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호성의 사주 사랑(舍廊)]- 손자를 얻어도 잃을 수 있는 출산택일

  • 김기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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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3-28 08:59  |  수정 2021-03-2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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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는 아들 셋을 두었다. 첫째와 막내는 장가를 보냈고 둘째는 독신을 고집해 내버려 두었다. 며느리 둘을 얻은 A씨는 하루빨리 손주 보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런데 맏며느리는 딸 둘을 낳고는 ‘이상 끝’이었다. A씨는 장남한테서 장손이 태어나길 은근히 바랐으나 물거품이 되고 말자 허탈했다.

셋째와 넷째를 줄줄이 낳다 보면 장손을 얻을 수 있을 텐데라는 생각도 해봤으나 그런 생각을 하는 자체만으로 시대를 역행하는 원시인 취급을 받는 세상이니 그저 속만 태울 뿐이었다. 간이 배 밖에 나온 사람인 듯 설령 그런 말을 한다고 한들 손자를 시부모 품에 안겨 주기 위해 둘 이상 낳는 며느리가 대한민국 어디에 있으랴.

맏며느리가 딸 둘을 낳고 ‘이상 끝’ 모드로 들어가자 A씨는 맏며느리에 대한 기대는 접고 막내 며느리한테 희망을 걸었다. 장남한테서 장손을 얻기는 글렀으니 막내한테서라도 장손을 얻길 바랐다. 그런데 웬걸, 막 내 며느리도 첫째로 딸을 낳았다. 그래도 ‘막내 며느리가 다음엔 아들 낳겠지’ 하면서 A씨는 막내 며느리한테 기대를 걸었다. 그런데 웬 날벼락인가. 막내 부부는 ‘하나만 낳아 잘 기르겠다’고 선언했다.

‘내 팔자에 손자는 없는가 보다’하고 장손 얻기를 포기할 즈음, 평소 독신을 고집하던 둘째가 아닌 밤중에 홍두깨처럼 난데없이 여자 친구를 데려와 결혼 허락을 청하였다. 쌍수를 들어 결혼 허락을 했더니 사실 여자 친구가 임신 4개월째라고 했다. 그리고 태아는 남자라고 했다. 이 무슨 혼수 대박인가!

그런데 둘째 며느리에게 걱정이 생겼다. 임신 8개월째쯤인가 태아가 거꾸로 자리하고 있었고, 그걸 바로잡기 위해 둘째 며느리가 이런저런 운동을 해도 효과가 없어서 불가피하게 제왕절개 수술을 통해 분만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자 둘째 부부는 “어차피 제왕절개 수술로 아기를 낳아야 한다면 돈은 좀 들겠지만 출산 날짜(시)를 잡아서 낳으면 어떨까요?”하고 물어왔다. 이에 A씨는 흔쾌히 동의하였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손자인데, 귀하고 귀한 장손인데, 돈이 문제인가. 건강하고 다복한 손자를 얻을 수 있다면야 돈이 문제인가.’하는 심정이었다.

그러면 어디에 가서 출산 날짜를 잡느냐는 문제가 대두되었다. A씨는 그 문제는 일단 둘째 며느리한테 일임하기로 하였다. A씨는 나름대로 아는 철학관이 몇 곳 있었지만 안사돈(둘째 며느리의 모친)이 단골로 다니는 철학관이 있다길래 출산택일 문제는 둘째 며느리한테 맡기기로 했던 것이다.

필자는 10여 년 전 지인을 통해 A씨를 알게 됐다. 당시 지인을 통해 필자를 소개받은 A씨는 사업가로서 투자의 시기에 관하여 물어왔고, 필자는 투자를 해야 할 때와 하지 말아야 할 때를 자세히 상담해주었고. A씨는 필자의 조언대로 적기에 투자해 성공한 바 있다. 그런 A씨가 둘째 며느리의 출산 예정일을 두 달쯤 앞둔 시점에 전화를 걸어왔다. 둘째 며느리가 친정어머니 단골 철학관에서 출산날짜 두 개를 받아왔는데 어떤지 봐달라고 했다. 그 내용은 문자로 보내왔다.

하나는 재물복과 관복이 좋으며 무슨 일을 하든 성공한다는 설명이 붙어 있었다. 사주에 재물 코드인 재성(財星)과 벼슬 코드인 관성(官星)이 있으니 그렇게 설명한 것으로 보인다. 크게 틀린 말은 아니었다. 다른 하나는 외교관이 될 수 있다는 설명이 붙어 있었다. 사주에 水가 많으니 그렇게 판단한 모양이다. 이는 잘못이다. 水가 많으면 외교관이 될 수 있는 게 아니고 水가 필요한 사주여야 외교관을 꿈꿀 수 있다.

