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로 보는 대구문화 아카이브 .7] 김진만…서화가이며 독립운동가, 지역서 기명절지화 선도

  • 김봉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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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3-29 08:09  |  수정 2021-04-22 16:20  |  발행일 2021-03-29 제20면
문인의 품격 담은 기명절지화 화풍 확립…기교없이 그린 묵죽선 독립운동 투신한 곧은 절개 드러나
'대구 권총사건'으로 옥고 치른 뒤 작품 전념…못다한 애국의 뜻 아들·손자가 이어 3대가 독립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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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묵죽, 기명절지, 갈대와 게.

긍석(肯石) 김진만(1876~1934)은 국내외에 시서화로 이름을 떨치던 영남 서화계 중심 인물 석재(石齋) 서병오(1862~1936)의 수제자로, 서화가이며 독립운동가였다. 서병오의 조카사위이기도 하다.

서화가로서 그는 서병오의 영향을 받은 화풍의 사군자 그림도 물론 그렸지만, 특히 기명절지화(器皿折枝畵)를 많이 남겨 대구 서화계에서 기명절지화가 성행하게 되는 선구자가 되었다. 김진만은 기명절지화에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다양한 도상들을 섭렵하였으며, 품격 높은 사의화풍으로 발전시켰다. 그는 수묵을 위주로 하면서 약간의 담채를 사용, 사의적 표현과 사실적 묘사를 적절히 혼용함으로써 화훼와 기물을 개성적으로 표현했다.

독립운동가로서 김진만은 1916년 독립운동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동지들과 함께 자신의 장인 집에 침입한 대구 권총사건으로 세인을 놀라게 한 주인공이다. 김진만의 집안은 그의 아들과 손자 3대까지 독립운동에 투신한, 보기 드문 가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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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병오는 팔능거사(八能居士)로 불렸던 만큼 분야마다 많은 제자를 배출했다. 그중 서화계의 대표적 제자가 김진만이다. 서병오는 김진만의 예술에 대한 자질과 인품에 반해 자신의 호에서 '석(石)'자를 가져와 '긍석'이라는 아호를 특별히 지어주었으며, 화제를 통해 그를 '벗(友)'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서병오의 수제자였던 김진만

서병오의 제자인 우송(又松) 신대식(1918~85)은 자신이 엮은 책 '석재 서병오'에서 김진만에 관해 '석재 선생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았을 뿐만 아니라 실로 석재 선생의 수제자로서 문기 넘치는 탁월한 서화가였다. 석재 선생보다는 10여 세 연하이고, 석재 선생 댁에는 매일같이 왕래하였으며, 선생의 애호를 많이 받았다'고 기술하고 있다.

김진만이 먼저 별세하자 서병오는 추모시 '만긍석진만(輓肯石鎭萬)'을 통해 그에 대해 각별한 감회를 드러냈다.

'옛날 그대와 함께 만리 길 간 것 생각하네(憶昔同君萬里行)/ 초나라와 오나라 산하 이리저리 다녔지(楚山吳水路縱橫)/ 위해(威海) 뱃머리에서 이별하던 일 기억하는가(奇曾威海船頭別)/ 눈물 어린 눈에서 가고 멈춘 정을 보았지(淚眼相看去住情)// 마음 따라 붓 한 자루 휘두르니(隨意揮來筆一枝)/ 동파의 서체요 사정의 시로다(東坡書體士亭詩)/ 그대 옥과 같고 삼절을 겸했으니(其人如玉兼三絶)/ 글씨 쓰는 이 헤아려 봐도 누가 다시 있는가(歷數臨池更有誰)// 난초와 계수나무 꺾인 소식 차마 못 듣겠네(蘭桂折不堪聞)/ 인간의 모든 일 뜬구름 되었구나(萬事人間盡化雲)/ 슬프다 영혼마저 부를 길 없는데(靈魂招不得)/ 옛산에 낙엽만 비오듯하네(舊山黃葉雨紛紛).'

1876년 8월 대구에서 태어난 김진만은 부유한 집안에서 한학과 서화를 배우면서 성장한 것으로 보인다. 김진만은 서병오의 두 차례에 걸친 중국 주유를 모두 함께했다. 1차 주유(1898~1902) 때 상하이(上海), 쑤저우(蘇州) 등을 석재와 함께 다니며 여러 유명 예술인과 정치인 등을 만나 교유했고, 2차 주유 때(1908~1911)도 석재를 수행해 상하이와 칭다오(靑島) 등을 돌며 포화, 손문, 제백석 등 많은 현지 인사들과 교유했다. 두 차례에 걸친 중국 주유는 김진만의 작품세계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러던 김진만은 1915년 (대한)광복회에 가입, 본격적으로 독립운동에 투신한다. 일제강점기 무장독립운동 단체인 대한광복회는 독립군 양성을 목적으로 군자금 모집과 무기 구입에 역점을 두면서, 친일부호 처단 등도 당면과제로 삼았다. 경북 풍기에서 발족된 광복단과 대구의 조선국권회복단 일부 인사가 모여 1915년 7월 대구에서 (대한)광복회를 결성했다. 총사령은 박상진이 맡았다.

