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포유 커버 스토리] 고령대가야시장 설밑 풍경 1...老母는 오늘도 내어줄 것을 준비합니다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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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2-05   |  발행일 2021-02-05 제33면   |  수정 2021-02-05
코로나 때문에 '반쪽' 설 이지만
선도 악도 아닌 살아내야 할 일상
부모는 자식 위한다면 천하무적
일상 쌓이고 쌓인 '세월의 낙관'
老母의 거친 손은 숭고한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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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밑이 되면 노모의 마음은 설레면서도 한없이 분주해진다. 집으로 돌아올 내 새끼들에게 더 맛있는 걸 해먹일 생각 때문이다. 노인의 손. 세월이 알집버전으로 모여있다. 그걸 낡음과 초라함으로 읽을 순 없다. 젊은 시절 그 통통했던 살점은 그믐밤처럼 저물어 버렸다. 제 새끼들이 다 가져 가버린 탓이다. 바닷물이 빠져나간 자리에 드러난 갯벌의 낙관(樂觀), 그게 그들의 손인 것이다. 고령대가야시장 뻥튀기집에서 만난 어느 노모의 잘 익은 손.
일상(日常)의 마디를 만져본다. 일상, 참 무섭고도 냉혹한 놈이다. 제 아무리 잘난 자도 그 앞에선 옴짝달싹 못한다. 혹독한 대가를 치러내야 자기가 원하는 뭔가를 조금 가져갈 수 있다. 사춘기는 술 앞에선 영웅이 될 수도 있지만 술 깨고 나면 다들 '개털'로 추락한다. 이유가 뭔가? 살아내야 할 일상 때문이 아닌가.

복병이 나타났다. 코로나19, 이놈 때문에 반쪽 설이 될 것 같다. 야, 이 코로나야, 너희들은 설명절 안 쇠냐? "……" '묵묵부답'이다. 그래, 이 모든 게 인류사의 자업자득 아니겠는가. 제발 인간과 바이러스 사이에 신사협정이 잘 체결돼 서로의 영역을 존중했으면 좋겠다.

선도 악도 아닌 일상. 누구에게나 주어진 일상. 하지만 어떤 놈은 상전이 되고 어떤 놈은 하인이 된다. 일상이 쌓이고 쌓여 '세월'이 되고 그만큼 자기 버전의 '연륜'도 생겨나게 된다. 연륜이 있기에 사람을 함부로 대해선 안된다. 도처에 강호고수들이다. 모두 일상이란 세월을 무사히 건너왔기 때문이다. 그 세월이 키워낸 연륜이 '부모'란 옷을 입게 되면 무불통지·천하무적이 된다.

한 개인은 한없이 나약하지만 부모란 버전으로 편집되면 어마무시한 생존력을 갖게 된다. 모르긴 해도 조물주가 피조물에게 안겨준 신의 한 수가 있다면 '부모' 아니겠는가. 부모가 되기 전, 사춘기에는 꿈과 희망이 무지개 저 너머에 있는 줄 알지만 부모가 되고 나면 내 새끼가 꿈이고 희망이라는 걸 안다. 그 가족이란 테두리가 서민의 꿈과 희망이 파종되는 영토의 경계이듯.

자살로 삶을 마감하는 애절하고 박절하고 처연한 생도 있지만 우리들은 어떻게든 버텨낸다. 숭고하다. 우열도 없다. 극지의 펭귄이 무자비한 설한풍을 견디기 위해 서로의 등에 의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살다보면 일상이 무상할 때가 있다. 내 새끼가 분가해 독립을 했을 때다. 홀가분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다. 바람 차고 달빛 유난히 빛날 때, 부부는 서로에게 의지하면서 긴긴 겨울밤을 삼켜낸다. 늘 손바닥에 집혔던 아이들의 볼살도 이젠 만져지지 않는다. 전화통화도 해보고 사진앨범도 뒤적거리지만 뭔가 1% 부족하다. 저승 갈 날은 가까워지고…. 하여 그 먹먹한 가슴에 짠하게 다가서는 하늘의 선물이 있는 것이다. 그게 '명절(名節)' 아니겠는가.

일상, 그 하나로는 뭔가 부족한 것 같고. 세상은 너무 아득하고 세월은 너무 청승맞고, 그렇다면 가슴에 품고 시절을 삭혀내는 데는 '추억(追憶)'이 딱이지. 시절이란 놈에겐 대나무처럼 마디가 있다. 좋았던 시절, 그리웠던 시절, 어려웠던 시절….

설 같은 명절을 앞두고 집으로 돌아올 내 새끼들을 위해 이런저런 먹을거리를 장만할 때, 그 추억의 부피는 뻐근할 정도로 넓게 확장된다. 아이들은 배꼽마당(동네어귀에 있는 작은 마당)에 모여 자치기, 비석치기, 구슬치기, 딱지치기 등 온갖 치기놀이를 순례한다. 이젠 다들 PC게임판으로 가버렸지만.

오, 이젠 갈 수 없는 어린시절. 하지만 농경사회가 파종한 그 시절은 흑백사진 원판처럼 세월이 갈수록 빛을 더 발한다. 그러나 지금 이 스마트폰 시절의 추억은 업그레이드버전만으로 존재한다. 디지털 추억시절인 것이다. 그리고 초고학력 스펙시대, 할머니의 동화도 유명무실이다. 아이들은 조부모의 무릎보다 학원이 더 간절하다. 그래도 할배·할매의 맘은 그게 아니다. 손주들에게 줄 세뱃돈을 신권으로 바꿀 준비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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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가 'ㄱ'자로 꺾인 한 노모가 국밥촌 앞을 지나가자 보다 못한 국밥집에서 피어난 김이 노인의 손을 살며시 잡아준다.
노인의 손. 세월이 알집 버전으로 모여 있다. 그걸 낡음과 초라함으로 읽을 순 없다. 젊은 시절 그 통통했던 그 살점은 그믐밤처럼 저물어 버렸다. 그 살점은 제 새끼들이 다 가져가 버렸다. 바닷물이 빠져나간 자리에 드러난 갯벌의 '낙관(樂觀)', 아니 세월의 낙관(落款), 그게 그들의 손인 것이다.

기자는 4·9일장이 서는 경북 고령대가야시장으로 차를 몰았다. 일상의 노동이 조탁해낸 이 시대 어머니·아버지의 손금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글·사진=이춘호 음식·대중문화 전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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