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의 피플] '대구 전태일기념관 건립 진두지휘' (사)전태일의 친구들 이재동 이사장

  • 김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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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2-24   |  발행일 2021-02-24 제13면   |  수정 2021-06-27 14:22
"약자 위해 싸우고 목숨까지 던졌던 '전태일 정신' 필요한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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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태일의 친구들은 전태일 열사 옛집을 지난해 매입한 데 이어 올해부터는 기념관 조성에 나선다. 이재동 이사장은 "노동자 보호만이 아니라 약자 보호를 위해 목숨까지 던졌던 전태일 열사의 정신을 기리고 그의 삶을 추억하는 공간으로 만들어 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지용기자 sajahu@yeongnam.com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쉬게 하라. 노동자들을 혹사하지 말라." 1970년 11월13일, 22세의 전태일 열사가 서울 청계천에서 분신할 때 외친 말이다. 전 열사는 한국 노동운동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전태일이 없었다면 한국 노동자들의 인권은 수십 년 뒤에나 존중받았을 것'이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그의 죽음은 한국 사회에 큰 충격을 줬다. 나아가 한국 노동운동과 민주주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전 열사의 고향은 대구다. 대구가 자랑스러워해야 할 인물이다. 하지만 오랜 시간 그에 대한 관심은 소수의 사람에게만 한정됐다. 서울에는 2019년 전태일기념관이 건립됐는데 그가 태어나고 어린 시절을 보냈던 대구에는 그의 흔적을 기리는 곳이 없었다. '〈사〉전태일의 친구들'이 이런 아쉬움을 풀어줬다. 전 열사 분신 50주기를 맞아 그가 십대 때 살던 집을 시민 성금을 통해 모은 돈으로 지난해 매입했다. 대구에도 전 열사를 추억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된 것이다. 전태일의 친구들은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기념관 조성에 나선다. 이를 진두지휘하는 전태일의 친구들 이재동(62) 이사장을 만났다.

전태일 열사 중구 남산동 옛집
한때나마 온가족 모여살던 곳
일기에 가장 행복했던 때로 써

시민들 성금으로 옛집 사들여
기념관 건립 '큰 산' 넘었지만
운영비 해결 지자체 도움 절실


▶전태일의 친구들에서 매입한 옛집은 어떤 의미가 있나.

"전 열사는 중구 남산동에서 태어났다. 생가 인근에 있는 이 집은 전 열사가 1963년부터 1년 반 정도 살았던 곳이다. 그가 쓰던 2칸짜리 방은 현재 허물어져 없다. 전 열사는 당시 명덕초등 안에 있던 청옥고등공민학교라는 야간학교에 다녔다. 그의 일기에는 이곳에서 살 때가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때'라고 적혀있다. '그늘과 그늘로 옮겨 다니면서 자라온 나는 한없는 행복감과 인간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인 서로 간의 기쁨과 사랑을 마음껏 느꼈다'라는 문구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전 열사가 정식학교에 다닌 것은 초등학교 시절 3년간밖에 없다. 청옥고등공민학교에서 중학교 과정을 배웠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 살았는데 이 집에서는 온 가족이 함께 살았다."

▶전 열사 가족이 살던 방은 허물어져 없는데.

"그래서 3월쯤 이 공간을 어떻게 복원할지에 관한 세미나를 열 계획이다. 중구청, 도시재생전문가, 건축사 등과 함께 토론, 연구해 방향을 잡으려 한다. 현재는 주인이 살던 본채만 남아있다. 이 집도 지은 지 오래되어서 상태가 좋지 않다. 전 열사가 살던 방은 복원하기로 정했다. 본채는 허물고 새로 지을지, 수리해 사용할지 등에 대한 이견이 있어 조율이 필요하다."

▶옛집을 매입하게 된 계기는.

"8년 전쯤 전 열사의 남동생(전태삼)이 이 집을 사겠다고 나섰지만 경제적 여건이 되지 않아 매입하지 못했다. 2010년대 중반부터 전태일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기 시작하면서 지역 한 방송이 전 열사와 관련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극단에서 그의 삶을 조명한 연극도 선보였다. 대구문화재단에서는 '대구에서 전태일을 기억하기-전태일로 본 대구 정체성'을 펴내기도 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2019년 3월 전 열사 옛집을 매입하기 위한 단체로 전태일의 친구들이 설립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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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로 활동 중이다. 어떻게 이사장을 맡게 됐나.

