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경의 영화의 심장소리] 피아니스트의 마지막 인터뷰 (클로드 라롱드 감독·2019·캐나다)

  • 유선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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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3-19   |  발행일 2021-03-19 제39면   |  수정 2021-03-19
인생의 마지막을 대하는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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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급의 예술가가 평생 쌓아올린 업적이 무의미하게 느껴진다면 어떨까. 타인이 아무리 칭송한다 해도 깊은 우울감에 빠져 모든 것에 의욕을 잃는다면. 정상급 피아니스트 헨리 콜은 연주곡이 기억나지 않아 고통스럽다. 2년 만의 재기 무대다. 간신히 연주를 끝낸 그는 극장을 뛰쳐나온다. 부인의 죽음 후 깊은 우울에 빠져 있는 그에게 음악 담당 기자 헬렌이 다가온다. 그녀는 자신의 연주를 무가치하게 여기며 실의에 빠진 헨리를 따뜻하게 돌봐준다.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깊은 마음의 교류가 생기고, 헨리는 원래의 모습을 조금씩 회복해간다. 연주회를 뒤로한 채 헬렌이 권유한 마을로 여행을 떠난 그에게 새로운 변화가 생긴다.

영화의 원제는 'CODA'. 이탈리아어 꼬리에서 유래한 음악 용어로 곡의 종결부를 뜻한다. 여기서는 삶의 마지막 부분을 상징하는 것 같다. '엑스맨' 시리즈의 패트릭 스튜어트와 톰 크루즈의 전 부인으로 유명한 케이티 홈즈가 주연을 맡았다. 베테랑 두 배우의 연기 앙상블이 뛰어나다. 센트럴 파크, 링컨 센터, 프랑스 페리고르, 스위스 알프스 등의 아름다운 배경이 영화를 빛나게 한다. 무엇보다 베토벤, 바흐, 슈만, 쇼팽, 슈베르트 등 27곡의 클래식 연주가 귀를 즐겁게 한다. 몬트리올 국제 음악 콩쿠르에서 우승한 세르히 살로브가 전곡을 연주했다. 영화 후반부에 카메오로 출연해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30번을 연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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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경 시인·심리상담사

영화의 첫 대사가 인상적이다. "음악이 없다면 인생은 한낱 실수일 뿐이다"란 프리드리히 니체의 말이다. 그가 실제로 묵었다는 스위스 마을이 주요 배경으로 등장한다. 이야기 구조는 다소 밋밋하지만 주인공의 깊은 고뇌 속에 흘러나오는 아름다운 음악과 배경이 눈과 귀를 황홀하게 한다.

모든 것이 덧없고 무의미하게 여겨지는 것은 누구나 한 번쯤 겪는 일이다. 유명인이 아니더라도 헨리의 방황은 충분히 공감이 가는 이야기다. 얼마 전 힘든 일이 있을 때였다. 문득 영화 속 헨리의 고독한 여정이 떠올랐다. 산길을 홀로 걸으며 '니체 바위'를 만지고 서 있는 그의 모습을 기억했다. 니체가 '영원회귀' 사상을 떠올렸다는 그 바위다. 긴 세월 그곳을 묵묵히 지키고 있는 바위. 나도 함께 그 바위를 만지고 서 있는 기분이었다. 음악과 풍경, 그리고 깊은 고민에 빠진 예술가 옆에서 조용한 위로를 얻었다.

결국 헨리를 구원한 것은 사랑이고, 음악과 삶에 대한 감사였다. 연주를 포기하려는 그에게 헬렌은 존경과 사랑으로 찬사를 보낸다. 인터뷰 기사를 통해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그의 연주는 "살아있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알려준다"고. 또한 "슈만, 바흐, 베토벤을 향한 고마움을 느끼게 한다"고 했다. 이 말에 힘을 얻은 그는 무사히 마지막 연주를 끝낸다. 영화는 조용히 묻는다. 인생의 CODA, 즉 종결부를 어떻게 장식할 건가요? 영화 덕분에 당연하게 여겼던, 고마운 것들을 떠올려본다. 인생의 후반전을 미리 생각해봐야겠다고 마음먹는다. 영화가 참 고맙다.


<시인·심리상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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