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실크로드에서 삶을 묻다](https://www.yeongnam.com/mnt/file_m/202505/news-p.v1.20250511.62b1e98233a54ff783f69e16db1d73ea_P1.png)
신경용 금화복지재단 이사장·한국문인협회 달성지부 회장
찬 기운 감도는 3월의 새벽, 우리는 도시의 불빛을 등지고 길을 나섰다. 리무진 안, 말없이 스미는 침묵. 그러나 그것은 공허가 아니었다. 세월을 넘어온 이들만이 품을 수 있는, 깊은 고요였다. 실크로드. 이름만으로 가슴 설레는 길. 낙타와 상인의 발자국 위에 문명이 오고 갔고, 사랑과 배신, 전쟁과 평화가 얽혔다. 우리는 풍경을 보는 여행자가 아니라, 자신의 삶을 되짚는 순례자가 되었다.
화산(华山)의 절벽 위를 케이블카로 오를 때, 심장은 오래된 시처럼 또렷이 뛰었다. 바람은 차고, 계단은 가팔랐다. 그러나 묵은 감각은 되살아나고, 우리는 다시 한 발을 내딛었다. 그 순간, 발밑으로 펼쳐진 풍경은 단순한 자연의 아름다움을 넘어, 삶의 굴곡과도 같았다. 깎아지른 절벽은 우리가 지나온 시간의 깊이를, 하늘을 향해 뻗은 산봉우리는 앞으로 나아갈 희망을 상징하는 듯했다.
“나는 아직 오를 수 있다." 흔들리던 숨결 속에 희미한 확신이 피어났다.
진시황릉 병마용 앞에서는 시간을 묻는다. 수천 기(基)의 무표정한 병사들, 죽음을 넘어 영원을 꿈꾼 황제의 집착이 고요히 서 있었다. 그들의 눈동자는 비어 있었지만, 그 침묵 속에는 수많은 이야기가 숨어 있었다. 전쟁의 소리, 명령의 외침, 그리고 침묵 속에 사라진 이름 없는 이들의 삶이 느껴졌다.
“과연, 무엇이 영원할 수 있을까."
화청지의 연못가, 당현종과 양귀비의 사랑은 천년을 넘어 여전히 가슴을 울린다. 권력의 심장부에서 피어난 사랑은 아찔하고도 뜨거웠다. 그들의 이야기는 단순한 로맨스를 넘어, 인간의 욕망과 권력, 그리고 그로 인한 비극을 담고 있었다. 연못에 비친 우리의 모습은, 그들의 사랑과 닮아 있었다. 우리는 오래도록 그 앞을 떠나지 못했다. 밤이 되면 대극장에서 펼쳐진 실크로드 가무극. 무사와 시인, 상인과 낙타가 뒤엉킨 무대는 문명의 숨결 그 자체였다. 인생도 저들처럼 흔들리지만, 결국은 지나간다. 속으로 되뇌었다.
“모든 삶은 흐르고, 흘러간다."
여정의 끝자락, 우리는 더 이상 낯선 이들이 아니었다. 이 여행은 단순한 경로가 아니라, 잊고 있던 열정과 자신을 되찾는 여정이었다. 용문석굴의 고요한 불상 앞에 서고, 소림사의 오래된 단청을 지나, 백거이 묘(墓)에서 시간을 묵상했다.
길은 끝나지 않는다. 삶도 그러하다. 우리는 다시 걷기 시작한다. 조금 더 단단하게, 그리고 조금 더 따뜻하게.
신경용<금화복지재단 이사장·한국문인협회 달성지부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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