"2015~2016년 대구지방변호사회 회장으로 활동했다. 전 열사에 관한 관심이 불붙으면서 '전태일 평전'을 집필한 인권변호사 조영래 선생에 관한 관심도 덩달아 높아졌다. 전태일 관련 세미나 등이 개최됐고 변호사회 회장 자격으로 발표할 기회가 있었다. 이것이 계기가 돼 전태일·조영래 선생에 관해 공부했다. 그들을 알아갈수록 존경심이 커갔다. 자연스럽게 전태일기념관 설립 관련 법인을 만드는데 준비위원으로 참여했고 이사장직까지 맡았다."

▶전 열사 옛집을 시민 성금으로 매입해 더 의미가 있다고 했는데.

"시민 3천여 명의 성금이 뜻깊은 결실을 보았다. 저금통을 가져온 어린이, 시장 상인, 비정규 노동자, 예술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령대, 직업군의 시민이 따뜻한 정성을 보탰다. 미술가와 음악가들은 기부 전시회와 콘서트를 마련해 몇천만 원의 성금을 모았다. 대구시민만이 아니라 전 국민이 십시일반 모은 소중한 성금이다. 대구에서 모금 운동을 통해 몇억 원을 모은 사례는 국채보상운동기념관 건립 때뿐인 것으로 안다. 그 당시는 기업인들이 큰 도움을 줬지만 전 열사 옛집 매입 때는 시민이 중심이 됐다는 점에서 유의미하다."

▶코로나19 때문에 매입에 어려움을 겪었다.

"지난해 초 코로나19가 터져 성금 활동이 난항을 겪었다. 계약금과 중도금을 지급한 뒤 잔금을 치러야 하는데 코로나 사태로 시민 모금이 쉽지 않았다. 다행히 집주인도 주택 구매 자금이 시민 모금으로 마련된다는 사실을 알고 참아줬다. 집주인이 그 집에서 이사 나온 뒤에도 관리해 주고 있어 고맙다. 전 열사 50주기인 지난해에는 각종 단체, 정부, 언론 등에서도 그의 삶과 노동 운동을 재조명했다. 뜻깊은 해에 옛집을 매입해 다행이었다."

▶이 시대에 '전태일 정신'이 필요한 이유는.

"그가 분신자살한 뒤 50여 년간 우리 사회는 엄청나게 발전하고 물질적으로도 풍요해졌다. 하지만 사회적 모순이나 불공정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특히 코로나 사태로 인해 빈부격차가 심해지고 취약계층의 고통이 가중됐다. 전 열사가 위대한 것은 자신도 어려웠지만 더 힘든 여공들을 위해 싸우고 목숨까지 바친 데 있다. 그의 죽음은 노동자 보호만이 아니라 약자 보호라는 점에서 더 숭고하다."

▶주택 매입이라는 큰 산을 넘었지만 기념관 조성 비용 마련도 쉽지 않을 듯한데.

"주택 매입을 위한 시민 성금으로 5억원 정도 모았다. 주택 매입에 4억3천만원을 쓰고 8천만원 정도의 사업비가 남았다. 지금도 여전히 필요한 그의 정신을 기리고 그의 삶을 추억하는 공간으로 조성하려 한다. 이 비용은 주택 매입비보다는 훨씬 적을 것이다. 2차 시민 모금으로 마련해야 하는데 코로나 때문에 걱정이다. 이후 기념관을 운영 관리하기 위한 비용도 필요하다. 정기후원자들이 있어 최소한의 금액은 매달 모이지만 월 300만원 정도가 돼야 제대로 된 운영이 가능할 것 같다. 이 문제 해결을 위해 지자체의 도움이 필요하다."

▶전태일기념관을 대구 관광 유산으로 만들고 싶다고 했다.

"전 열사 옛집 매입 사실이 언론 등을 통해 알려지자 아직 복원이 안 되었는데도 시민, 문화관광해설사 등이 이곳을 찾고 있다. 청옥고등공민학교가 있었던 명덕초등과 그 인근에 있는 2·28민주운동기념사업회관, 성모당 등을 잘 연결하면 시민의 발길을 끄는 관광 유산이 될 수 있다. 편하게 찾고 볼거리 있게 만드는 게 관건이다."

논설위원 syki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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