이보다도 두 개 사주는 큰 결점 두 가지를 공히 갖고 있는 게 문제였다. 큰 결점 하나는 파격(破格) 사주라는 점이다. 파격 사주란 성격(成格)사주가 아니라는 말이다. 사주의 큰 틀은 체(体)와 용(用)이다. 体와 用을 합하여 体用이라고 부른다. 体用은 불가와 도가의 사상에서 쓰이는 개념인데, 명리학에서 이를 가져와 쓰고 있다.
명리학에서 体란 태어난 날의 천간 곧 일간(日干) 혹은 일주(日主)을 말한다. 사주의 주체, 사주의 주인을 体라고 한다. 명리학에서 用이란 태어난 달의 지지 곧 월지(月支)에 뚜렷이 나타난(득령得令) 천간을 말한다. 월지 득령 천간을 격(格)이라고 한다. 이 격이 상함이 없어서 쓸 수 있으면 성격이라고 말하고, 깨어져 쓸 수 없으면 파격이라고 말한다. 사주는 성격해야 성공과 발전을 이룰 수 있고 파격이 되면 성공과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体와 用을 쉽게 설명해 보자. 가정에 비유하면 남편은 体이고 아내는 用이다. 남편과 아내가 화합하고 손발이 맞아 그 가정이 평화롭고 행복하다. 자전거에 비유하면 앞바퀴는 体이고 뒷바퀴는 用이다. 앞바퀴와 뒷바퀴가 일체가 되어 함께 잘 굴러야 편안하게 안전하게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다. 사주도 그렇다. 体와 用이 조화와 균형을 이뤄야 아름다운 인생을 노래할 수 있다.

그런데 A씨 손자의 인생이 될 사주가 파격이 되었으니 어찌 아름다운 인생을 노래할 수 있겠는가. 왜 파격이 되었는가. 월지가 공망(空亡)이 되었기 때문이다. 공망이란 한마디로 말해 ‘꽝’이다. 월지가 꽝이니 무용지물이고 무용지물이니 성격을 못하고 파격이 된 것이다. A씨 손자의 출생 일시를 잡은 철학관은 아마도 성격·파격 이론과 공망 이론이 명리학에 존재하고 있음을 모르는 듯했다.

그 철학관이 A씨 손자의 출생일시로 뽑아준 사주의 다른 하나의 큰 결점은 30대 중반에서 40대 중반에 이르는 대운(10년 기간의 운)에 건강이 매우 나빠지는 운이 온다는 점이다. 두 개의 사주는 이 대운에 삼합회국(三合會局)을 이루면서 큰 변화를 초래한다. 사주 원국에 자리한 2개의 지지와 대운의 지지 1개, 이 3개가 모여 왕성한 水의 세력을 형성한다. 이른바 쓰나미다. 이 운을 맞이하면 신장·방광 관련 질환을 앓거나 위장·비장 관련 질환을 앓게 된다. 심하면 생명이 위험할 수도 있다. 그 철학관은 아마도 명리학에 삼합 이론이 존재하고 있음을 모르고 있는 듯했다.
만약에 A씨의 손자가 이 두 사주 중 어느 사주로 태어나든 성공하고 발전할 수는 없다. 성공하고 발전하기 이전에 한창 나이인 30대 중반과 40대 중반사에 질병에 걸려 고생을 하거나 생명을 잃을 수도 있다. 끔찍할 일이다. 그 두 사주는 나쁜 사주요 나쁜 인생인데도 좋은 사주요 좋은 인생이라며 날과 시를 잡아준 것은 그 철학관의 한계이다. 명리학의 기본이론도 모른 채 한 사람의 운명을 좌우하는 출산택일을 어찌 함부로 해줄까? 참 용감무쌍하다. 이렇게 A씨에게 답을 드리고 한 마디 덧붙였다.

“그 사주가 좋다고 출산택일해 주신 분의 실력은 미안하지만 유치원생 수준입니다. 자칫하면 손자를 얻어도 잃을 뻔했습니다. 그 사주를 팩트체크하신 할아버지 덕분에 손자가 나쁜 운명을 피하게 돼서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하십시오.”

 

 

■우호성<△언론인(전 경향신문 영남본부장)△소설가△명리가(아이러브사주www.ilovesajoo.com 운영. 사주칼럼집 ‘명리로 풀다’출간)△전화: 010-3805-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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