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경용 금화복지재단 이사장·한국문인협회 달성지부 회장
계룡대의 산등성이를 바라보는 내내 말이 없다. 그 고요 속에 문인협회 임원진들의 발걸음이 천천히 섞인다. 각자의 삶에서 오랜 시간 책임을 감당하고,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사람과 공동체를 지켜온 이들이다. 말하지 않아도 서로 안다. 삶이 늘 평탄한 길만 허락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 시간은 문학이 다시 삶의 깊이를 회복하는 여정이 되고, 존재의 쉼을 허락받는 순간이 된다. 계룡대는 군의 심장부이자, 그늘진 침묵이 살아 숨 쉬는 공간이다. 그 숲길에 앉은 문인들은 비로소 서로의 고요를 듣고, 내면의 문장을 조용히 되새긴다.
문학은 언제나 그렇게 태어난다. 말할 수 없는 것들, 설명되지 않는 일들, 꺼내면 상처가 되는 마음들을 조용히 품은 채, 언젠가 문장이 되어 스스로를 구원하는 길.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누군가는 어쩌면 그런 시간을 지나고 있을지도 모른다. 갑작스레 불어난 오해와 상처, 감당할 수 없는 감정의 덩어리들이 마음 한가운데 머무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누구도 그것을 말로 꺼내지 않는다. 대신 묵묵히 걷고, 침묵 속에서 시를 나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한 임원이 숲길을 지나며 조용히 중얼거린다. 익숙한 문장이지만, 문인들의 입에서는 다르게 울린다. 그것은 체념이 아니다. 지나간 상처를 끌어안고 살아낸 이들만이 내뱉을 수 있는 깊은 언어다.
삶은 결코 고요하게 흐르지 않는다. 때로는 불의와 왜곡 앞에 침묵해야 하고, 때로는 아무리 설명해도 닿지 않는 벽 앞에 홀로 서야 한다. 하지만 글을 쓰는 사람은 안다. 정직한 침묵은 결코 헛되지 않으며, 언젠가는 그것이 문장이 되어 누군가의 생을 위로하게 된다는 것을.
계룡대 언덕 아래에서 나눈 시에는 고통을 밀쳐낸 흔적이 아니라, 고통을 품어낸 결이 서려 있다. 그것이 문학이고, 그것이 리더들의 품격이다. 걷는 걸음마다 침묵 같은 공감이 흐른다. 삶의 불가해한 시간을 건너온 이들만이 공유할 수 있는 이해. 계룡대는 오늘, 문인들의 조용한 연대와 내면의 회복을 위한 장소가 되어준다.
돌아오는 길, 한 임원이 말한다. "문학은 세상을 바꾸지 못해도, 스스로를 지키는 힘이 됩니다." 그 말은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위로이자 다짐이 된다. 어떤 시절을 지나더라도, 쓰는 사람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삶은 여전히 예측할 수 없지만, 계룡대에서 보낸 이 하루는 문학의 이름으로 서로를 다시 붙들어주는 시간이다.
그리고 우리는 알고 있다. 그 어떤 고난도, 오해도, 쓰라린 날도 결국엔 지나가리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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