그는 군자금을 모금하기 위해 1916년 8월 총사령으로부터 받은 권총을 휴대하고 동생 김진우와 정운일, 최병규 등과 함께 대구 부호 서우순(김진만의 장인)의 집에 숨어들었다. 그러나 서우순이 비명을 지르고 그의 집사가 달려와 격투가 벌어지면서 김진우가 권총을 발사한 뒤 도망가게 되었다. 일행은 일단 탈출했으나 곧 일본 경찰에 붙잡혔다. 유명한 '대구 권총사건'이다.

그는 1년 후 이 사건의 주모자로 10년 징역을 선고받았다. 8년여의 옥고를 치르고 1924년 6월 출옥했다. 출옥 후에도 서병오의 사랑채를 드나들며 교남시서화연구회를 꾸려갔다. 1931년에는 팔공산 동화사 사적비 글씨를 쓰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34년 초 대구 자택에서 서병오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다. 김진만은 감옥에서 나온 후 서화로 말년을 보내지만, 둘째 아들 김영우가 독립운동을 하다 투옥돼 옥고를 치른 후 3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이런 일로 인한 정신적 충격과 옥고로 인한 건강 훼손으로 일찍 별세하게 되었다. 손자 김일식은 대구고보 재학 중 동맹휴학을 이끌다 퇴학당한 뒤 대구 항일학생운동의 중심인물로 활동했다.

1977년 김진만의 독립운동이 인정되어 건국훈장 국민장이 추서되었다.

◆김진만의 작품세계

김진만은 오랜 기간 독립운동과 옥중생활을 했기 때문에 서화에 전념할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 남아있는 작품도 그리 많지 않다. 1905년부터 40세가 되던 1916년 대구 권총사건이 일어나기까지 독립운동에 참여하느라 작품활동에 전념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작업에 전념한 기간은 출옥 후 별세할 때까지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남긴 소수의 작품들만으로도 대구 서화계에 남긴 발자취는 누구 못지않다. 그가 남긴 작품은 기명절지와 묵죽 작품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기명절지화는 구도 감각과 묘사력이 요구되는 분야로, 작품을 보면 그가 남다른 회화적 소질도 지녔음을 알 수 있다.

김진만의 작품세계와 예술관은 그의 작품에 사용된 화제를 통해 가늠해볼 수 있다.

'서법에는 두 가지 도가 있으니, 하나는 그 형상을 모방하는 것이고, 하나는 정신을 그리는 것이다. 모방은 쉬우나 정신을 그리기는 어렵다(書法二道 一是模其形者也 一是寫其神者也 模也易寫神難)'.

서화 작업에 있어 기교나 기예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에 담긴 정신세계의 품격이 핵심임을 강조했다.

지조·절개 등을 상징하는 대나무는 사군자 중에서도 문인화가들이 특히 좋아했다. 김진만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작품에 쓴 화제에서도 그의 정신을 드러내고 있다.

'절개를 품으면 서리와 눈을 맞아도 고치지 않고, 죽림을 이루어 마침내 봉황과 더불어 함께할 것을 기약하네(抱節不爲霜雪改 成林終與鳳凰期)'.

김진만의 묵죽은 서화 작품 중에서도 특히 그의 성품을 드러내듯 강직하며 기교를 찾아볼 수 없는 필법을 보여준다. 그는 기능이나 기교에는 별 관심이 없고 독립운동에 투신한 자신의 의지와 곧은 절개를 드러내는 것이 중심이었다고 할 수 있다.

김진만은 서화작품 중 기명절지 그림을 비교적 많이 남긴 서화가다. 당대 서화가로는 기명절지화를 많이 그리고 잘 그렸던 작가로 꼽힌다. 서병오가 기명절지화를 수묵화의 화풍으로 소화해 대구화단에 소개했지만 많이 그리지는 않았다. 반면 김진만은 기명절지화에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집중함으로써 자신만의 화풍을 이루었다.

기명절지화는 학식 있는 문인의 품격을 나타내는 고대 청동기나 도자기, 부귀와 장수 등 길상적인 의미를 가진 꽃, 과일, 괴석(怪石) 등을 함께 그린 일종의 정물 그림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장승업(1843∼97)이 중국 그림을 참고하여 새로운 형식의 기명절지화를 창안하였고, 근대 화단에서 크게 유행하였다. 기명절지화는 점차 궁중에서 민간에 이르기까지 수요층이 확대되면서 활발히 제작되었다.
김봉규기자 bgki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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