018년 초부터 거의 동일한 내용의 e메일을 받았다. 유럽연합(EU)이 한층 강화된 개인정보보호법을 만들었고 이에 동의해야 앞으로도 서비스를 계속해서 받을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런 정보 동의 요청은 비단 유럽의 연구소나 대학에만 보낸 게 아니었다. EU 회원국 시민들의 개인 정보를 보유한 모든 기업이나 연구소 등에도 해당됐다. 유럽에 진출한 국내 기업들도 유럽 고객에게 별도의 동의를 받아야 했다. EU는 그해 5월25일부터 일반 개인정보 보호규정(General Data Protection Regulation, GDPR)을 시행했다. 정보를 제공한 시민의 권리 증진과 보호 강화가 핵심이다. EU 27개 회원국이 동일한 법을 적용한다. 이 법이 준비될 때 당시 미국의 거대 정보통신 기업인 '가파'(GAFA, 구글·애플·페북·아마존)는 너무 부담이 크다며 강력하게 반대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만큼 EU의 규제가 강력하고 유럽 시장에 진출한 기업은 모두 다 이를 준수해야 한다. 위의 사례는 EU의 막강한 파워를 보여준다. 우리는 흔히 EU를 경제블록으로만 알고 있다. 그러나 EU의 규제와 그 영향은 세계 각국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브뤼셀 효과'(Brussels Effect)

영국이 지난달 31일 EU에서 탈퇴했지만 EU는 27개 회원국에 4억5천만명 정도의 인구를 지닌 대규모 단일시장이다. EU의 경제 규모는 세계 경제의 13.6%로 중국과 미국에 이어 3위를 차지한다.(2019년 IMF 자료, 구매력 평가 기준) 원래 2위였다가 영국이 탈퇴한 후 한 단계 내려갔다. 회원국 시민들은 다른 회원국으로 자유롭게 이주해 일할 수 있다. 비자가 필요없다. 상품이나 서비스뿐만 아니라 사람도 제한없이 자유롭게 이동한다. 비단 경제분야에만 그치지 않는다. 다른 회원국에서 거주하는 시민들은 (예컨대 독일인이 이탈리아에서 거주할 경우) 그곳 시의회와 유럽의회의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갖는다. 통합이 일부 정치분야까지 점진적으로 이루어져 왔다.

미국 컬럼비아대 법학대학원의 애누 브래드퍼드(Anu Bradford) 교수는 '브뤼셀 효과'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EU가 개인 정보 보호나 환경·노동 등 각 분야에서 기준을 세우고 미국이나 중국, 다른 국가들도 이를 준수해야만 한다는 것. 아주 규모가 큰 시장에 진출하려면 수출 상품을 EU가 요구하는 표준에 맞춰 제작해야만 한다. EU 회원국에 투자하는 다국적 기업들은 당연히 수준 높은 노동자 보호와 환경 규제를 지켜야 한다. EU가 야심차게 추진 중인 '그린딜(Green Deal)'을 한 번 살펴보자.

◆통상분쟁이 예상되는 탄소국경세

EU는 지난해 야심찬 기후위기 대응책을 제시했다.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도와 비교해 55% 감축하고, 2050년까지 탄소 중립을 이루기로 회원국들이 합의했다. 지난 20일 출범한 미국의 바이든 행정부도 2050년까지 탄소 중립을 선언했고 유사한 기후위기 정책을 시행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 정부도 2050년까지 탄소 중립 정책을 제시했다.

EU의 그린딜 가운데 쟁점의 하나가 탄소국경세다. EU로 수출되는 제조품의 경우 이산화탄소를 순배출하는 국가는 추가로 관세를 지불해야 한다.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국가라도 이 규정에 따라 인하된 관세가 더 부과될 수 있다. 중국과 인도, 아세안과 우리는 대표적인 이산화탄소 순수출국이다. 반면에 EU는 이산화탄소 순수입국이다. 2000년대부터 강력한 기후변화 정책을 실행해온 EU 회원국들은 온실가스 배출량을 크게 줄였다. 아직까지 기후변화를 준수하며 제품을 생산할 경우 그렇지 않을 때보다 제조원가가 비싸다. EU는 이 차액을 관세로 거두려 한다. 유럽연합은 올해 안에 관련 법을 완비할 예정이다.

중국은 물론이고 미국조차 이런 정책에 불만이 높다. 세계 각국이 기후변화에 공동 대응을 해야 한다는 인식은 있지만 국가별로 상이한 경제발전의 단계나 다른 이유를 들어 마지못한 반응을 보였다. 따라서 중국은 이를 보호무역의 하나로 규정하고 통상분쟁으로 만들 가능성이 있다. EU는 기후대응 선도자의 정체성을 확실하게 보여주기 위해 하나의 국제 규범으로서 이를 제시하고 실천 중이다.

한-EU FTA는 2015년 12월부터 발효됐다. 상호 교역에서 관세가 인하돼 국내로 수입된 EU제품의 가격이 내려갔고, EU로 수출된 국내 자동차 가격도 떨어졌다. 그러나 탄소국경세가 도입되면 우리는 추가로 관세를 지불해야 하기 때문에 이런 가격인하 효과가 줄어든다. 세밀한 관련 대책이 필요하다.

◆유럽식, 미국식, 중국식의 개인 정보 보호

데이터는 흔히 디지털 시대의 원유라 불린다. 그런데 우리가 만들어내는 수많은 데이터를 구글이나 페북 등 거대 정보기업들은 대부분 공짜로 사용해 막대한 수익을 낸다. 왜 우리는 이들에게 원유와 같은 데이터 사용 비용을 청구하지 못할까? 최소한 우리 데이터를 제대로 보호해 개인 사생활을 침해하지 않게 하는 게 필요하다. 이에 대해서는 크게 미국식, 중국식, 유럽식 정책 틀이 대조를 이룬다.

미국은 '가파'와 같은 정보통신(IT) 기업의 천국이라 할 수 있다. 실리콘 밸리가 혁신의 아이콘이듯이 개인정보 보호 규정도 이들의 입김이 크게 반영된다. 지난 6일 트럼프 전 미 대통령 지지자들이 의사당에 난입한 후 트위터와 유튜브는 트럼프 계정을 영구 정지했다. 이전의 수많은 유사 사례에서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던 이들이 자의적으로 이런 결정을 내렸다. 즉 정부가 정한 개인정보 보호와 폭력 선동 금지 규정을 따른 것이 아니다.

중국은 조지 오웰의 소설 '1984'가 구현된 곳이다. 시민의 일거수 일투족을 낱낱이 감시하는 거대한 공산 독재국가다. 정부가 IT 기업의 정책은 물론이고 데이터 활용 등 모든 것을 관장한다.

EU는 정책 당국이 IT를 규제한다. 그리고 개인정보 보호와 데이터 주권을 미국식의 소비자 권리가 아니라 인권의 개념에서 본다. '가파' 기업들은 계속해서 EU의 행정부 역할을 하는 집행위원회에 막대한 벌금을 납부해야 했다. 이들의 독과점 행위와 같은 시장왜곡 정책이 지속적으로 적발됐기 때문이다.

국내 기업들도 종종 대규모 개인 정보 유출 사건을 겪었다. 급속하게 발전 중인 디지털 시대에 걸맞는 개인 정보 보호와 데이터 주권 강화에 힘을 모아야 한다. 〈대구대 국제관계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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